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건축 기행 그리고 인생’(4)

안도 다다오와 나오시마 예술 섬 프로젝트
2007년 5월 여행자 모임인 지중해클럽에서 일본 나오시마 섬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나오시마 섬 건물 프로젝트와 현대 예술작품들은 퇴락하던 섬을 문화로 살린 특별한 전형(典型)이었다. 나오시마 섬의 일련의 예술 프로젝트는 베네세 그룹(Benesse Corporation·옛 후쿠다케출판사)이라는 한 기업에 의해서 기획, 운영되고 있다. 글·사진 김종훈 회장
‘예술의 섬’이라고 불리는 나오시마 섬.
‘예술의 섬’이라고 불리는 나오시마 섬.
‘예술의 섬’이라고 불리는 나오시마 섬은 혼슈와 시코쿠 지방 사이에 위치한 가가와 현에 있는 세토 내해(內海)의 작은 섬으로 다카마쓰 항이나 우노 항에서 페리로 갈 수 있다. 1989년부터 베네세 그룹 후쿠다케 사장의 비전과 리더십으로 섬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오랜 금속제련 공장의 공해 탓에 자연이 심하게 황폐해지고 인구 감소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배를 타고 섬에 발을 딛는 순간 우리에게 익숙한 ‘붉은 점박이 호박 조각’(구사마 야오이 작품)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여기저기에 설치된 예술품들이 눈길을 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미술관으로 이동했는데, 원래 건축가의 의도는 작은 배를 타고 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잔교(dock)에 내려 그가 설계한 계단 길과 바닷길을 따라 도보로 미술관으로 이동하도록 돼 있었다고 한다. 잔교에서 바라보는 미술관은 절반이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나오시마 섬이 국립공원이라는 점을 고려한 친환경적인 설계 콘셉트다.

첫 건축 프로젝트인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숙박시설을 곁들인 ‘체류형’ 미술관이라는 특별한 기획이었다. 1988년 5월에 설계하기 시작해 1990년 10월에 설계가 완료되고 1년 5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92년 3월에 미술관이 완공됐다. 실내 전시물로는 세토 내해의 유목(遊牧)을 모티브로 한 리처드 롱(Richard Long)의 설치작품, 유리창을 수많은 납 두루마리로 뒤덮은 야니스 쿠넬리스의 작품, 테라스 벽을 사용한 히로시 스키모토의 ‘타임 익스포즈드’ 등의 작품이 특별한 공간에 전시돼 있다.

주공간인 원형의 주전시실에는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의 설치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이것은 ‘죽기 전에 봐야 할 100개의 작품(One hundred live or die)’ 중 하나로 선정됐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안도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 석축으로 설계됐고, 내부 공간은 지상으로 솟은 공간으로부터 빛이 넘쳐나게 비춰 들고 세토 내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가 실내공간에 연속으로 건축돼 자연과의 일체감을 보여 주고 있다.

1995년에는 별관으로 뮤지엄보다 더 높은 언덕 정상에 타원형의 물의 정원을 가진 부티크 호텔인 숙박동 ‘오벌(Oval)’이 지어졌다. 오벌은 왜 안도 다다오가 위대한 건축가로서 평가받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걸작이다. 연면적 598㎡(약 180평)에 게스트 룸이 6개밖에 안 되는 이 호텔은 산악모노레일로만 접근이 가능한데, 예술품이라고는 객실 3개에 설치돼 있는 데이비드 트램렛 작품과 리처드 롱의 벽화(wall painting)가 유일하다. 그러나 건축과 자연이 종국에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안도 다다오가 물의 건축, 빛의 건축을 지향하는 건축가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 주고 있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의 부티크 호텔 ‘오벌’.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의 부티크 호텔 ‘오벌’.
타원형의 건물 내부 중정은 하늘로 뚫려 있고 대부분의 내부 공간은 타원형의 수조로 형성돼 있어 하늘과 물과 바다가 일체가 됐고, 6개 객실 모두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며 일출 혹은 일몰을 볼 수 있게 설계됐다. 수조 주변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구름, 빛에 반사된 수조의 현란함과 저 멀리 보이는 세토 내해의 풍광은 건축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감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1997년부터 베네세 그룹의 아트 프로젝트는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필두로 지역 사회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3km 떨어진 섬 반대쪽 혼무라(本村) 지구에서 ‘집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영향으로 빈집이 늘고 있던 오래된 부락에 현대 예술의 네트워크를 접목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찾을 수 있게 하자는 특별한 프로젝트였다. 빛의 예술가인 미국의 제임스 터렐과 일본의 설치예술가인 미야지마 타츠오 등의 작품들이 안도 다다오와 협력으로 한 집에 한 작가의 작품씩 설치돼 있다.

인구 3500명 정도에 불과한 나오시마 섬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하게 한 새로운 미술관이 2004년 완공됐는데, 이것이 바로 미술관 전체를 땅속에 배치한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이다. 지중미술관은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3인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는 프로그램하에 미술관이 지어졌다.

제임스 터렐은 빛과 공간의 예술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 왔으며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의 마술로 관람자에게 새로운 공간 체험을 선사한다. 모네룸(Monet room)에는 초대형 작품인 ‘수련’이 전시돼 있고 바닥은 2×2cm 크기의 70만 개 손으로 가공한 흰 대리석으로 마감돼 있다.

지중미술관 이후에도 2006년 새로운 목조호텔 ‘파크(Park)’와 ‘비치(Beach)’ 동이 완공됐으며 2010년에는 이우환 미술관이 완공됐다.


노출 콘크리트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천재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역작
안도 다다오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73세(1941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독학으로 세계적 거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프로복서 출신으로 학력주의가 뿌리 깊은 일본 사회에서 독학으로 건축의 길을 개척한 인물로서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건축가다. 그는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일찌감치 1995년에 수상했다.

빛과 물의 건축가로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세계 곳곳에 건설했고 우리나라에도 많은 작품이 있다. 최근에 완공된 한솔 오크밸리에 있는 ‘뮤지엄 산’이 국내 최대이자 그의 건축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품이다. 이곳에는 나오시마 지중미술관에 있는 제임스 터렐의 4개 작품이 설치돼 있어 나오시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그는 50여 년 동안 건축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노출 콘크리트를 고집하고 있다. 그의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집착은 그가 건축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프랑스의 세계적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의 콘크리트에 대한 여러 철학 중 독특한 것은 “노출 콘크리트는 벽 안팎을 단번에 마감할 수 있고, 제한된 예산과 부지 내에서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싶다는 그의 욕구 때문”이라고 그는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실제로 그의 처녀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과 빛의 교회에서 건축공사비 절감을 위한 극단적인 선택으로 냉·난방이 전혀 없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을 선택하고 있다. 나오시마 예술 섬 프로젝트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단연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이 버려진 섬과 쇠락하는 마을을 구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빌바오 미술관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오시마 예술 섬 여행은 건축이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느낀 감동적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