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상속 관련 뉴스를 보다 보면 상속포기, 한정승인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둘의 차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이 두 개념은 무엇이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의 차이는
‘201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7년 전국 가정법원에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의 수리를 신청한 사건은 3만8440건이다. 한 달에 3000건 이상 접수된다는 의미다. 피상속인이 남겨 둔 상속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다투는 사건에 비해 그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사건의 대부분은 상속인들이 피상속인의 채무를 상속받을지 몰라서 신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상속인이 재산을 남겨 두었더라도 상속재산을 본인의 채무 변제에 사용해야 되는 경우 역시 상속포기를 고려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차피 상속을 받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상속포기 신청을 하지 않고 상속인들 사이에서 본인은 전혀 상속받지 않고 다른 상속인들이 상속받도록 협의하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상속포기의 신청을 가정법원에 하는 것이나 상속인들 사이에서 상속분이 없도록 협의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본인은 전혀 상속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상속인의 채권자와 관계에서는 그 효력이 매우 다르다. 이 글에서는 상속포기나 한정승인과 관련해서 문제되는 여러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언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있나
피상속인에게 많은 채무가 있는 경우 상속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혹시 그 채무를 상속받게 될까 봐 걱정이 많다.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하거나 상속을 포기할 때에는 법에서 정한 숙려기간 내에, 즉 상속이 개시된 것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해야 한다.

이러한 숙려기간 제도는 상속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후순위 상속인의 숙려기간은 선순위 상속인의 상속포기 신고가 적법한 것으로 수리된 이후 이를 현실적으로 인식해 그 자신이 상속인이 됐음을 안 날부터 기산된다. 그래서 1순위 상속인이 3개월 내에 상속포기를 하면, 그 신고가 적법한 것으로 수리된 가정법원의 심판이 있는 날부터 다시 3개월 내에 2순위 상속인이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고를 할 수 있다. 만약 1순위 상속인이 한정승인 신고를 했다면 2순위 상속인이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된 이상 각 상속인은 위 숙려기간의 도과로 단순승인의 효력이 생기기 전까지 상속포기 신고를 할 수 있고, 각 상속인이 승인과 포기를 선택할 수 있는 이 권리를 그 상속 순위에 따라 제한할 법문상의 근거가 없으므로(인천지방법원 2003. 4. 29. 자 2003브1 결정 참조), 상속인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직계존속,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은 상속이 개시된 이후에는 선순위 상속인이 상속포기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선순위 상속인보다 먼저 또는 선순위 상속인과 동시에 상속포기 신고를 할 수 있다. 즉, 후순위 상속인이 상속포기를 하려고 한다면 선순위 상속인의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 신고를 기다릴 필요 없이 먼저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해도 된다.

상속포기 신고를 한 후 재산 처분은
상속포기 신고를 하는 이유는 피상속인들의 채무를 대신 부담하게 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속포기 신고를 법원에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상속인들이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한 후 아직 가정법원으로부터 포기를 수리하는 심판을 받지 않았음에도 망인이 소유하던 화물차를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거나 너무 노후해 폐차한 사례에서 상속포기 신고를 수리하는 내용의 법원 심판이 고지되기 전에 상속재산을 처분했다면 상속포기가 아니라 민법 제1026조 제1호에 따라 상속인인 피고가 상속의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3다73520 판결).

만약 상속포기 신고를 수리하는 내용의 법원 결정서를 받은 후에 처분했다면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은닉 또는 부정 소비하거나 고의로 재산목록에 기입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한 상속포기 신고가 수리된 효과는 유지되는 점에 비추어 주의가 요구된다.

미성년 자녀와 부모가 같이 상속을 받을 시 신고는 부모 중 일방, 즉 아버지나 어머니가 먼저 사망하면서 상속인이 어린 자녀와 배우자인 경우 상속재산이 부채가 더 많을 때 부채를 어린 자녀가 상속하지 않도록 자녀는 상속을 포기하고 배우자는 그 법률관계를 수습하기 위해 한정승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어린 자녀에게 채무가 상속되지 않으려는 목적이지만 형식적으로만 보면 자녀는 상속을 포기하고 배우자는 상속을 받는 셈이 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배우자가 어린 자녀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상속포기의 신고를 할 수 없다.

법정대리인과 자녀의 이해관계가 충돌되기 때문이다. 민법은 이런 상황에는 어린 자녀를 위한 특별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어린 자녀와 배우자가 법정상속분에 따라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배우자는 자녀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상속재산 분할 협의를 할 수 없고 특별대리인이 배우자와 같이 협의를 해야 한다.

대법원은 상속재산에 관해 분할 협의를 하는 경우에 있어서 상속인 중에 여럿의 미성년자가 있다면 이들 미성년자 각자마다 특별대리인을 선임해 그 각 특별대리인이 각 미성년자를 대리해 상속재산 분할 협의를 해야 하고, 만약 공동상속인인 친권자가 그 여럿의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상속재산 분할 협의를 한다면 이는 강행 규정인 민법 제921조에 위배된다고 판시해(대법원 2011. 3. 10. 선고 2007다17482 판결), 이와 같은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이러한 대리행위에 의해 성립된 상속재산 분할 협의는 피대리자 전원에 의한 추인이 없는 한 그 전체가 무효라고 했다.

상속포기, 사해행위 될 수 있나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본인의 채무를 변제하는 것보다는 다른 상속인들이 상속받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해서 상속을 포기하거나 상속재산 분할 협의를 통해 본인의 상속지분은 ‘0’으로 하고 다른 상속인들에게 상속지분이 더 가산되게 하는 경우 이러한 행위가 본인의 채권자들을 해하는 사해행위가 될 수도 있다.

먼저 상속인이 ‘상속의 포기’를 신고한 경우 그 상속의 포기는 채권자를 해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 판결이다. 즉, “상속의 포기는 상속이 개시된 때에 소급해 그 효력이 있고(민법 제1042조), 포기자는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이 된다. 상속의 포기는 비록 포기자의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없지 아니하나(그러한 측면과 관련해서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86조도 참조), 상속인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소멸하게 하는 행위로서 순전한 재산 법적 행위와 같이 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속의 포기는 1차적으로 피상속인 또는 후순위상속인을 포함해 다른 상속인 등과의 인격적 관계를 전체적으로 판단해 행해지는 ‘인적 결단’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 그러한 행위에 대해 비록 상속인인 채무자가 무자력 상태에 있다고 해서 그로 하여금 상속포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채권자의 사해행위 취소를 쉽사리 인정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상속은 피상속인이 사망 당시에 가지던 모든 재산적 권리 및 의무·부담을 포함하는 총체적 재산이 한꺼번에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것으로서 다수의 관련자가 이해관계를 가지는데, 이와 같이 상속인으로서의 자격 자체를 좌우하는 상속포기의 의사 표시에 사해행위에 해당하는 법률행위에 대해 채권자 자신과 수익자, 또는 전득자 사이에서만 상대적으로 그 효력이 없는 것으로 하는 채권자취소권의 적용이 있다고 하면, 상속을 둘러싼 법률관계는 그 법적 처리의 출발점이 되는 상속인 확정 단계에서부터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 것을 면할 수 없다.

또한 상속인의 채권자 입장에서는 상속의 포기가 그의 기대를 저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채무자인 상속인의 재산을 현재의 상태보다 악화시키지 아니한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상속의 포기는 민법 제406조 제1항에서 정하는 “‘재산권에 관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다29307 판결).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상속인에게 증여한 경우에도(유증), 이를 포기하는 것이 채권자들을 해하는 행위가 되는지 문제될 수 있다. 대법원은 “유증을 받을 자는 유언자의 사망 후에 언제든지 유증을 승인 또는 포기할 수 있고, 그 효력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에 소급해 발생하므로(민법 제1074조), 채무 초과 상태에 있는 채무자라도 자유롭게 유증을 받을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또한 채무자의 유증 포기가 직접적으로 채무자의 일반 재산을 감소시켜 채무자의 재산을 유증 이전의 상태보다 악화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유증을 받을 자가 이를 포기하는 것은 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다260855 판결).

반면 상속재산의 분할 협의는 상속이 개시돼 공동상속인 사이에 잠정적 공유가 된 상속재산에 대해 그 전부 또는 일부를 각 상속인의 단독 소유로 하거나 새로운 공유 관계로 이행시킴으로써 상속재산의 귀속을 확정시키는 것으로 그 성질상 재산권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이므로 사해행위취소권 행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시다(대법원 2001. 2. 9. 선고 2000다51797 판결). 하지만 상속재산 분할 협의를 하면서 본인의 상속분을 0으로 했다고 해 모두 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피상속인의 생전에 이미 많은 증여를 받았기 때문에 상속재산은 분할받지 않는 것이 공평한 경우에는 비록 피상속인 사망 당시 본인의 채무가 너무 많아 상속재산의 분할 협의를 하면서 상속재산에 관한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반 채권자에 대한 공동 담보가 감소됐다 하더라도, 사해행위로 취소되지는 않는다. 사해행위로 취소되는 범위는 상속재산 분할의 결과 구체적 상속분에 미달하는 부분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상속포기와 상속세 생전에 증여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으려고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 제4호는 상속인의 범위에 민법 제1019조 제1항에 따라 상속을 포기한 사람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 법 제13조는 상속세의 과세가액에 상속개시일 전 10년 이내에 피상속인이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가액을 포함시키고 있으므로 이처럼 피상속인 사망 10년 이내에 증여받은 재산이 있는 상속인은 상속을 포기하더라도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상속인으로서의 기초공제는 받지 못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