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김홍탁 마스터 ‘디지털 놀이터’

소비자에게 ‘물건을 사라’고 광고하는 대신 ‘우리 놀이터에서 놀다 가시죠’라고 권한다. 승자 독식이 치열한 디지털 정글에서 살아남기도 숨이 찬데,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바로 제일기획 김홍탁 마스터의 ‘사람을 움직이는’ 마케팅 노하우다. 귀 기울여 들어 보니 책 표지에 적힌 ‘소비자를 놀게 하라!’는 문구가 눈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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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얏트 호텔과 리움 갤러리가 한눈에 담기는 통 창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서울 이태원로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이 방의 주인은 김홍탁 마스터다. 제일기획의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이자 실무 감각을 갖춘 임원급 전문가에게 부여되는 마스터라는 공식 직함이 그의 이름에 덧붙여져 있다. 여느 직장과 뭔가 다른 직책만큼이나 사무실 분위기도 다르다. 그 흔한 명패도 없거니와 두서없이 섞인 책들이 자리를 못 잡은 채 위태롭게 벽에 기대어 가슴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알록달록한 키덜트 토이들이 있는가 하면 비타민 음료 병에 김 마스터의 캐리커처 얼굴이 담겨 있다. “아, 그거 팀 직원들이 직접 제작해 준 거예요.” 핏이 좋은 청바지에 블랙 반팔 티셔츠, 트렌디한 스니커즈를 신은 김 마스터가 다가온다.



마스터가 디지털 정글로 간 까닭은
먼저 그를 소개하자면 해외 광고 수상 내역이 화려하다 못해 여백을 찾기 어렵다. 국내 최초로 글로벌 광고 무대에 뛰어든 이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국제 광고제인 칸광고제(Cannes Lions Festival)를 비롯해 유수의 광고제에서 거머쥔 수상만 해도 100회에 가깝다. 2012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주최한 칸 키메라의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화제가 되기도 했던 김 마스터는 대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만나고 싶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는) 광고인으로도 손꼽힌다.

1995년 제일기획에 입사,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지금의 크리에이티브 이노베이션 그룹 마스터(전문 임원급)가 되기까지 그가 몸소 겪은 업계의 변화는 고스란히 광고 시장의 다변화와 직결된다. 쉬운 예로 그가 몸담고 있는 제일기획의 공식 소개 명칭은 ‘광고회사’에서 현재 ‘글로벌 마케팅 솔루션 컴퍼니’로 진화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더욱 빠른 속도를 체감하며 살고 있는 그는 최근 ‘디지털 놀이터’를 펴냈다. 이 흔하디흔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책을 집어 들게 만드는 건 분명 김 마스터의 힘일 터. 실제로 책은 그가 지난 10년을 ‘디지털 데케이드(digital decades)’라 명명하고 디지털 마케팅 키워드 10가지를 분석한 내용들이다.

인터뷰가 이뤄진 날은 7·30 재·보궐 선거가 치뤄진 다음 날이었다. 선거에서도 디지털의 힘이 막강한 요즘이니 화제는 자연스레 선거 얘기로 시작됐다.


SNS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합니다.
“정치나 선거 결과는 워낙 예측이 힘들지 않습니까?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미디어가 갖게 된 미덕 중 하나는 바로 사회가 이전보다 투명해졌다는 것이죠. 이제 더 이상 거짓말이 안 통하는 시대가 됐어요. 종이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다가 지금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을 바로 접하잖아요. 책에도 담은 내용인데 ‘우리 모두가 동시간대에 연결돼 있다’라는 연대감이 있죠. 그 결과 소셜에서는 옳은 일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겁니다. 쉽게 말해 진실을 말하고(truth telling), 가치를 공유하는(value talking)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죠. 디지털이 일상에 녹아 있다는 반증입니다.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파급력은 거대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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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겪은 디지털 마케팅을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책에 담았습니다.
“2003년 이후의 디지털 10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소비자들이 광고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놀이터’ 개념,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이럴’,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협업해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컬래버레이션’, 아날로그 요소를 담은 마케팅을 소개하는 ‘디지털적 따뜻함’ 등이 담겨 있어요. 각 키워드에 해당하는 캠페인 사례를 함께 실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어요.”


‘소비자를 놀게 하라’고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던데요.
“단적으로 소비자들이 더 이상 광고를 믿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우리 물건 좋아요’, ‘사세요’ 하는 시대는 끝났어요. 자연스럽게 5년 전부터 제 머릿속에 ‘놀이터’가 자리 잡게 됐어요. 소비자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판을 만들어 주면 소비자들이 그곳에서 참여하며 가치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겁니다. 브랜드를 만나고(meet), 브랜드와 놀고(play), 브랜드를 퍼뜨리는(share) 행위가 성공의 핵심입니다.”


지난 10년간 광고 지형이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군요.
“TV 광고는 시청률을 기반으로 집행되고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듭니다. 드라마 한 편 보려고 앉아 있다가 앞뒤로 잠깐씩 노출되는 광고에 소비자가 얼마나 영향을 받을까요. 억대 출연료의 스타 모델을 기용하면 제품은 기억에 안 남고 모델만 뇌리에 남잖아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모바일 족을 잡아야 디지털 마케팅을 선점하는 거죠. 디지털 기기를 도구로 활용해 재미난 놀잇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이전에도 소비자들이 놀기 위한 ‘판짜기’는 여러 책에서 언급됐습니다. 차별화된 지점은 뭔가요.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면 쉽습니다. 브랜드를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죠. 광고계에 이런 말이 있어요. ‘들려주면 잊어버린다. 보여 주면 기억한다. 경험하게 하면 이해한다.’ 일방적으로 말해 주면 잊어버리고 그나마 시각적으로 보여 주면 기억은 하지만, 소비자가 스스로 체험하고 나면 그 브랜드가 삶에 고스란히 스며든다는 공식이죠. 라이프 셰어(life share)라고 하는데 과거의 광고가 완성된 메시지를 대중에게 주입했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참여해야만 광고가 완성된다는 것이죠. 소비자 마음에만 남는 마인드 셰어에서 라이프 셰어로 대이동을 한 셈입니다.”



디지털적 따뜻함과 마케팅의 상관관계
책에 담긴 키워드 중 ‘디지털적 따뜻함(digital warmth)’이나 ‘공유가치 창출’, ‘혁신’으로 화제가 옮겨지자 김 마스터의 눈빛은 더 깊어지고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간 유수의 국제 광고제에서 주목받았던 그의 프로젝트들이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자살대교’로 알려진 마포대교를 ‘생명의 다리’로 탈바꿈시킨 예가 대표적. 그가 강조하는 아날로그 정서의 디지털적 따뜻함이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했다.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의 경우 해외 유수의 광고제를 휩쓸고 반향이 대단했죠.
“지나가는 보행자들의 움직임에 반응해 ‘밥은 먹었어?’ 같은 메시지가 조명과 함께 나타나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프로젝트죠. CJ제일제당의 생수 ‘미네워터’ 바코드 마케팅도 화제였어요. 생수병 하나를 살 때마다 아프리카에 자동으로 100원씩 기부가 가능한 바코드를 삽입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손쉽게 기부할 수 있게 ‘플랫폼’을 만든 것이죠. ‘판매’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가치’를 만들어 내는 플랫폼을 만들자. 그럼 절로 판매로 이어진다고 생각한 것이죠.”


디지털적 따뜻함, 가치 창출을 마케팅과 연결한 거군요.
“테드(TED)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테드의 슬로건이 ‘나눌 가치가 있는 생각(Ideas worth spreading)’이에요. 빌 게이츠, 알랭 드 보통, 제인 구달 등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수준 높은 강연을 무료로 공유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정보나 지식의 공유라는 생태계를 형성한 겁니다. 마케팅에도 이런 형태의 플랫폼을 만들어 활용하자는 것이죠.”


젊은 세대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유는 단순해요. 이 사람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텐데 내가 가진 정보와 경험을 나눠야죠. 그 친구들 고민도 들어주고 아이디어도 교환하면서 역으로 제가 배울 것도 아주 많아요. 지난해에 평범한 노인들을 모시고 젊은이들이 그분들의 경험과 삶을 듣는 실버 톡(silver talk) 행사를 기획했어요. 젊은 아티스트들이 청중으로 초대돼 말씀을 듣고 후에 그것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를 열었어요. 그 과정에서 저 또한 많은 아이디어에 자극 받고 영향을 받았어요.”


이 같은 프로젝트가 ‘디지털 놀이터’와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런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 하나의 장으로 확산되는 것이 바람이죠. 교감이 힘든 두 세대가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전시도 개최하면서 교집합을 찾는 과정입니다. 생각지 못한 시도를 통해 함께 즐겨 보자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마케팅은 물론 기업의 조직 관리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죠.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SNS를 기반으로 ‘전염’시켜 널리 퍼뜨리면 됩니다. 놀고 즐기고 퍼뜨리는 디지털 마케팅의 핵심 공식이 완성되는 거죠.”


디지털에 관한 최근 김 마스터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적정 기술입니다. 착한 기술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누구나 쉽고 편하게 다가가 사용하지만 대신 결과는 아주 획기적인 것이어야 하죠. 듣기만 해도 어렵겠죠. 미래를 예측하긴 힘들지만 어찌됐건 앞으로 디지털 시장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뱃머리를 돌렸어요. 구글 글래스를 착용하고 축구 경기를 분석한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팀의 헤르만 부르고스 코치를 보세요. 양 팀 경기의 실시간 패스, 볼 점유율 등 모든 데이터가 바로 집계됩니다. 이와 같은 적정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마케팅이 제겐 가장 큰 숙제입니다.”


인터뷰 다음 날 우연히 집어 든 잡지 타임스(The Times)에 애플 수석 부사장이었던 토니 파델(Tony Fadell)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 마지막 문장에 눈길이 멈췄다. ‘애플에서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켰다.’ 그 행간에서 김홍탁 마스터의 고민과 비전이 함께 읽혀 영문을 그대로 문자메시지로 보냈더니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한 것 같아요”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창의력을 통해 가치를 공유할 생태계를 일구어 갈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이지혜 프리랜서│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