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미국은 자필유언이나 구술유언과 같은 비인증유언은 허용하지 않거나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이 같은 자필유언을 허용하는 법령들은 어떻게 변하며 허용됐을까.
미국 자필유언의 요건 완화
자필유언은 유언장이 유언자의 ‘자필’과 ‘서명’으로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방식의 유언은 로마법으로부터 기원하는데, 나폴레옹법전과 대륙법계 국가들에 의해 채택됐다. 미국에서는 현재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한 약 절반 정도의 주에서 이러한 방식의 유언을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 통일상속법(UPC) 규정도 자필유언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뉴욕주에서는 원칙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유언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현역 군인과 항해 중인 선원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자필유언을 허용하는 법령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크게 세 번의 세대교체가 있었다. 제1세대 법령은 유언자가 유언장 전체를 전부 자필로 작성하고 날짜를 기재하고 서명해야만 유효한 자필유언으로 인정했다[예: 옛 캘리포니아주법(California Probate Code)].
제2세대 법령은 자필유언의 요건에서 서명 요건은 포함시키고 날짜 요건은 삭제했다. 그리고 제1세대 법령에서는 ‘유언장이 완전히 유언자의 자필로 작성될 것’을 요구했으나, 제2세대 법령에서는 ‘유언장의 중요 조항(material provisions)이 유언자의 자필로 작성될 것’을 요구했다(예: 1969년 UPC 규정).

그런데 이러한 법령은 유언자의 자필이 아닌 부분으로 유언의사를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예컨대 존슨의 유산사건(Estate of Johnson)에서 애리조나주 항소법원은 미리 인쇄된 부분은 유언의사의 입증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 당시 애리조나주는 자필유언에 관해 1969년 UPC 규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리 인쇄된 유언장 양식의 공란에 유언자의 이름과 수증자들의 이름 및 분배 비율만 유언자가 자필로 작성하고 서명했다.

이에 대해 애리조나주 항소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검인을 거절했다. 1981년 애리조나주 항소법원은 “중요 조항이 유언자의 자필로 작성돼야 한다는 요건은 자필부분이 유언의사를 명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사건 유언장에서 유언의사를 입증할 수 있는 부분은 인쇄된 부분밖에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1988년 애리조나주 대법원은 머더의 유산사건(Estate of Muder)에서 미리 인쇄된 부분도 자필 부분과 함께 유언의사를 입증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유효한 유언장의 조건은
이 같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제3세대 법령이 만들어졌다. 1990년 UPC 규정에 따르면 제3세대 법령에서는 유언장의 서명과 중요 부분이 유언자의 자필로 돼 있기만 하면 해당 유언장은 유효한 것으로 명문화했다. 또한 1990년 UPC 규정에서는 유언 의사는 외부 증거(extrinsic evidence)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데 유언자가 자필하지 않은 부분도 외부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으로 했다.

제1세대 법령에서는 문서에 어떤 인쇄된 문구가 있는 경우 설사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유언자가 자필로 완전히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필유언으로서 효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엄격한 법령 해석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법원에서 잉여이론(Surplusage Theory)을 개발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유언장이 완전히 자필로 돼 있을 것이라는 요건은, 유언장의 중요 조항이 완전히 유언자의 자필로 돼 있으면 충족된 것으로 보고 기타 인쇄된 부분은 불필요한 잉여 문구라고 보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잉여이론은 인쇄된 부분을 무시하고 남은 부분만으로 의미가 이해되고 유효한 유언장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예컨대 머더의 유산사건에서 유언자인 에드워드 머더(Edward Muder)는 미리 인쇄돼 있던 유언장 양식의 공란에 자필로 자신의 이름과 수증자들의 이름 및 분배 비율을 기입한 후 서명하고 한 사람의 증인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사망하자 그의 생존배우자인 리타(Retha)가 유언검인을 신청했다. 그러자 에드워드의 전처의 딸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애리조나주 대법원은 애리조나주에서는 2명의 증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유언장이 인증유언으로서는 유효하지 않지만 자필유언으로서는 유효하다고 1988년 애리조나주 대법원에서 판결했다.

이 이론을 적용해 자필유언을 유효하게 만든 선도적인 판결이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의 블랙의 유산사건(Estate of Black)이다. 이 사건 당시 캘리포니아주는 자필유언에 관해 제1세대 법령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언자인 프랜시스 블랙(Frances Black)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친구인 진(Gene)과 그의 가족 및 공익단체에 남긴다는 내용의 유언을 하면서, 부분적으로 미리 인쇄된 문방구 양식을 이용해 자신의 서명과 주소, 날짜, 유언집행인의 이름과 성별 등을 자필로 작성했다.

그리고 양식의 남은 공간을 활용해 자필로 유언 처분에 관한 내용을 작성했다. 이에 대해 유언검인법원은 인쇄된 문구가 유언장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검인을 거절했다. 그러나 1982년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유언장에 포함된 인쇄된 내용 중 어떤 부분도 유언장의 본질과 관련해 중요하거나 유언 처분의 유효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원심의 결정을 파기했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유언장이 법정 요건에 일치해 작성됐는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가급적 유언장의 효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법정책에 부합한다. 유언에 관한 모든 법정 요건이 유언자의 자필로 명백하게 표현돼 있고 유언 의사가 유언자의 자필 문언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경우에는, 어떠한 법목적이나 법정책도 그러한 자필유언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 이후에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기존의 제1세대 법령을 제2세대 법령으로 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