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우리 사회 내 조카에게 애정을 듬뿍 쏟는 ‘조카덕후’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사후 조카들에게 상속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카에게 상속을 하기 위한 절차와 한계점에 대해 알아봤다.
늘어나는 조카덕후,상속도 가능할까
자칭 타칭 ‘조카덕후’인 신미애(39) 씨의 휴대전화는 그야말로 조카들로 도배가 돼 있다. 휴대전화의 배경화면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이 조카들 사진으로 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소셜커머스 애플리케이션 추천 목록에는 장난감, 체험형 테마파크, 어린이 공연티켓 등이 주를 이룬다.

신 씨는 미혼이지만 조카를 위해 구매한 아동용품들 때문에 추천 목록이 온통 아동용 상품으로 채워졌다. 주말에도 꼭 반나절 정도는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는 그는 인스타그램에 조카들과 나눈 일상을 업로드하는 것도 즐긴다고.

비단, 이런 현상은 신 씨만의 일은 아닌 듯 보인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조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관련 게시물이 147만 개에 육박하고, ‘조카스타그램’은 85만 개, ‘조카선물’이라는 해시태그는 46만 개가 넘는다.

여기에 비슷한 단어나 이미지를 합친 해시태그까지 고려한다면 조카덕후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일종의 거대한 메가트렌드이자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최근 수년째 미혼 또는 비혼(非婚), 만혼(晩婚)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1인 가구의 증가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자녀 양육의 부담감과 책임감은 덜면서 아이에 대한 사랑을 ‘대리만족’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훗날 조카들에게 상속을 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신 씨는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지금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한다”며 “물론, 상속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미래에도 미혼이거나 무자녀라면 기부를 하거나 조카들에게 우선순위로 상속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고 했다.

조카앓이 5년 차인 미혼의 김영민(41) 씨도 “조카에게는 뭐든 줘도 아깝지가 않다”며 “상속도 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조카에게 많은 부분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유명 로펌의 한 변호사는 이에 대해 “현재까지는 상속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60~80대 분들 사이에서 특별한 이유나 상황을 제외하고는 조카에게만 상속하려는 사례는 많지 않다”며 “단, 상속도 사회변화상을 따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이런 조카 상속·증여도 늘어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현실적으로 조카에게 오롯이 상속을 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하고, 한계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법에는 상속 순위가 있다. 1순위는 자녀, 손자 등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2순위는 부모인 직계존속, 3순위는 형제자매, 4순위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람이 모두 상속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선순위가 있으면 후순위는 상속을 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피상속인의 아들과 딸(1순위)이 있다면 부모(2순위)나 형제자매(3순위)에게는 상속되지 않는다. 같은 순위에서는 촌수가 가까운 사람, 예컨대 아들(1촌)과 손자(2촌) 중에선 아들만 상속인이다. 다만 배우자는 상속에서 특별대우를 받는다. 다른 상속인보다 50%를 가산해주고 1순위와 2순위가 없다면 단독 상속인이 된다.

물론, 상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상속인(고인)의 의사다. 생전 피상속인의 유언이 있다면 유언에 따르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유언은 아주 엄격한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무효가 되기 때문에 법적 분쟁이 잦고, 절차가 복잡하다.

특히, 조카에게 유언을 통해 상속할 경우 가령 이런 상황에 부딪칠 수 있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은 “현재 고령자 고객들 대부분이 현금이 많은 편이라 재산 분배를 유언장으로 할 경우, 현실적으로 금융기관의 지급 절차의 한계에 부딪힌다”며 “만약 유언장으로 남은 현금을 조카 중 한 명에게만 주는 것으로 해 놓고, 사후에 조카가 금융기관을 방문해 상속 집행을 할 경우, 금융기관은 그 유언 집행을 바로 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유언장은 마지막에 작성된 유언장만이 효력이 있는데, 금융기관이 그 유언장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배 센터장은 그러면서 “이와 달리, 신탁은 집행자 역할을 수탁자가 하기 때문에 수탁자인 금융기관이 사망 관련 서류와 사후 수익자의 신분만 확인하면 바로 지급한다”며 “따라서 조카에게 상속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상속재산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신탁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조카 상속도 미리 해야 유리
상속이나 증여의 고민은 절세에서 시작된다. 최고 상속·증여세율이 50%에 달한 상황에서 부부나 자식, 조카 등 증여를 받는 대상이 그 누구라 해도 복잡한 셈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세금 폭탄’을 막기 위한 중장기적인 상속 및 증여 플랜(계획)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늘어나는 조카덕후,상속도 가능할까
그래서 흔히 상속 전문가들은 상속이나 증여는 미리 할수록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카에게 상속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 조카에게 상속할 경우, 유언을 하더라도 그 절차가 만만치 않을뿐더러 자칫 상속 대비를 해 두지 않는다면 법정 순위에 따라 조카들에게 상속재산이 분배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를 보자.

자녀가 없는 80대 미혼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지난해 막내 남동생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다섯 형제 중 본인만 남게 된 것. 이제는 본인도 언제든 운명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상속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민법상 정해진 4순위인 조카들에게 상속을 우선으로 하게 됐는데 상속인 수가 무려 16명이나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일부 조카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데다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최선인지도 고민이 됐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A씨가 아무런 조치 없이 사망할 경우, 그 자산은 서로 연락이 닿지도 않는 4촌들끼리 모여 재산 분할을 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4촌들이 해외에 있는 경우라면 아마도 상당한 기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점은 자신의 귀한 재산이 사후 아무런 의미도 없이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뿐더러 피상속인의 바람과는 달리 조카들 간 상속 분쟁이 일어날 소지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유언이나 신탁 등을 통해 사전에 조카에게 상속이나 증여를 해 두는 것이 좋다.
이미 우리나라보다 고령화가 앞선 일본은 이런 분쟁들을 훨씬 전부터 겪어 왔다. 그런 경험을 통해 현재는 일본인들 상당수가 미리 상속 준비를 하거나,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주위에 본인을 보살펴주는 이가 있다면 신탁 등을 통해 상속자산이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만, 여전히 한계점은 존재한다. 배 센터장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자신의 유언을 미리 남기는 문화에 아직 익숙하지 않고, 상속은 부자들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신탁을 권유하지만 아직까지는 도대체 어디서 신탁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 인식이 부족한 상태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또한 작은 돈의 경우 유언장을 공증 받아 처리하기에는 심리적 허들이 있고 우리 주위에 어디에 가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상속과 증여, 신탁 등에 관한 사회적 관심과 정보가 생활 속에 밀접히 정립돼야 할 때다”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