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경방 사장의 ‘The Classic’ 11th

모차르트 음악에는 반전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밝지만 들을수록 느껴지는 진한 애수는 그래서 더 슬프고 애잔하다.

분명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물 한 방울 맺혀 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명작 ‘행복한 눈물’을 떠올리게 한다고나 할까.

해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잘 연주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감정의 그 미묘한 사이를 오가며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연주자들을 소개한다.
[CLASSIC ODYSSEY] 기쁨과 슬픔 사이,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들
‘좋은 음악이란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 실수가 있더라도 감동이 있는 연주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연주를 접해본 필자가 내린 이러한 결론에는 변함이 없지만 하나 예외가 있으니 바로 모차르트다.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연주자들이 보통 ‘깨끗하고 정확한 연주’라는 공통된 평을 듣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주 작은 실수라도 하면 감명을 주기 어려운 게 바로 모차르트의 곡이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익숙하고 쉬워 보이지만, 절대로 간단치 않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게 연주자들의 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들이 적지 않은 건 그만큼 연주자들에게 모차르트는 연주자로서의 입문이자 또 마지막까지 도달해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를 빛낸 5인의 여류 피아니스트
피아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악기에 걸쳐 다양한 장르의 곡을 숱하게 남겼지만, 모차르트로 명성이 자자한 명연주자들 중에는 유독 피아니스트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류 피아니스트들의 계보가 눈에 띄는데, 피아노가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악기라고 알려진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그 배경에는 다름 아닌 모차르트 곡의 이중적 속성이 깔려 있다. 밝은 곡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밝다고 해서 기쁘지만은 않고, 어둡다고 해서 슬프지만도 않다. 한없이 경쾌한 듯하면서도 듣다 보면 진한 애수가 느껴지고, 더없이 애잔하다가도 아름다운 멜로디에 기분이 좋아지니 모차르트 곡에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 모차르트의 짧은 생애 중에서도 주로 마지막에 숱한 걸작들이 쏟아졌음을 돌아보면, 그의 곡이 담고 있는 복잡다단한 감정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어렵고 고단했던 모차르트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 더, 그의 곡들에는 슬퍼도 절대 슬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차르트의 심경마저 담고 있으니 그래서 더 애달프다. 바로 이 감정의 디테일이 여성 피아니스트들이 모차르트 연주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지.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인 연주자인 클라라 하스킬은 밝은 단조곡 표현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였다. 기쁨과 슬픔, 전혀 상반된 이 두 감정의 환상적 밸런스를 보여주는 하스킬의 연주는 들을수록 가슴이 저민다. 아마 모차르트가 살아서 하스킬의 연주를 들었더라면 분명 감탄을 금치 못했을 터다. 개인적으로도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중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이기도 한 하스킬은 피아노 소나타와 피아노 콘체르토 등 피아노가 메인인 곡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소나타의 반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물론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베토벤의 그것처럼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동등한 위치라는 점에서 단순한 ‘반주’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하스킬의 피아노는 단연 빛난다. 특히 아들 뻘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의 연주는 유럽 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잉그리드 헤블러 음반 표지.
잉그리드 헤블러 음반 표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인 릴리 크라우스는 일찌감치 20대부터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의 반열에 오른 연주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네시아 여행 중 일본군에 잡혀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기도 했던 크라우스는 9년 만인 1948년 유럽으로 돌아간 뒤 모차르트 연주에 더욱 몰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바이올리니스트 시몬 골드베르크와 콤비를 이뤄 미국 중부를 여행하며 연주를 많이 선보였다.

현존하는 연주자 중에는 잉그리드 헤블러와 마리아 주앙 피르스, 우치다 미츠코 등이 있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공부한 헤블러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전곡을 녹음했다. 포르투갈 연주자로 몇 차례 내한공연을 하기도 했던 피르스는 두 번이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일본 피아니스트인 우치다는 1972년 런던으로 이주, 그곳을 거점으로 연주 활동을 해왔으며, 1984년 영국 실내관현악단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며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다고 모차르트가 여류 피아니스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으니, 남성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섬세함이 돋보이는 이들의 연주는 모차르트의 음색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대표적인 예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지휘자로 더 유명한 레오나르도 번슈타인이다.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모든 곡에서 거장의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지메르만은 과연 모차르트의 해석에 있어서도 탁월했고, 피아노를 치며 비엔나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번슈타인의 모차르트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릴리 크라우스 음반 표지.
릴리 크라우스 음반 표지.
다른 장르에 비해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전곡을 녹음한 이가 많지 않다. 총 41곡으로 양적으로도 어마어마했지만, 그보다 한 곡 한 곡 결코 쉽지 않은 모차르트의 곡을 완벽하게 소화하기란 세계적인 거장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3대 지휘자인 브루노 발터마저 모차르트가 어렵다고 이야기했을까.



인간사를 닮은 모차르트의 음악, 그리고 낭만파
모차르트는 비유컨대 사람의 인생을 닮았다. 희로애락이 있고, 그 감정의 복잡함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세심해지며, 연륜이 쌓일수록 감정에 순응하고 조절하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가며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허나 안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쓸쓸함이 남아 있는 것까지 모두 인간사와 비슷하다. 베토벤으로 클래식에 입문해 열광하게 된 필자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차르트에 대한 애정이 깊어가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아닐까.

모차르트를 비롯한 고전음악 자체가 철저히 감정의 절제였다면, 낭만음악은 말 그대로 감정이 흐르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따라갔던 성향의 음악이다. 고전음악과 비교해 스토리와 내용이 풍부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처럼 이성보다 감성을 따르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와 하이든, 베토벤 정도가 거의 전부였던 고전음악과 달리, 낭만음악 시대를 이끈 음악가들은 너무나도 많다. 고전음악을 마무리하고 낭만음악의 시작을 알린 베토벤과 동시대, 같은 비엔나에 살며 베토벤을 존경했던 슈베르트가 본격적인 낭만음악 시대를 열었다면 슈만, 쇼팽, 멘델스존, 바그너, 로시니, 그리고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까지 낭만음악의 꽃을 피운 음악가들의 이름은 무수하다. 동시대에 이처럼 훌륭한 음악가들이 쏟아진 때가 바로 낭만음악 시대이니 그 역사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바, 앞으로 2회에 걸쳐 이야기하게 될 낭만 스토리를 기대하시라.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