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기여분 제도는 상속재산 분할에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해 1990년 민법 개정으로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고, 가족구성원의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기여분 제도도 그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상속인의 기여분 어디까지 인정받나

대형 사고가 발생한 후 수습하는 과정에서 종종 가슴 아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려서 헤어지고 20여 년 동안 소식도 모른 채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상속인이라고 나타나 큰돈을 들고 간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자식과 인연을 끊고 지냈지만 사후에 자식이 나타나서 상속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를 버렸던 자식보다 자식을 버렸던 부모에게 더 많은 비난을 합니다. 아마도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부모라면 응당 그래야 된다’고 치부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사건(헌재 2019. 2. 22. 선고 2017헌바59호)도 그렇습니다. 이 사건의 청구인은 1981년 딸을 낳았는데 1985년 아이의 아빠와 이혼하고 그 이후 혼자서 딸을 양육했습니다. 아빠는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죠. 그럼에도 딸은 잘 자라 취업을 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고, 피보험자 사망 시 보험수익자를 법정상속인으로 하는 내용의 보험 계약을 2건 체결했고, 예금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딸이 2011년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당시 미혼이었습니다. 딸이 사망하자 엄마는 교통사고를 발생시킨 가해 차량의 자동차보험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상속인은 딸의 엄마와 아빠입니다.

그리고 딸이 남겨 놓은 예금과 보험금에 대해 엄마가 법원에 소를 제기해 인정받은 손해배상금까지 모두 엄마와 아빠가 일응 각 2분의 1 지분 비율로 상속받게 됐습니다. 엄마로서는 무척 억울했습니다. 이혼 후 전 남편이 지급했어야 할 양육비를 계산해 보니 1억 원이 넘었습니다. 아이 아빠로부터 양육비도 받지 못하고 혼자 애써서 키웠는데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아빠라고 나타나 보험금을 나누겠다는 사람이 곱게 보일 리 없겠죠.

엄마는 가정법원에 우선 받지 못한 양육비를 달라는 청구를 하고, 또 딸이 남긴 상속재산 중 90%는 본인의 기여분으로 인정돼야 하고, 나머지 10%가 상속재산으로서 분할돼야 한다는 청구를 했습니다. 과연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결과를 말씀드리면, 가정법원은 양육비에 대해서는 비록 항고심에서이지만 엄마에게 지급받지 못한 양육비로 1억 원 넘게 인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기각했고, 상속재산에 대해서는 엄마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엄마와 아빠에게 각 2분의 1 지분 비율로 예금과 보험금, 손해배상금이 귀속됩니다. 법원이 너무한다는 생각하나요. 일반적으로 엄마가 딸을 혼자 키워 직장에 잘 다니게 했고 그로 인해 상속재산이 생성됐으니 엄마에게 많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민법이 정한 기여분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판례로 본 기여분 제도
민법 제1008조의 2는 ‘기여분이란’ 제목으로 ①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때에는 상속 개시 당시의 피상속인의 재산가액에서 공동상속인의 협의로 정한 그 자의 기여분을 공제한 것을 상속재산으로 보고 제1009조 및 제1010조에 의해 산정한 상속분에 기여분을 가산한 액으로써 그 자의 상속분으로 한다.

② 제1항의 협의가 되지 아니하거나 협의할 수 없는 때에는 가정법원은 제1항에 규정된 기여자의 청구에 의해 기여의 시기·방법 및 정도와 상속재산가액 기타의 사정을 참작해 기여분을 정한다. ③ 기여분은 상속이 개시된 때의 피상속인의 재산가액에서 유증의 가액을 공제한 액을 넘지 못한다. ④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청구는 ‘제1013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청구가 있을 경우 또는 제1014조에 규정하는 경우에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기여분 제도는 상속재산 분할에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해 1990년 민법 개정으로 도입된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피상속인에게 아들이 2명 있는데, 아버지는 차남과 농사를 짓고 싸게 토지를 구입해 개간하면서 농토를 확장했고, 장남은 그 논에서 수확한 쌀만 가져다가 먹었다고 하면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 농토를 장남과 차남이 각 2분의 1씩 상속받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은 기여분을 엄격하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아도 “민법 제1008조의 2가 정한 기여분 제도는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관해 특별히 기여했을 경우 이를 상속분 산정에 있어 고려함으로써 공동상속인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려는 것이므로, 기여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공동상속인 사이의 공평을 위해 상속분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다거나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고 해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만큼 특별히 기여한 것을 요구합니다.

다시 앞서 든 사례로 돌아와 보면, 법원은 엄마가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만큼 딸을 특별히 부양했다거나 딸의 상속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다고 인정하지 않은 것이죠. 아마도 상속재산의 대부분인 보험금과 손해배상금 중 손해배상금에 상속인의 기여가 인정된다고는 보기 어렵고, 보험금도 비교적 소액인 보험료를 납입했다가 사망이라는 보험사고가 발생해 받게 된 측면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딸이 중대한 질병을 앓아 엄마의 헌신적인 간병이 필요했던 경우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20년 이상 딸을 나 몰라라 살아 온 아버지가 딸의 상속인으로서 상속재산 중 2분의 1을 상속받는다는 것을 엄마는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법원에 전 남편이자 딸의 아버지가 딸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므로 상속결격자로 보아야 한다며 딸의 아버지를 상대로 상속받은 금액의 반환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청구가 기각되자 항소심에서는 이와 같이 부양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직계존속에게도 상속권을 인정하는 민법 제1000조 제1항 제2호가 엄마인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헌법소원 청구 사건의 쟁점은 민법 제1004조가 상속인의 결격 사유를 정하고 있지만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직계존속의 경우를 상속 결격 사유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 부양의무를 이행한 다른 상속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결정했습니다.

기여분 제도의 형평성 논의 필요
“민법 제1004조는 일정한 형사상의 범죄행위와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행위 등 5가지를 상속 결격 사유로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는 상속인이 일정한 형사상의 범죄행위 또는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속인의 상속권을 보호함과 동시에 상속 결격 여부를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기 위함이다.

민법은 법정 상속 제도로서 혈족상속의 원칙(제1000조 제1항 참조)을 채택하는 한편, 상속 결격 사유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가족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은 상속 결격 사유로 삼고 있지 않다. 이처럼 부양의무의 이행과 상속은 서로 대응하는 개념이 아니다. 법정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속인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법정상속인이 아닌 사람이 피상속인을 부양했다고 해 상속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부양의무를 해태한 것으로 평가돼 향후 직계존속 일방으로부터 양육비지급청구 등 민사상 금전지급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그것이 피상속인에 대한 살인·살인미수 또는 상해치사 등과 동일한 수준으로 상속인과 피상속인을 연결하는 윤리적·경제적 협동관계를 파괴하는 중대한 범법행위 또는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개별 가족의 생활 형태나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부양의무 이행의 방법과 정도는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를 상속 결격 사유로 본다면, 과연 어느 경우에 상속 결격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워 이에 관한 다툼으로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상속관계에 관한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저해된다.
따라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직계존속의 경우를 상속 결격 사유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입법 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해 다른 상속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

고전적으로 가족은 ‘영속적인 결합에 의한 부부와 거기에서 생긴 자녀로 구성된 생활공동체’(김두헌, 한국가족제도연구, 1969년), ‘혼인관계를 기초로 해 부부, 친자, 형제 등의 근친자를 주 성원으로 한 특정 가옥 내의 생활공동체’(최재석, 한국의 가족과 사회, 2009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로는 ‘서로 헌신하며, 친밀성과 자원, 결정에 따른 책임, 가치를 공유하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올슨·듀프레인·스코그랜드, 결혼과 가족, 2008년)이라고 할 것입니다. 미국가족소비자과학협회는 “가족이란 자원을 공유하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며,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오래도록 헌신하는 둘 이상의 결합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개인주의 확산과 가치관의 변화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종래 부모가 하던 역할을 하는 조부모, 삼촌, 이모, 위탁 부모들, 또 법률상 배우자가 하던 역할을 하는 동거인을 보는 것은 이미 낯설지 않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던 사례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례의 사안을 보면서 상속인의 자격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내 옆에서 헌신한 진정한 가족이 상속인의 자격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민법 제1004조 상속인이 되지 못하는 결격 사유
①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
②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
③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한 자
④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⑤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변조·파기 또는 은닉한 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