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가족관계등록부상 신분관계가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거나 공동상속인 중에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망했는지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동상속자와 연락이 힘들다면

주변 친지에게 가정법원에서 상속재산분할심판을 해야 한다고 하면 싸울 재산이라도 있어서 좋겠다는 반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빚을 물려주고 싶겠어요.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사실 가정법원에 상속을 포기한다는 신청 사건은 제법 많습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 접수된 상속의 포기나 한정승인 사건은 모두 4만2579건인 데 반해 상속재산분할을 구하는 사건은 1710건입니다.

그런데 상속인들 사이에 다툼이 별로 없어도 어쩔 수 없이 법원에 분할을 해 달라고 구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상속인들이 여러 명인데 그중 연락할 수 없고, 생사불명인 사람이 포함돼 있는 경우입니다.

실제 제가 서울가정법원에서 재직하던 중 처리한 사건도 상속재산은 철거가 임박한 건물 1동이고, 공동상속인은 3명인데 그중 1명을 찾지 못해 법원에 신청해야만 한 것이었습니다. 망인이 생전에 부동산을 특정상속인에게 주겠다고 유언했다면, 특히 공정증서 유언서를 작성했다면 상속인들이 법원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사망 후 형식적인 상속등기를 하고 마냥 기다릴 수도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몰라 철거해야 하는 등 행정적으로 처리할 사무가 많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법원에 온 것입니다. 상속인들도 상속받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아 보였습니다.

장남은 그렇다고 상속을 포기할 수도 없고, 본인의 상속분은 여러 일을 해야 할 누나에게 줄 테니 가정주부인 장녀가 상속을 받아 구청에 다니면서 사무를 처리하길 원했습니다. 어쩌면 차남도 이런 사정을 다 알면 누나가 상속받기를 원하겠지만 법원이 그렇게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국 부동산은 누나가 단독으로 상속받되 차남에게는 그 부동산의 법정상속분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급하는 내용의 결정을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한 예에 불과합니다.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생활에 큰 불편이 없어 그냥 두었던 것을 상속을 처리하기 위해 제대로 맞게 바꾸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피상속인의 생전에 처리가 됐다면 어쩌면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일을 사망 후에 수정하려니 힘든 것도 있습니다.

유언신탁의 필요성
최근에 유명 지휘자인 금난새 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돼 있는 성 ‘김’을 ‘금’으로 정정해 달라는 신청을 해서 대법원으로부터 정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받았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금 씨의 주민등록증과 여권 등에는 성이 ‘금’으로 돼 있지만, 가족관계등록부엔 ‘김’으로 돼 있었는데 부친이 1992년 사망했고, 그 후 상속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담당 공무원이 “가족관계증명서상 상속인의 성명이 다른 공문서와 다르다”며 절차 진행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대법원은 “어떠한 신분에 관한 내용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됐어도 그 사항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음이 분명한 경우, 그 내용을 수정해 진정한 신분관계를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면서, “공적 장부들의 기재 불일치로 인해 상속등기 등 권리 실현에 장애가 발생했다”며 “신청인이 유년 시절부터 한자 성 ‘김’을 한글 성 ‘금’으로 사용하며 오랜 기간 공·사적 생활 영역을 형성해 왔다면 성을 ‘금’으로 변경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또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행방이 묘연한 상속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피상속인 생전에 실종신고 절차를 밟아 신분관계를 정리했다면 일부러 법원에 상속재산분할심판을 구할 필요가 없겠죠. 그 외에도 여러 해 동안 소식을 모르고 사는 상속인들도 있습니다. 사는 것이 바빠서 그럴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심지어 자식인 경우에도 외국에서 터를 잡아 살면서 거의 소식을 나누지 못하는 가족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집니다.

공동상속자와 연락이 힘들다면
이처럼 가족관계등록부상 신분관계를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거나 일찌감치 외국 국적을 취득한 공동상속인 중에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망했는지 여부도 확인하기 어려운데, 피상속인 입장에서 상속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을 때에는 유언대용신탁이 매우 유용합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자신이 사망한 때에 수익자에게 수익권을 귀속시키거나 위탁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수익자가 신탁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신탁입니다. 즉, 말 그대로 유언처럼 할 수 있는데, ‘신탁법’상 신탁계약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신탁계약이기 때문에 유언자 본인 혼자의 단독 행위가 아니라 위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계약입니다. 위탁자가 자신의 생전 의사 표시로 사망 후 상속재산의 귀속을 정한다는 점에서 민법상 유증과 법률 효과가 같지만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이 아니기 때문에 유언의 방식을 갖출 필요가 없어 유언보다 훨씬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유언신탁의 효과적인 활용법
현재 체결되는 유언대용신탁에서 수탁자의 대부분은 은행이나 보험사로서 금융업자입니다. 유언은 본인이 사망해야 효력이 발생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본인이 생존해 있는 경우에도 계약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본인이 근린생활시설에서 거주하고 있으면서 상가에서 임대료를 받고 있는 경우 생전에는 그 임대료를 본인이 받아 생활비로 사용하되 상속이 개시되면 큰아들이 건물을 소유하고,임대료는 배우자 생존 기간에는 배우자가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인 생전부터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므로 특별히 유언 목적이 아니더라도 재산 관리 능력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체결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금 씨의 부친이 사후 이렇게 상속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면 금 씨를 수증자로 하는 유언서를 작성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그런데 공동상속인 중 한 사람이 연락이 되지 않아 공동 상속 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울 경우가 예상되면 수탁자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 특정상속인은 예금 등 금전, 그것도 유류분에 상당한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 재산은 다른 공동상속인이 수익할 수 있도록 정할 수도 있습니다.

또 위탁자는 사망하기 전까지 언제든지 정해 놓은 수익자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무엇보다 유용한 점은 피상속인 사후에 은행 예금을 쉽게 인출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이 금전채권과 같이 급부의 내용이 가분인 채권이 공동으로 상속되는 경우 상속 개시와 동시에 당연히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에게 분할돼 귀속되므로 상속재산 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시했지만(대법원 2016. 5. 4.자 2014스122 결정), 현재 은행 실무는 공동상속인들의 동의서가 제출되지 않으면 공동상속인 중 1인에게 그의 법정상속분에 해당하는 부분도 인출해 주지 않습니다.

즉, 피상속인의 사망 당시 은행에 1000만 원의 예금이 있고, 공동상속인이 4명이라면 공동상속인 중 1명이 은행에 가서 그의 법정상속분에 해당하는 250만 원(1000만 원×1/4)을 인출해 달라고 요청해도 다른 공동상속인들의 동의 의사가 없는 이상 인출할 수 없습니다.

피상속인 입장에서는 병원에서 사망할 경우 처리해야 할 의료비와 장례비가 걱정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예금에서 그런 비용이 지출될 것을 원하지만 사망 신고가 되면 모든 금융계좌는 동결되고 공동상속인들이 동의해야 인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금 등 채권에 대해서 유언대용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수탁자에게 본인 사망 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지시해 놓는다면 그 지시에 따라 수탁자는 업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법원은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인의 기여분을 엄격하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법은 피상속인에 대해 전혀 동거, 간호, 부양하지 않은 상속인에게 상속인 자격을 주지 않거나 상속분을 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결국 본인이 고마운 상속인들에게 조금 더 상속재산을 주고 싶다면 최소한 유언서를 작성해야 하고, 사후 원활한 상속 절차까지 희망한다면 유언대용신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것을 권합니다.

물론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한다고 해서 상속세를 덜 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설의 대립은 있지만 유언대용신탁으로 수익자에게 재산을 취득하게 하는 경우 상속인들이 그 수익자에게 유류분을 청구할 수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언대용신탁을 제안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생전에 미리 상속 절차의 번잡함을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어서 사후 분쟁을 예방할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본인이 이룬 재산을 본인 노후 및 사후에도 본인의 뜻에 맞게 활용되길 희망한다면 현재까지는 유언대용신탁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