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만약 복수의 수증자가 유언자보다 오래 살 것을 조건으로 유증을 했는데 수증자가 먼저 사망한 경우 ‘반소멸법령’과 ‘무유언상속법’ 중 어떤 것이 적용될까.
복수의 수증자 사망 시, 유증 효력은
유언자가 명시적으로 수익자가 살아 있을 것을 유증의 조건으로 붙이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갑이 나보다 오래 살면 갑에게 나의 집을 준다’는 식의 유언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갑을 대신해서 유증을 받을 사람, 즉 대체수익자에 관해서는 규정하지 않은 경우에 갑이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갑에게 주기로 한 몫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관해 “명시적인 생존조건부 유증은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시키려는 유언의사를 나타낸 것이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판례다.

유언으로 복수의 수증자를 지정하면서 그중 일부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그 사망한 수증자의 몫은 생존한 수증자들에게 귀속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수증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유언자보다 오래 살아 있는 한 ‘반소멸법령’은 적용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수증자들 중 한 사람이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그 사망한 수증자의 몫은 그 수증자의 자녀가 아니라 다른 생존 수증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명시적 유언 의사에 따른 당연한 결론이다.

그런데 만약 수증자 전원이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사망한 수증자들 중 자녀를 남긴 사람이 있는 경우에 ‘반소멸법령’을 적용해 그 자녀에게 유증 목적물을 귀속시킬 것인지, 아니면 유증이 소멸한 것으로 보아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법정상속인들에게 상속시킬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관한 중요한 판결이 번스(Burns)의 상속 사건이다(1960년 사우스다코타주 대법원). 이 사건에서 피상속인은 1949년에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그 유언장 제20절은 “나의 모든 잔여 재산을 클라라 데이비슨(Clara Davison), 파니 웰스(Fannie Wells), 이다 허스트(Ida Hust)에게 똑같이 나누어준다. 이들 중 누군가가 사망할 경우 잔여 재산은 생존자들이 똑같이 나누어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의 수증자들은 피상속인의 자매들이었는데, 모두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했다. 허스트는 1951년에 사망했고 데이비슨은 1952년에 사망했는데 이들은 자식이 없었고, 웰스는 1951년에 사망했는데 5명의 자녀를 두었다.

유언검인법원은 “잔여 유증은 소멸했고 피상속인은 잔여 재산에 관해 유언을 하지 않고 사망한 것이 됐다”고 판결하고, 잔여 재산을 21명의 법정상속인들에게 분배해줄 것을 명령했다. 항소심 역시 이 명령을 지지했다.

이들 법원은 “유언자가 유언장 제20절에서 ‘생존(survivorship)’을 언급함으로써 수증자들이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유증을 받지 못하게 하겠다는 유언의사를 밝혔다”고 보았다. 그러자 웰스의 자녀들 5명이 상고했다. 이 상고인들은 법정상속인에 포함돼 있었지만, ‘반소멸법령’에 의해 자신들만이 잔여 재산을 유증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관할 지역인 사우스다코타주의 ‘반소멸법령’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었다.

“수증자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대체수익자에게 유증을 해주려는 유언의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 유증은 소멸한다. 그러나 그 수증자가 유언자의 자녀이거나 유언자와 어떤 친족관계에 있는 자인 경우에는, 그 수증자의 직계비속(유언자보다 오래 살아야 함)이 그 유증 목적물을 취득한다.”

이에 대해 사우스다코타주 대법원은 상고를 인용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판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망한 수증자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려는 유언의사는 분명해야 하고, 만약 유언의사가 불분명하다면 가급적 법령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 그리고 수증자가 유언자보다 오래 살아야만 유증을 허용하려는 유언의사 역시 분명해야 하고, 만약 유언의사가 불분명하다면 역시 법령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

유언장 제20절에 규정돼 있는 ‘생존(survivorship)’은 세 사람의 수증자 전원이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까지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세 사람의 수익자들 중 일부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이 경우에만 유증을 받을 생존자(survivor)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이 수증자 전원이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에 누가 유증의 목적물을 취득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유언장에 아무런 규정도 없다. 한편 유언자는 ‘반소멸법령’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의사를 아주 쉽게 드러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법령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유언의사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령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유증의 목적물은 ‘반소멸법령’에 따라 웰스의 직계비속인 상고인들이 취득한다.”

1980년 미네소타주 대법원 역시 얼릭슨(Ulrikson)의 상속 사건에서 이와 유사한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 사건에서 유언자는 11명의 조카들에게 각각 1000달러씩 유증하고 잔여 재산은 남동생인 멜빈 호블란드(Melvin Hovland)와 여동생인 로딘 헬거(Rodine Helger)에게 똑같이 나누어준다고 유언했다.

그러면서 호블란드와 헬거 중 누군가가 자신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에는 잔여 재산 전부를 생존자에게 준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호블란드와 헬거는 모두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했다. 그리고 호블란드만 2명의 자녀가 있었다(그 자녀들은 유언자보다 오래 살았다).

미네소타주 대법원은 ‘통일상속법(UPC)’의 반소멸 규정을 적용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유언자는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인 호블란드와 헬거가 모두 자신보다 먼저 사망할 것을 고려하지 못했고, ‘반소멸법령’은 자유롭게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호블란드의 두 자녀가 잔여 재산 전부를 취득한다.”

호블란드의 두 자녀는 일반유증에 따라 각 1000달러씩을 받음과 동시에 잔여 유증도 받게 됐다. 그런데 1990년 ‘통일상속법’은 명시적인 생존조건부 유증에 관한 전통적인 결론을 변경했다. 즉, 1990년 ‘통일상속법’에 따르면, 다른 추가적인 증거 없이 유언장에 ‘생존’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반소멸 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것이 유언의사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결국 1990년 ‘통일상속법’하에서는 ‘갑이 나보다 오래 살면 갑에게 나의 집을 준다’라는 유언은, ‘갑이 나보다 오래 살면 갑에게 나의 집을 준다. 만약 갑이 나보다 먼저 사망하면 나보다 오래 산 갑의 자녀에게 나의 집을 준다’라는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