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 작가 권무형

권무형 작가는 1996년 프랑스로 떠나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작가다.

사진작가, 프로세스 작가, 전위예술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에게 예술의 진정성을 찾아본다.
[ARTIST] 회화·사진·행위예술까지 전방위 아티스트의 예술론
권무형 작가를 만난 건 봄볕이 내리기 시작한 3월 초였다.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예사롭지 않은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덥수룩한 수염, 질끈 묶은 긴 머리가 인상적이었는데, 거칠게 자란 수염에 비해 눈빛이나 말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중국 베이징 798에 있는 포스 갤러리 소속인 그는 한국국제아트페어 참가를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국제아트페어 후에는 부산 이듬갤러리에서 한 달간 개인전을 가졌다. 3월 11일부터 독일 아트 칼스루에 국제아트페어에 초청돼 독일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3년의 미술관 기행에서 받은 충격
최근 일정에서 알 수 있듯 권 작가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다.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학 시절 극사실화로 상도 타고 이름을 날렸던 그는 미대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 3년여를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1996년 돌연 프랑스로 무대를 옮겼다. 한국 화단의 부조리와 부패가 젊은 작가의 결기를 자극한 것이다.

예술의 본고장에서 그가 처음 한 일은 근현대미술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영국, 미국 등 유명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시작한 미술관 기행은 3년간 이어졌다.
‘Meditation’, Photography, 180x208cm, 2006년, Paris
‘Meditation’, Photography, 180x208cm, 2006년, Paris
그중 1997년 방문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소피아 현대미술관은 그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드리드시 아토차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소피아 현대미술관은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가 있는 걸로 유명한 곳이다. 5층짜리 건물인데, 1층부터 시대별로 작품이 진열돼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현대미술이 자리 잡고 있다. 맨 위층에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도 있다. 소피아 현대미술관을 나오면서 그는 절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새롭다고 해 온 모든 그림은 다른 작가의 아류에 불과했던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열심히 하려던 차였는데, 그조차도 이미 다른 작가가 했던 거였어요. 우리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런 미술이 있더군요. 존경하던 작가들의 작품도 아류에 불과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대한 꿈을 갖고 유학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때부터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1년 6개월 유럽 곳곳을 돌아다녔다. 작품 활동이라기보다 머릿속을 정리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1999년 2월 28일, 밤 12시에 삭발을 했다. 삭발하고 남은 머리카락, 면도한 털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3년 고민의 결과였다. 가장 권무형다운 걸 찾던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짜내야 한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때 어린 시절부터 화두처럼 붙들고 있던 ‘시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유년기를 보낸 경상북도 영주 철길에서는 교통사고가 잦았고, 그곳에서 그는 적지 않은 죽음을 목도했다. 죽음과 시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시간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인간의 피부도, 머리카락도 변하기 마련이다. 백발이 서린 머리카락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재료였다. 현실을 포착하는 사진은 표현 형식으로 나무랄 데 없었다. 그게 가장 권무형답다고 여겼다. 그 순간, 그는 삭발을 하고 머리카락을 카메라에 담았다. 동영상으로도 남겼다.
‘Meditation’, 108x108cm, 2012년, Mixed media on wood B
‘Meditation’, 108x108cm, 2012년, Mixed media on wood B
그림도 바뀌었다. 그림은 기본적으로 영원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물감도 색이 발하고, 종이나 캔버스천도 삭기 마련이다. 광물로 물감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가루가 돼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윤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림에 시간의 개념을 도입해 끊임없이 덧칠하기 시작했다. 형태는 윤회를 나타내는 동그라미가 가장 적절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후에는 찌꺼기를 거르듯 캔버스를 세웠다. 물감의 정수만 남으면 그 위에 또 물감을 칠하는 식으로 작업을 반복했다. 작업을 되풀이하면서 작품은 나무가 자라듯 두터워졌다. 덧칠이 극에 달하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듯 칠한 부분에 금이 갔다. 대학 시절 극사실화에서 미니멀아트로, 다시 프로세스아트로 바뀐 것이다.


유럽 미술계에 충격을 던진 ‘명상’ 시리즈
권 작가는 삭발 한 달 후 달라진 작품을 선보였다. 삭발 후 한 달의 사진을 1999년 프랑스 파리 이시레 물리노 내 아스널 전시장에 전시했다. 한 달간 덧칠한 그림도 함께 전시했다. 사진과 아크릴 작품을 합쳐서 모두 30여 점, 작품의 제목은 모두 ‘명상’이었다.

작품을 접한 평단과 관객은 모두 황당해했다. “이게 도대체 뭐냐”부터 “이것도 예술이냐”는 반응이 이어졌다. 큰 호평은 없었지만 적어도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 덕에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전시를 본 이란 문화재단에서 별도의 전시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 후 해마다 전 세계 여러 전시장에서 전시를 가졌다.

10년을 같은 작업을 했다. 그러다 스스로 작업이 지겨워졌다. 그래서 입체를 시작했다. 물감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캔버스 위에 세웠다. 같은 모양의 물감을 세운 후 전체적으로 원을 만들었다. 또 다른 ‘명상’의 탄생이었다. 2010년의 일이다.
‘Meditation’, 65.1x53cm, 2009년, Acrylic on Canvas
‘Meditation’, 65.1x53cm, 2009년, Acrylic on Canvas
종이 작업도 새롭게 했다. 종이를 감아서 원을 만들기도 하고, 원 사이사이에 형광물질을 넣기도 했다. 형광물질 덕에 불을 끄면 동그란 별무리가 부각됐다. 한 발 더 나아가 전체 원이 중심으로 모이는 작품도 만들었다.

사진, 회화, 조소로 이어진 작품은 행위예술로도 확장됐다. 머리카락을 기르는 자체가 행위예술이었다. 퍼포먼스를 동영상에 담기도 했는데, 그 덕에 2009년 베이징 비엔날레 798에 행위예술 작가로 초대받기도 했다.

연출 사진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얼굴이 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염은 뿌리, 얼굴은 둥치, 머리카락은 나뭇가지 같았다. 스스로 나무가 돼 물가에 섰다. 물가에 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표현해 보고 싶어서였다. 여기에 근원의 이미지를 가진 알, 소리를 담은 소라 등을 오브제로 사용했다.

이처럼 그는 다양한 작업을 해 왔다. 작가가 꼭 한 가지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카소도 회화뿐 아니라 조각, 도자기 작품을 했고, 백남준도 비디오아트뿐 아니라 회화, 판화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서양 예술계에서는 이미 동양화가, 서양화가, 조각가 등으로 작가를 구분하지 않은 지 오래다. 아티스트라는 단어 속에는 멀티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멀티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만 봐도 미술, 의학, 과학 등 두루 섭렵했거든요. 화가라고 그림만 그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가 갇혀 있는 삶이기 때문에 포괄적인 작품이 나오기 어렵죠.”

그가 그랬다. 가장 자신다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고, 그걸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했고, 동영상으로 담다 보니 행위예술로까지 이어졌다. 무엇을 보여 줄 것이냐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도 그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것과 불교적인 것의 융합, 인간과 신의 해소되지 않는 갈등 등을 치유의 관점에서 사진에 담을 계획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너무 예쁘고 팬시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 미술 시장의 흐름에도 뒤처져 있고요. 지금이야말로 작가들이 양심에 손을 얹고 자문해야 할 때입니다. 진정한 작가인지 아니면 밥벌이를 위해 예술의 이름을 빌리는지 자문해 봐야죠. 작가는 자기만의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나만의 길을 만들어서 그 길을 가야죠. 예술의 진정성은 거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