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마법사’김창균 유타건축 소장

과정의 즐거움이 만들어낸 만족스런 결과물. 건축주의 삶을 담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과거와 현재 이야기, 그리고 10년 후 혹은 20년 후 알 수 없는 미래의 모습까지 감안해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 집. 가족과 이웃과 또 자연과 소통하는 집. 조금씩 형태도 다르고 채워진 내용도 다르지만 김창균 유타건축 소장의 손끝에서 탄생한 집들의 큰 틀은 그러하다. 건축주보다 더 건축주의 집을 고민하며 마법 같은 공간들로 집주인의 감동을 사는 김 소장은 과연 집 잘 짓는 건축가임에 틀림없다.
[BEYOND ARCHITECTURE] 가족과 이웃, 자연과의 친밀한 소통을 꿈꾸다
처음엔 그저 ‘예쁜 집’이 전부인 줄 알았다고 했다. 2009년 유타건축을 개업한 초창기만 해도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건축주의 삶을 생각하고 집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하면서 김창균 소장이 내린 결론은 공간의 ‘멀티플’이었다. 계단도 단순한 계단 그 이상이 되고, 거실도, 안방도, 마당도 틀에 박힌 구조와 공간 기능이 아닌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독주택 붐과 함께 또 하나 달라진 게 바로 건축주들의 생각 변화였다. 외압적인 규모와 화려한 겉모습에만 치중하던 주택들이 각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다운사이징’이라는 화두도 변화에 한몫했다. 그러니 멀티플한 공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김창균 소장이 ‘집 잘 짓는 건축가’란 수식어를 달게 된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물론 김 소장이 유명세를 치르게 된 데는 2011년 수상한 ‘젊은 건축가상’의 영향이 컸다. 이후 단독주택 건축 붐까지 겹치면서 김 소장을 찾아오는 건축주들은 더욱 많아졌다. 그러나 단지 이름값에 의존했더라면 지금처럼 짓는 집마다 화제가 되지는 못했을 터다. 건축주보다 더 건축주의 삶을 고민하며 집을 짓다 보니 건축주들로부터 “어떻게 나보다 우리 집을 더 잘 아느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첫 미팅에서 완공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건축주를 만나 이야기하고 내 집을 짓듯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그 비결이었다.

“집의 시작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가족들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죠. 얼마 전 한 건축주를 만나 ‘오늘부터 집이 지어지는 그날까지 열흘에서 2주 간격으로 저를 매번 보시게 될 겁니다’ 했더니 놀라시더군요. 저는 과제도 많이 내주는 편입니다. 상상하고 찾아보고 이야기하며 그렇게 건축가의 집이 아닌 건축주의 집이 되는 겁니다. 단 그 모든 과정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내 집을 짓는다는 그 자체로 설레는 일이잖아요.”


공간 실험과 건축적 완성의 전형, 양평 갈라파고스 주택
지난해 완공된 양평의 갈라파고스 주택은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경기도 양평군 산수유마을 초입에 위치한 이 주택은 갈라파고스 출판사를 운영하는 부부의 세컨드 하우스다. 소박한 건축주 부부는 미리 땅을 정해놓고 마을과 주변 경관을 거스르지 않는, 튀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집을 원했다. 더불어 텃밭을 일구며 책과 함께 하고 언제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이 그들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였다. 대지면적은 630.0m²지만 그들의 희망 공간은 115.5m² 규모의 2층 집. 중학생 아들 하나를 포함해 세 식구가 주로 이용하지만 오가게 될 손님들을 위한 공간까지 포함해 효율적이면서도 마법 같은 공간 구성이 필요했다. 허가 면적은 최대한 작게 하면서 부족한 공간은 다락을 활용하는 게 김 소장이 택한 방법이었다. 먼저 단순 직사각형 모양을 한 대지는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저 그런 인공적인 주택이 될 우려를 안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삶이 아닌 느리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건축주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김 소장은 수많은 고민 끝에 집 전체를 여러 개의 켜로 나누었다. 1층에 많게는 7개, 적게는 5개의 수직축이 생겨났다. 마을 입구라는 특성상 프라이버시를 위해 현관을 적당히 가릴 벽을 설치하면서 만들어진 포치에서부터 홀과 거실, 식당과 작은 도서관, 그리고 안방으로 이어지는 공간들이 수평으로 펼쳐진다. 입구의 홀과 작은 서재는 1층의 공간들을 연결하고, 특히 작은 서재는 거실 공간에서 안방을 별동으로 떼어내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부부가 차 한 잔 나누며 밖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수평 공간을 나누는 것과 함께 공간별로 단 차이를 둔 것도 기능 분리의 차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집에 특별한 색깔을 입히면서 즐거움을 주는 역할까지 한다. 또 3개의 다락 공간을 통해 즐거움과 함께 공간 보충이라는 효율성까지 얻었다.

“세컨드 하우스의 특성상 현관에서 집 안을 오고가며 달리 보이는 광경들을 건축주 가족들이 만끽하게 하고 싶었어요. 아파트에 살아온 그들이 지금까지와 다르게 1층에서 외부를 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거지요.”

공간의 실험은 건축주의 만족과 건축적 완성 면에서 둘 다 성공적이었다. 공간이 주는 재미와 기능적인 측면도 그러했지만, ‘이 집은 무슨 집이냐’는 듯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그로 인한 유명세도 즐거운 경험이 됐던 것. 이렇듯 공간에 대한 김 소장의 지론은 명명백백하다.

“좋은 집은 재료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공간으로 먼저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재료는 숨어 있어야 하죠. 양평 주택에는 외부 마감재로 러시아 고벽돌을 썼는데, 그건 비싼 재료를 부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묵직하면서도 품격 있는 집을 원했던 건축주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주택은 절대 실험적이어서는 안 돼요. 건축주가 사는 집이니까요. 다만 그런 고민은 반영하죠. 10년 뒤, 20년 뒤에도 친구 같은 집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또 하나, 훗날 달라진 가족 구성원과 삶의 모습까지 미리 생각하고 공간의 변화 가능성을 담아내야 합니다. 평생 집이 아닐 수도 있고, 평생 산다고 해도 구성원이 달라지고 나이 들어가니까요.”


꿈꾸던 삶과 집에 대한 로망의 실현, 성주 팔랑개비 주택
얼마 전 완공된 성주 팔랑개비 주택에서는 공간 실험이 더욱 다양하게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미 결혼해 출가한 두 딸을 둔 건축주 부부는 경북 성주에 귀농주택을 짓고자 했다. 1954년생 대표적인 베이비부머인 그들은 많은 이들이 은퇴 후에 꿈꾸는 삶을 그렇게 실현코자 한 것이었다. 설계부터 모든 과정은 서울에 있는 두 딸과 사위들이 진행했다. 자식들은 부모님에게 최고의 집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느리면서도 에너지가 덜 들고, 자연을 많이 접하는 집, 그야말로 최근 단독주택의 트렌드 바로 그대로였다.

“처음엔 번듯한 남향집을 원하시더군요.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연친화적인 성향에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이벤트를 즐기는 분들이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게 될 텐데 남향집에서 마당 파티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죠. 해서 팔랑개비처럼 주택을 배치해 안으로 작은 마당을 만들었어요. 안쪽 마당은 외부의 방해 없이 우리 가족만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면서, 세 개의 건물을 팔랑개비처럼 띄워 배치하면서 건축주 가족이 원했던 갤러리 같은 공간과 한식 황토방이라는 희망사항까지 충족시킬 수 있었죠.”

김 소장은 전체를 1층으로 구성하면서 어머니를 위한 공간인 황토 구들방을 따로 구분해 두었고, 안방, 거실과 주방을 독립적 영역으로 두면서 이들 공간을 내부 복도를 통해 연결했다. 복도는 자연스레 주변 자연과 마당으로 연결되면서 마치 갤러리 같은 모습이 구현됐다.

“사실 건축주가 말한 갤러리는 그림만 생각한 갤러리였지만 저는 자연까지 그 대상으로 생각했어요. 내가 아닌 객체, 즉 자연도 얼마든지 갤러리의 대상이 될 수 있죠.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액자가 되는 겁니다. 주변 풍광과의 조화를 위해 외부 마감재는 색채가 없는 전벽돌을 사용했는데, 조금은 묵직하면서도 경사지붕의 경쾌한 리듬감을 살리도록 구성했어요.”

인터뷰가 이뤄진 건 건축주가 입주하기도 전이라 아쉽게도 ‘살아본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고 집에 대한 로망까지 현실화한 또 한 번의 공간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주택을 짓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실현 가능성을 떠나 누구나 자기 집 짓고 사는 것에 대한 로망들을 품고 산다는 게 그 반증이겠죠. 그렇지만 다들 하니까 짓는다가 아니라 건강한 삶을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양평 갈라파고스 주택 HOUSE PLAN
양평 갈라파고스 주택 외부 전경. 느리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위해 집 전체를 여러 개의 켜로 나눴다.
양평 갈라파고스 주택 외부 전경. 느리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위해 집 전체를 여러 개의 켜로 나눴다.
[BEYOND ARCHITECTURE] 가족과 이웃, 자연과의 친밀한 소통을 꿈꾸다
부족한 공간은 다락으로 보충했다. 아들의 공간으로 활용될 다락.
부족한 공간은 다락으로 보충했다. 아들의 공간으로 활용될 다락.
책이 많은 건축주 부부의 집은 곳곳에 서재를 둠으로써 위압적인 서재의 모습을 피했다.
책이 많은 건축주 부부의 집은 곳곳에 서재를 둠으로써 위압적인 서재의 모습을 피했다.
거실과 안방을 분리하는 1층의 작은 서재.
거실과 안방을 분리하는 1층의 작은 서재.
마을 초입의 특성상 현관을 가리기 위한 가림벽이 설치됐다.
마을 초입의 특성상 현관을 가리기 위한 가림벽이 설치됐다.
대지 위치
경기도 양평군 | 지역지구 보존관리지역, 준보전산지
대지면적 630.0㎡ | 건축면적 113.4㎡ | 연면적 127.7㎡, 다락방 23.8㎡ 별도
규모 지상 2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기초)+경량 목구조
외부 마감 치장벽돌(고벽돌), 스터코 뿜칠 마감



성주 팔랑개비 주택 HOUSE PLAN
[BEYOND ARCHITECTURE] 가족과 이웃, 자연과의 친밀한 소통을 꿈꾸다
성주 팔랑개비 주택의 외부 전경. 세 개의 동을 팔랑개비처럼 배치해 프라이빗한 안마당을 확보하고 건축주의 바람대로 갤러리 같은 공간을 완성했다.
성주 팔랑개비 주택의 외부 전경. 세 개의 동을 팔랑개비처럼 배치해 프라이빗한 안마당을 확보하고 건축주의 바람대로 갤러리 같은 공간을 완성했다.
[BEYOND ARCHITECTURE] 가족과 이웃, 자연과의 친밀한 소통을 꿈꾸다
팔랑개비 주택의 내부 모습.
팔랑개비 주택의 내부 모습.
각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 큰 창을 통해 자연 그 자체가 훌륭한 액자 역할을 한다.
각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 큰 창을 통해 자연 그 자체가 훌륭한 액자 역할을 한다.
대지 위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 지역지구 계획관리지역 | 대지면적 596.00m² | 연면적 125.6㎡(다락방 포함) | 규모 지상 1층+다락 | 구조 경골목구조, 황토 구들방 | 외부 마감 전벽돌, 스타코, 필로브 AL창호, 컬러 강판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사진 이승재(인물) 기자·진효숙(양평 건축)·황효철(성주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