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는 무명의 조선 여인들이 만든 아마추어 작품이지만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천하의 명품이다.


[최선호의 디자인 오디세이] 조각보, 세상을 따듯하게 감싸는 아름다운 쓰임
조각보는 조각 천을 이어 붙여 만든 보자기다. 조각보는 조선 여인들의 정성과 손맛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우리네 살림살이다. 한양으로 과거보러 길을 떠나는 선비의 괴나리봇짐에서부터 사대부 규방의 상보까지 삶의 구석구석을 보듬어 주었다. 이제 산업화의 대량 생산품 가방에 밀려 인사동 골동가로 자리를 내준 조각보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정서를 따듯하게 감싸고 있다.

보자기는 오래된 다용도 가방이다. 세상에는 보이는 아름다움과 내적인 성숙함이 공존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물건도 제대로 포장해야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개체가 된다. 무엇을 싼다는 것은 단순히 감싸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진정성을 보존하는 엄숙한 사명이다.

일상의 용어를 곰곰이 따져보면 ‘싸는 것’을 형용하는 언어는 주변에 흔하다. 개성의 특산품 보쌈김치는 배춧잎에 온갖 양념으로 버무린 김치 속을 꽉 채워 싸맨 김치요, 신붓감이 귀하던 시절 이웃동네 처자를 천으로 보쌈해서 데려와 올리던 혼례도 일종의 ‘쌈’이다. 작은 물건이나 부스러기를 담는 주머니를 쌈지라 하는데 그 안에 담긴 몇 푼 안 되는 돈이 쌈짓돈이다. 전통 재래식 장날 이 고장 저 고을을 떠돌던 장돌뱅이의 봇짐이나 장판 풍물패의 걸쭉한 이야기보따리도 사실은 모두 물건을 담고 생각을 모은 보자기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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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의 아름다움

보자기를 단순히 용도에 맞게 사용한 것뿐 아니라 색과 미감을 넣어 보기 좋게 변형한 것이 조각보다. 조각보는 성능도 우수하고 디자인도 깔끔한 당시의 신제품이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조각보를 사랑했다. 만들기는 어렵지만 보기에는 좋았다. 물건이란 공이 들어가면 갈수록 쉽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천재가 그린 일필휘지(一筆揮之) 속에는 신이 준 재능이 숨어 있어 보기에 멋지고 쉬워 보인다. 그게 어렵다.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꾸준히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면 아름답고 신기한 세상을 그려내 눈앞에 펼쳐 보일 수 있다. 조각보는 무명의 조선 여인들이 만든 아마추어 작품이지만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천하의 명품이다. 동서고금 너나 할 것 없이 조각보의 실용과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조각보는 예술이다. 세상을 감싸는 아름다운 쓰임이다. 좋은 디자인의 빼어난 덕목이다.

조각보는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버리기 아까워 모아두었다가 활용한 일종의 재활용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럴 수도 있다. 조선시대 옷감이 귀하다 보니 작은 조각이라도 함부로 버릴 수 없어 이어 붙여 조각보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다 보니 세월이 가고 그 사이 자연스럽게 미적 감각이 발전한다. 아예 처음부터 멀쩡한 천을 미적 감각의 조각보로 만들 작정으로 조각으로 잘라 패턴을 만든다. 패턴에 여러 색으로 물들인 천 조각을 배열한다. 배색에도 신경을 쓴다. 우리네 특유의 밝고 환한 색색의 천 조각은 더욱 화려해진다. 드디어 조각보가 완성된다.

긴 여름철 풋나물 밥상을 차리고 먼지나 파리가 달려들지 않도록 덮은 모시 조각보에 색들이 담겨 있다. 무채색의 단조로운 밥상이 단숨에 입맛을 돋운다. 색의 세상이 미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런 알뜰한 철학을 알려주는 이 없었지만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부모 자식과 남편에게 색색 조각보의 아름다움과 미감의 깊이를 가슴으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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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에는 무명, 여름에는 모시와 삼베, 겨울에는 명주옷으로 사계절을 맞이하며 길쌈과 바느질은 온전히 부녀자의 몫이었다. 남정네들이 바깥 큰 사랑에서 서책을 읽고 세상과 우주의 이치를 궁구(窮究)하는 동안, 여인들은 규방에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했다. 층층시야 웃어른들의 수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길고 지루한 여름철의 무료함이 좁은 집 안 여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뒤울 안 장독대 봉선화 꽃구경도, 담 너머 솔숲에서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도 우울한 심사를 날려버릴 수 없었다. 봄날 나물 캐러 들판에 나가 건너편 마을 총각 생각에 웃음 짓던 시절 인연을 생각하며 어제 깁다만 치마저고리를 다시 만진다. 실과 바늘이 한 땀 한 땀 이어질 때마다 옷 모양이 난다. 옷감을 마르고 난 자투리를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조각보 생각이 든다. 홍화를 빨갛게 물들인 모시와 진한 남빛 쪽색을 옆에 대어 본다.

붉은색과 푸른색. 보색이 만드는 강렬하면서도 시원한 눈 맛이 난다. 이제는 아예 자투리 천이 아니라 물들인 천 자체를 삼각형, 사각형으로 길이를 재어 잘라낸다. 작정하고 만든 조각보에는 공예가 아닌 예술의 체취가 풍긴다. 비록 무명의 여인들이지만 마음만은 장인의 손에서 우러난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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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는 명주나 삼베 모시의 바탕색 그대로를 이어 붙여 만든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쪽, 치자, 홍화, 소방목, 감, 오배자, 꼭두서니 등 자연 염료를 이용해 색색으로 염색했다. 염료가 귀한 서민들조차 천을 그대로 두지 않고 감물과 황토, 먹물같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염료로 물들여 조각보를 완성했다. 천 조각을 바느질하다 보니 이음새가 자연스럽게 선으로 나타나 경계를 구획한다. 마치 20세기 현대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이나 파울 클레의 작품을 대하는 것 같다. 조각보는 추상화가의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조각보가 보여주는 순수 조형의 아름다움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이슬람과 만다라의 세계

조각보는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단순히 천 조각을 짜깁기한 삼베 조각보부터 천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계산해 잘라내 만든 명주 조각보까지 나름의 조형 규칙을 보인다. 자연스럽게 재단된 삼베 조각보는 조선 유교의 자연주의 철학처럼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 한옥의 덤벙주초에 올린 구불구불한 조선소나무 밑둥치를 보는 듯, 라일락 꽃그늘 아래를 걸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스쳐가는 꽃향기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다. 산골 다랑이 무논같이 구불거리며 이어진 조각은 어느 물건을 걸치거나 감싸도 천연스럽다. 자연 그대로를 담아낸 포장이다. 삼베 조각보의 대부분이 서민의 순수로 빚은 가난의 산물로 서민의 풍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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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급 명주와 모시로 만든 조각보 가운데에는 놀랍게도 멀리 인도의 불교나 서역의 이슬람 전통을 간직한 문양이 보인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도형화해 시각적 몰입의 경지를 유도하는 불교 만다라의 도상과 세라믹 타일 같은 기하학적인 이슬람 패턴이 그것이다. 멀리 중국과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건너 서역 아랍에 뿌리를 둔 그 문양과 형태가 극동의 조그만 조선의 사대부 안방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이슬람 문양은 인물과 동물의 형상을 금지하고 꽃과 풀, 그리고 기하학적 형태를 발전시켰다. 청화백자에 보이는 당초문의 유려한 연속무늬와 알함브라 궁전의 천장 별빛 무늬는 대표적인 이슬람 문양이다. 조각보에는 문양은 나타나지 않지만 헝겊을 이어대는 패턴에는 이슬람 양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사각형 타일은 이슬람의 장식성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명주 조각보에서 보이는 사각형 연속무늬의 배열은 마치 이슬람 세계의 장엄을 대하는 듯하다. 사각형 색동 조각보 패턴의 큰 사각형으로부터 점차 가운데로 향하는 작은 사각형의 소멸은 한 점을 향한 구도자의 시선이다. 그것은 분명 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하는 만다라의 세계다. 그게 조각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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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미학의 정수

조각보는 화려하다. 하지만 일본처럼 문양이 화려하거나 중국처럼 수(繡)가 요란하지 않다. 그저 순색의 화려함이다. 유치한 듯 화려하지만 고급스런 색이다. 어쩌다 단색의 삼베 조각보도 눈에 띄지만 그것조차 담백한 유려함이 있다. 왜 조선 여인들은 사대부들의 절제된 색감과는 대조적인 이 화려함을 사랑했을까.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색들. 한복의 치마저고리의 강한 배색. 무늬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색이 화려하다.

한국인의 색감에는 은연중 실크로드를 타고 흘러 들어온 북방 문화의 영향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인도의 화려한 단청과 서역의 강렬한 색감은 모두 투명한 햇빛에서 시작됐다. 해발 3000m 티베트 고원이나 히말라야 산맥 고산에서 펄럭이는 라마교 깃발 룽다(風馬)에서 보이는 선연한 오방색은 우리가 이즈음 쓰고 있는 한국의 색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모두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순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만국기가 펄럭이듯 히말라야 허공을 색으로 물들인다. 그 색들이 불교로, 사람으로, 사상으로 이어져 동쪽으로, 동쪽으로 흘러 들어와 우리의 고유한 색체계로 자리매김한다.

색이 화려하다는 것은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과 같다. 색은 에너지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적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너무도 심오한 불교 철학의 정수이지만 글자 그대로 풀자면 ‘세상은 색이다’라는 것이다. 초봄에 피는 꽃은 햇살이 엷어 매화나 생강나무처럼 핏기가 없는 흰색과 연한 노랑이지만 날이 길어지고 봄이 깊어지면 영산홍처럼 꽃색이 점차 진해진다. 그러다가 여름이 더 가까워 햇살이 따가워지면 모란처럼 아예 진한 빨강이나 자주로 변해 진한 향기를 뿜는다.

색과 향은 모두 에너지다. 색은 새와 벌, 나비를 불러들여 열매를 맺고 종자를 퍼트리려는 자연의 본능이다. 조선의 규방색도 사계절이 뚜렷한 반도의 강한 햇살과 북방 문화의 영향을 고스란히 담아낸 결과다. 조각보, 수, 베갯잇, 한복의 색은 모두 강하지만 담백한 유교의 품위와 자연의 본능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규방미학의 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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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연한 하늘이 창문을 흔든다. 봄이 비로소 완성된다. 진정한 신록의 계절,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푹신하다. 인생은 코미디다. 남에게는 웃기지만 자기에게는 현실일 수밖에 없는 세상. 불현듯 조각 생각이 스친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세상은 내 눈에서 멀어진다. 생각은 너무 가까이서 밀고 당기지 말라는데…. 나도 생각을 너무 가까이 들이지 말아야지. 아침부터 뒤울 안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하다. 책을 꺼내 뒤적이다가 문득 작년 이맘때 쓴 수화당 일기가 눈에 든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날이 개고 하늘이 높았습니다. 인왕산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해 산에 오르다가 보니 찔레꽃이 환하게 피었습니다. 걸음을 옮겨 향기를 맡았습니다. 비 온 다음이라 향기는 그리 진하지 않았지만, 그 향기가 눈부신 하얀색만큼이나 순수했습니다.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그 향기는 너무 슬프다고, 그래서 목 놓아 울었다고, 찔레꽃처럼 우는 당신은 찔레꽃이라고, 어느 중년 가수의 구성진 노랫소리가 귀에 맴돌았습니다. 가난한 시절 찔레꽃이 피면 다가오는 보릿고개의 설움을 나는 잘 모르지만, 아직 생존해 계신 부모님의 어릴 적 말씀에는 당신의 고단한 세월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 봄이 가고, 다시 새봄이 오고, 우연히 마주한 찔레꽃에서 삶의 설움이 묻어납니다. 지금보다 더 세월이 가고, 더, 더 세월이 가서 다시 찾아온 강산의 봄 언덕에서 찔레꽃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바람에 꽃잎이 집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온 명주 조각보를 삼층 장롱에서 꺼내 보여주셨다. 어떠냐? 이쁘지?
[최선호의 디자인 오디세이] 조각보, 세상을 따듯하게 감싸는 아름다운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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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 소장. 현재 전업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