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유) 로고스 변호사]주택은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지만 현재의 상속법은 피상속인 사망 후에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계속 같은 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 도입이 필요할까.
피상속인 사후 배우자거주권 어쩌죠
배우자의 사망 후에도 생존배우자는 살고 있는 주택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필자가 지금까지 접했던 사례 중 배우자의 주거권이 문제됐던 몇 가지를 사실관계를 각색해 적어본다.

사례 1. 국가유공자였던 아버지가 장기임대주택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사망했다. 10년의 임대 후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면 분양받을 수 있는 주택이었다. 입지가 좋아서 분양을 받으면 거액의 웃돈이 붙는 것이 자명한 집이었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계속 거주하다가 분양을 받아 그 집에서 사는 것은 상관없지만 분양을 받은 후 혹시 특정 자식에게 증여를 할까 봐 불안했다. 그 이유 때문에 ‘임차권’을 모든 상속인들이 공동으로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례 2. 아버지는 재혼해서 새어머니와 10년을 사셨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자녀들 3명과 새어머니는 3년 동안 상속 분쟁을 했는데, 결국 법정상속분에 따라 모든 상속재산을 분할하기로 협의했다. 새어머니는 아버지 사후에도 계속 같은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분할 협의에 따라 상속인들의 공유로 상속등기가 마쳐지자 자녀들이 새어머니를 상대로 아버지 사망 시부터 그 집을 처분하거나 그 집에서 이사할 때까지 자녀들 상속분에 따른 임대료를 달라고 했다.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이러한 사례를 통해 현재의 상속법이 피상속인 사망 후에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계속 같은 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의 경우 문제되는 주택은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다. 공동으로 이룩하고 동거하면서 같이 유지·관리하던 주택에서 일방 배우자가 사망했다고 해 다른 배우자가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현행 민법상으로도 일방 배우자가 사망 전에 생존할 배우자를 위해 주택을 증여하거나 유증하는 것으로 배우자의 거주권을 확보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우자가 피상속인으로부터 이와 같이 생전 증여 또는 유증으로 주택을 받은 경우 다른 공동상속인들이 유류분 반환청구를 하면 그 부동산의 일부 지분을 유류분으로 반환해야 하고, 이는 종국적으로 사례 2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몇 년 전 아버지(갑)가 사망 전에 어머니(을)에게 주택을 증여했는데 아버지가 사망하자 자녀들이 어머니를 상대로 유류분을 구하는 소송이 있었다. 시사점이 많은 사안이라 간략하게 소개한다. 갑은 을과 사이에 딸 병과 아들 정을 두고 43년 4개월 남짓의 혼인생활을 유지해 오다가 사망 7년 전에 을에게 부동산을 증여한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갑이 부동산을 을에게 생전 증여를 한 데에는 을이 갑의 처로서 평생을 함께 하면서 재산의 형성·유지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과 기여에 대한 보상 내지 평가, 청산, 부양의무 이행 등의 취지가 포함돼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이를 반드시 공동상속인 중 1인에 지나지 않는 을에 대한 상속분의 선급이라고 볼 것만은 아니므로, 원심으로서는 갑과 을의 혼인생활의 내용, 갑의 재산 형성·유지에 을이 기여한 정도, 을의 생활 유지에 필요한 물적 기반 등 제반 요소를 심리한 후, 이러한 요소가 생전 증여에 포함된 정도나 비율을 평가함으로써 증여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가 특별수익에서 제외되는지를 판단했어야 함에도, 단순히 위 부동산 외에는 아무런 재산이 없던 갑이 이를 모두 을에게 증여했다는 사정만으로 증여재산 전부를 특별수익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판결에는 배우자의 특별수익에 관한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다.”(대법원 2011. 12. 8. 선고 2010다66644 판결)

민법은 제1008조의 2 제1항에서 기여분 제도를 규정해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 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때에는 상속 개시 당시 피상속인의 재산가액에서 그 자의 기여분을 공제한 것을 상속재산으로 함으로써 피상속인과 그 재산에 기여한 상속인에게 기여분을 인정하고 있다. 한편 그럼에도 법원 실무는 생존배우자에게는 통상 기대되는 정도의 기여를 전제하고 있어 특별히 기여한 경우를 인색하게 인정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민법 제826조 제1항에서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에 비추어 법원은 부부의 부양의무가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라고 보고 배우자의 간병이나 소득 활동을 특별한 기여라고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상속인 사후 배우자거주권 어쩌죠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생전 증여를 받은 상속인이 배우자로서 일생 동안 피상속인의 반려가 돼 그와 함께 가정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 헌신하며 가족의 경제적 기반인 재산을 획득·유지하고 자녀들에게 양육과 지원을 계속해 온 경우, 생전 증여에는 위와 같은 배우자의 기여나 노력에 대한 보상 내지 평가, 실질적 공동재산의 청산, 배우자 여생에 대한 부양의무 이행 등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그러한 한도 내에서는 생전 증여를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더라도 자녀인 공동상속인들과의 관계에서 공평을 해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판시해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즉, 배우자로서 통상 기대되는 정도의 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생전에 받은 증여가 특별수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해 민법이 정한 기여분보다 훨씬 더 생존배우자의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두텁게 보호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판시가 있었다고 해서 배우자가 피상속인으로부터 받은 부동산에서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결국 현행 제도와 별개로 생존배우자가 계속해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

이웃 일본은 2018년 7월 6일 ‘상속법’을 개정했는데 이 법에 의해 비로소 상속에서 혼인 외의 자녀와 혼인 중 자녀의 차별을 없앴다. 그런데 이렇게 상속분이 개정됨으로써 혼인 외의 자녀가 생존배우자를 종전 주거지에서 축출할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에 배우자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결과로 우선 상속재산을 분할할 때까지는 동일한 거주지에서 거주할 수 있는 단기거주권을 보장하는 방법과 상속재산 분할 종료 후에도 장기적인 거주권을 보호할 방안이 마련됐다.

일본 개정 상속법의 배우자거주권
우선 배우자의 ‘단기거주권’은 이렇다. 배우자가 피상속인의 재산인 건물에서 피상속인 사망 당시 거주하고 있었을 경우에는 상속재산 분할에 의해 그 건물의 귀속이 정해지거나 피상속인 사망일부터 6개월이 경과한 날까지는 그 건물에서 거주하면서 그 건물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고, 다른 모든 상속인의 승낙을 받지 않으면 제3자에게 거주 건물을 사용하게 할 수 없다.

다음 배우자가 ‘장기거주권’을 주장하려면 다음 요건 중 하나가 충족돼야 한다. 즉, 상속재산 분할에 의해 배우자거주권을 취득하거나, 피상속인이 배우자거주권을 유증하거나, 피상속인과 배우자 사이에 배우자에게 배우자거주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사인증여계약이 있었거나, 가정법원이 상속재산 분할 심판에 의해 배우자거주권을 부여한 경우로 공동상속인 사이에 배우자가 배우자거주권을 취득하는 내용의 합의가 성립되거나 배우자가 가정법원에 배우자거주권 취득을 원하는 신청을 했고, 거주 건물의 소유자가 받는 불이익을 고려하더라도 배우자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배우자거주권 부여가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된 경우다.

장기거주권의 기간은 따로 정함이 없으면 일응 배우자의 종신까지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속인들 사이의 상속재산 분할 범위나 피상속인의 유언 또는 가정법원에서 상속재산 분할 심판을 하면서 종신과 다른 내용으로 정해질 수도 있다. 배우자가 장기거주권을 취득하면 거주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거주 건물의 소유자를 상대로 배우자거주권 설정등기청구권도 행사할 수 있고, 배우자거주권을 등기한 경우에는 제3자에 대해 대항력이 인정된다. 이 권리 역시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고, 배우자가 장기거주권을 취득하는 경우에는 그 가치에 상당한 가액을 상속받은 것으로 평가해 전체 상속재산에서 배우자가 상속받을 부분에서 그 가액이 공제된다.

2014년 배우자의 상속분을 강화하는 내용의 상속법 개정 시안이 공개됐을 때 필자 역시 고령화 사회로의 변화에 따른 배우자 상속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외국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다. 그때 유럽은 배우자의 거주권을 상당히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을 알았다.

일례로 프랑스는 부부 중 일방이 사망해 피상속인의 자(사망배우자와 생존배우자 사이의 자녀인 경우)와 공동상속을 하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의 현존 재산 전체의 용익권 또는 4분의 1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고, 피상속인의 부모와 공동상속을 하는 경우에는 상속재산의 2분의 1의 소유권을 취득하며, 피상속인에게 자 또는 그의 직계비속도 없고 부모도 없는 경우에는 상속재산 전부를 취득한다.

이탈리아는 생존배우자가 자녀와 공동상속을 하는 경우 자녀가 1인인 경우 유산의 2분의 1을, 기타의 경우에는 3분의 1을 취득하며, 직계존속 및 형제자매와 공동상속을 하는 때에는 유산의 3분의 2를 취득한다. 또 생존배우자는 피상속인의 고유 재산 또는 부부의 공유 재산인 가족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으며 가재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벨기에에서는 배우자가 피상속인의 총 유산에 대한 용익권을 가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서 생존배우자가 거주하되 종국적으로는 자식에게 집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런 경우 이와 같은 배우자의 장기거주권을 활용할 수 있다면, 피상속인의 위와 같은 의사를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생존배우자에게 또는 배우자와 자녀가 공동으로 상속받고 다시 생존배우자가 사망해 비로소 자녀가 집을 취득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배우자의 장기거주권은 매우 유용한 제도라 할 것이다. 이 제도의 도입을 기대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