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1_경북 청도 주말주택 ‘혼신지 집’

설계 및 시공 기간만 1년 7개월. 단적으로 이 수치가 말해주듯 이 집은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건축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다양한 시도 끝에 얻어진 ‘혼신지 집’의 완성도는 설계와 시공, 자연환경이라는 삼박자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케미’ 덕분이다.
[ART & ARCHITECTURE] 자연이 완성시킨 수공예 반전 주택
경북 청도군 혼신지(魂神池)를 마주하고 있는 사다리꼴의 대지에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주택이 들어섰다. 더없이 풍성한 자연경관과 예외적인 고요함을 지닌 땅에 약 200㎡ 규모로 지어진 이 집의 용도는 주말주택. 건축주는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잘 어울리면서도 가족 및 친구들이 편히 쉴 수 있고 작은 모임이나 가족 행사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설계를 맡은 김현진 SPLK건축사무소 대표의 역할은 분명했다. 건축주가 꿈꾸는 바를 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

사실 혼신지 집을 둘러싼 여러 조건은 건축가가 건축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땅이 그랬고, 주말주택이다 보니 기능적인 부분에 대한 구애가 덜해 공간의 질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오랜 공사 기간 동안 새롭고 다양한 실험들을 기꺼이 감내해준 시공팀이 있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 혼신지 집이 신진건축사 대상과 201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 본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건, 설계부터 시공까지 그야말로 모두가 혼신을 다했기 때문이다.

[ART & ARCHITECTURE] 자연이 완성시킨 수공예 반전 주택

공간적 완성도와 패시브하우스의 실현
혼신지 집은 크게 세 가지 면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 먼저, 펼쳐진 자연환경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튀지 않는 건축을 위해 김 대표는 매스 자체를 높이와 길이가 다른 평행한 두 볼륨을 서로 엇갈려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두 볼륨 사이로 자연스레 입구가 형성되고 대지를 가로지르는 긴 동선이 생기면서 내부에서는 외부를 향한 다양한 시선까지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이질적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재료의 선택적 측면에서도 최대한 천연 재료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면에서 설계팀은 일면 운이 좋았고 일면 상상력의 승리이기도 했다. 집을 둘러싼 돌담의 재료가 된 청석은 건축 현장에서 10분 떨어진 석산에서 구한 지역색을 띤 재료였고, 외장재로 쓰인 값싼 시멘트 보드는 재료가 가진 잠재력에 건축가의 연출력이 더해진 결과물이었다. 외장재뿐만 아니라 내장재로 화이트오크를 쓴 것도 천연 재료에 대한 고집이자, 사람이 사는 공간에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고 싶었던 건축가의 의도였다. 거기다 외장재와 내장재 모두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하나하나 일일이 잘라서 끼워 넣는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재료는 달라도 안팎으로 일관된 느낌을 전해준다.
[ART & ARCHITECTURE] 자연이 완성시킨 수공예 반전 주택
공간 계획은 아주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이뤄졌다. 전면 낮은 볼륨에는 거실과 주방, 식당 및 중정(中庭)을 배치하고, 후면 높은 볼륨에는 서재, 화장실, 계단실, 침실 등으로 구성하면서, 나란히 놓인 두 볼륨 내부에서도 공간이 수평적으로 연속되도록 그 경계의 디테일에 신경 썼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반전의 포인트다. 어디서든 바깥의 좋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에서 바깥은 차단하고 하늘만 보이는 공간으로 설계된 중정이 실은 벽이 열리면서 외부와 연결되는 비밀스러움을 담고 있는 것. 50cm에 달하는 두터운 벽이 열리는 광경은 공간을 경험한 이들에게 놀라운 경험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패시브하우스의 실현은 기본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다만 김 대표는 과한 설비 없이 안팎으로 단열재를 잘 쓰고 좋은 재료를 통해 기본에 충실히 따르는 방식을 택했다. 내·외부 벽에 단열재를 넣어 벽체를 두껍게 했고, 건물에서 열린 부분은 그 주변부를 철물로 다시 보강하고 단열효율이 가장 높은 시스템 창호를 적용하는 식이었다.

혼신지 집은 첫인상이 강렬한 집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 건축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거기 쏟아 부어진 많은 사람들의 땀과 집의 근본을 생각한 접근 방식 자체를 알게 된다면, 이 집의 특별함이 비로소 설명된다.



[ART & ARCHITECTURE] 자연이 완성시킨 수공예 반전 주택
Interview

주택 설계자 김현진 대표
“시공의 끝까지 가본, 성공적인 실험작”

설계 과정에서 목표한 집의 형태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건물을 지을 때 목표를 가지고 하진 않아요. 대지 조건이 주어지고 비용이 주어지고 건축주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주어지면, 그걸 가지고 연출할 뿐이죠. 혼신지 집의 건축주는 저희 팀 이전에 이미 두 번의 설계를 진행한 적이 있던 상황이었어요. 땅이 너무 좋아 주말주택을 짓고 싶은데 아마도 건축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건축주는 편히 쉬고 놀 수 있는 집을 원했고, 그 외에는 우리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어요.”


공사 기간이 굉장히 길었죠.
“보통 우리나라는 3개월에서 6개월이면 주택 하나가 완공됩니다. 우린 봄에 시작한 공사를 한 해를 훌쩍 넘기고도 몇 달이 더 걸렸어요. 과정 하나하나 처음 시도하는 실험이 많았고, 천연 재료 같은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 여부도 파악해야 했던 터라 많이 지체됐죠. 저희는 현실과 그림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모형을 상당히 크게 만들고 실제로 마감 재료도 붙여보면서 작업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집을 지어보면 생각하지 못한 차이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런 경우엔 공사를 중단했습니다. 변기도 실제 크기로 만들어 놓아보고, 내부 목재도 여러 종류를 가져와 색깔과 질감 등의 차이를 보는 등 다른 주택을 지을 땐 할 수 없는 행복한 경험들을 많이 했어요. 건축주도 하나씩 완성되는 걸 보더니 나중엔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어떤’ 것들을 실현했습니까.
“건축적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설계를 하고 싶었는데 시공자를 선정해 하도급 방식으로 주는 우리나라 시공 현실에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혼신지 집은 시공의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었고 그렇게 했어요. 모든 재료의 디테일을 살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해봤죠. 결과적으로 사진을 찍어보면 워낙 건물이 딱 맞게 떨어져서 허투루 잡을 뷰가 없어요. 그렇게 모든 재료를 고민해서 딱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처음해보는 것들을 현장에서 소통해가며 완성도를 추구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재료의 사용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시공 과정에서 생기는 돈의 문제는 재료에 관한 것일 때가 많아요. 이 공간엔 이 재료가 좋은데 수급도 어렵고 가격도 높고 기술자까지 없으니, 매번 재료가 ‘도전’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 집에 맞는 재료를 찾아다닌 과정이 많았어요. 천연 재료를 찾기 위해 인근 석산의 청석을 가져왔고, 평범한 재료인 시멘트 보드나 지금은 유행이 지나간 화이트오크 등을 외장재와 내장재로 쓰기 위해 스트라이프 패턴을 개발했죠. 처음 해보는 연출이라 기간은 길어졌고 관리 면에서도 쉽진 않았는데 저는 그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가가 시공에 눈을 떠 독특한 미학으로 재료의 잠재력을 찾는 거죠.”


사진 SPLK건축사무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