inheritance 제 151호 (2017년 12월)

두 기업의 가업승계 성공 열쇠는

[한경 머니 기고 =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가업승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기업의 지속적인 생존일 터다. 그렇다면 기업이 대를 이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업승계에 성공한 두 기업의 사례를 통해 면밀히 알아보자. 


가업승계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창업한 지 20~30년, 심지어 40년이 넘은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 대부분이 기업의 라이프사이클상 아래 그림의 A 지점과 같이 성숙기 또는 쇠퇴기에 놓여 있다. 그리고 창업자들은 60~70대가 돼 더 이상 성장기에 기업을 이끌던 폭발적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시기가 되면 그들은 자녀들이 회사를 맡아서 무리해서 키우려 하기보다는 아래 그림에서 a와 같이 지금 상태라도 잘 유지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거나 변화를 시도하려는 후계자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하며 대를 이어 지속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간문제일 뿐 어느 기업이든 더 이상의 도전이나 혁신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c와 같이 쇠퇴기를 맞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된다는 것은 a와 같이 회사를 지금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b와 같이 재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때 가능해진다. 후계자가 기업을 맡은 뒤 재도약에 성공한 두 기업의 사례를 통해 그들의 성공 비결을 살펴보자.

가업승계에 성공한 두 기업
D기업은 1974년 천 회장이 수산물 가공업으로 창업해 일본에 게 맛살 가공품을 수출하며 안정적으로 성장 단계를 밟았다. 이 기업의 후계자인 천 사장은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명문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중 부친의 요청으로 미국 생활을 접고 1995년 회사에 들어왔다.

당시 회사는 창업한 지 20년이 넘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상태로 지속적으로 수익은 났지만 시장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느껴 일본 회사와 합작해 냉동식품 분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회사 경영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임직원들은 신사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수산물을 가공해 수출하던 주력 비즈니스가 큰 타격을 받고 기업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일부 경쟁사들은 부도로 문을 닫거나 매각되기도 했다. 외부 환경이 급격하게 나빠지자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직원들은 후계자가 주도했던 냉동식품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투자를 해 놓은 덕분에 회사는 다시 한 번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3년 창업자인 부친은 그에게 회사를 전적으로 맡기고 은퇴를 했다. 그 당시 D기업의 매출은 약 300억 원 정도였다. 천 사장은 냉동식품 사업에 전념했고 현재는 매출 1000억 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D기업의 경우 1세대는 수산물 가공업으로 회사를 성장시켰고 쇠퇴기를 맞았지만, 다행히 후계자가 회사에 들어와 새로운 냉동식품 사업에 진입해 기업을 한 단계 성장시키며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유지되고 있다.

E기업은 1967년 부산에서 사출성형기 제조사로 시작해 지금까지 외길을 걷고 있다. 이 회사 제품은 미국이나 유럽의 제품에 비해 품질은 약간 떨어졌지만 높은 가격경쟁력으로 20~30년간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했었다. 특히 1997년 IMF 시기에는 수출 덕분에 환율 차이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에 점점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2008년 금융위기에는 매출이 반 토막이 나며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후계자인 김 사장은 1993년 대기업에 다니다 회사에 들어와 밑바닥에서부터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11년 부친인 김 회장이 은퇴를 하면서 전적으로 기업을 맡았다. 승계 당시 매출은 이전 500억 원 수준에서 250억 원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는 회사를 맡고 중국산 제품과 저가 경쟁을 하던 시장을 탈피해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려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리고 직원 157명 중 20% 가까운 30여 명을 연구·개발(R&D) 인력으로 채웠고, 패배감에 젖어 있는 직원들을 독려해 6년 만에 9개의 전략 모델을 개발했다.

최근 해외 전시회에 출품해 제품의 품질은 미국과 유럽의 수준이나 그들보다 가격경쟁력이 높다는 호평을 받았고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을 구축하며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가업승계에 성공한 이 두 기업의 승계 과정을 보면 매우 닮았는데, 이는 해외 장수기업의 승계 과정과도 유사하다. 그러면 이 두 기업의 성공을 4가지의 요인으로 구분해 살펴보자.

창업이념과 핵심가치를 정립하라
경영자가 바뀌어도 기업이 길을 잃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나가려면, 확고한 경영철학과 이념이 정립돼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업승계 시 기업의 정신에 해당되는 기업철학과 경영이념을 체계화하고 이를 기업문화로 내재화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D기업의 경우 창업자가 중요하게 여기던 핵심가치는 ‘도전, 자율, 정직’이었다. 후계자 천 사장은 이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서 ‘변화, 자율, 정직’으로 정해 직원들과 공유하고, 창업정신을 바탕으로 임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이나 사업 아이템 등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도전을 격려하기 위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E기업도 김 사장이 회사를 맡고 기업의 경영철학과 가치 체계를 구축해 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그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진(眞, 최고 품질), 선(善, 착한 가격), 미(美, 아름다운  디자인)다. 그리고 이를 위한 행동지침으로 4관3려(4관: 관심·관찰·관점·관계, 3려: 독려·격려·배려)를 마련했다. 또한 이러한 철학과 행동지침이 기업문화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성과평가로도 연계하고 있다.

예컨대 경영 수익의 3분의 1은 직원 성과급, 3분의 1은 주주, 3분의 1은 운영자금으로 하는 3·3·3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이지만 사내 도서관 운영, 우수 사원 해외연수 등 직원 능력 배양에도 힘쓰고 있다.

변화에 유연한 조직을 만들어라
기업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생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변화와 혁신은 기업 생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D기업의 천 사장은 기업이 잘나갈 때 다른 아이템을 발굴하거나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인사제도나 운영 시스템 등도 기본 틀은 만들지만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

그가 만약 수산물 가공업의 성장기에 안주하고 냉동식품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면 이 기업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창업자의 은퇴와 함께 문을 닫았거나 1997년 기업을 매각하거나 부도로 문을 닫았던 기업들과 같은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후계자인 천 사장이 변화에 유연한 조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기업은 사출성형기 제조라는 외길을 걸어 왔지만, 후계자 김 사장이 회사를 이끌며 품질 혁신과 가격경쟁력을 갖추며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는 제품 개선을 위한 R&D 투자와 임직원들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교육에 투자한 결과다.

변화에 민감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이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매월 1인 1제안 제도를 시행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선정해 포상하고, 이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며 직원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고취시키고,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후계자 육성과 세대 간 좋은 관계에 힘써라
대부분 성숙기에 들어선 기업을 맡아 재도약하려면, 후계자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계자가 장기간에 걸쳐 경영 수업을 받으며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배양해야 하는 까닭이다. 가장 좋은 것은 밑바닥에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승계 전 과정에 걸쳐 세대 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례로 든 두 기업의 후계자 중 한 사람은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던 중, 다른 한 사람은 유학을 다녀와 대기업에서 일하던 중 부친의 요청에 기꺼이 쇠퇴기에 접어든 중소기업을 맡아보겠다고 회사에 들어왔다. 두 회사 모두 부자간의 신뢰 관계가 주요했다.

D기업은 후계자가 부장으로 입사해 모든 입출금에 대한 결재를 하며 회사의 자금 흐름을 파악했고, 회사 부서마다 순환 근무를 하며 체계적으로 일을 배웠다. E기업은 사원에서 시작해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일을 하며 입사 18년 만에 회사를 맡았다. 두 후계자의 공통점은 사내 업무뿐만 아니라 독서 및 외부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등 배움에 끊임없이 투자했다는 것이다. E기업의 후계자는 업무와 관련된 석사학위를 2개 받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하는 등 그의 18년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과감하게 권한을 넘겨줘라
수십 년간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던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90세가 넘어서까지 회사 일을 놓지 못하는 창업자도 있다. 하지만 사례로 든 기업을 포함해 가업승계에 성공한 기업 대부분은 자녀가 회사를 맡아 스스로 경영을 책임질 만하다고 생각하면 자녀들에게 전적으로 권한을 위임하고 회사를 떠난다. 

 D기업의 후계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은 IMF 4~5년 후 저에게 승부를 걸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라며, 업무에서 손을 떼시고 저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셨어요. 회장님께서 간섭을 않으시니 책임감이 커졌고, 제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배우는 데 힘썼어요. 하루하루 모든 결정을 하면서 책도 많이 보고, 최고경영자(CEO)과정, 조찬세미나나 아는 사람 모임에 나가 듣고 배우고 회사에 와서 직원들과 상의해서 일을 했습니다.”

E기업의 후계자도 역시 부친의 전적인 신뢰와 권한 위임이 성공적 승계의 결과라며 이렇게 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의 값싼 제품과 경쟁하며 만성 적자에 시달렸어요. 그래서 2009년 제가 아버지에게 한 가지 중대한 제안을 했어요. 이미 만성 적자로 회사의 가치도 많이 떨어졌고, 미래도 불투명하니 제가 한 번 전적으로 맡아 해보겠다고. 저의 당돌한 제안에 아버님께서 당황하셨지만, 이내 가족회의를 열어 동생들과 같이 협의해 회사의 지분 관계를 정리해주셨어요. 회사를 분리해 동생과 제가 하나씩 맡았는데, 그때 제가 맡았던 회사가 지금의 E기업입니다. 아버님이 저를 믿고 회사를 전적으로 맡겨주셔서 회사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지금 E기업이 있게 된 것은 저를 믿고 회사를 맡겨주신 아버지의 저에 대한 믿음 덕분인 것 같습니다.”

부모가 운전석에 앉고 자녀를 조수석에만 앉혀 놓으면 자녀는 결코 운전을 할 수 없게 된다. 자녀에게 과감하게 운전대를 넘겨야 자녀가 비로소 운전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가업승계에 성공하려면 위험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일정 시점이 지나면 과감하게 자녀에게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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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12-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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