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2_구기동 리모델링 주택 ‘시간이 쌓여가는 집’

시간은 공간과 함께 흔적을 남기고, 공간의 실체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변화된다. 건축이란 그렇듯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시간성을 공간으로 풀어내는 작업인 것. 올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한 ‘시간이 쌓여가는 집’은 시간의 흐름이 읽히고, 공간을 시간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ART & ARCHITECTURE] 시간적 교감을 이뤄낸 공간의 구축
“소장한 서적만 2000여 권이 넘을 거예요.” 건축주가 설계를 의뢰하며 꺼낸 이야기가 어쩌면 이 집의 시작이었다. 약 132.23㎡ 정도 되는 아담한 주택에 3대가 거주하는 것도, 장서의 규모도 까다로운 제약 조건인 건 분명했지만, 설계를 맡은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는 오히려 그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 장서가 쌓인 서재는 물론, 집 안 곳곳에 3대가 함께해온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점에서 이 집은 역사적 의미마저 띠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공간으로만 규정해 버리는 집이 사실은 시간이 쌓여 그 가치를 만들어내고 또 변화되기도 하니 과연 ‘시간이 쌓여가는 집’이라는 콘셉트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얘기였다. 여기에 이 대표는 앞으로의 ‘시간’까지 염두에 두었다. 고서와 함께 쌓인 시간의 흔적 위에 덧붙여질 미래의 이야기에 따라 이 집의 존재감은 또 달라질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서울 구기동 리모델링 주택은 건축의 감성에 관한 새로운 시도이기도 했다.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읽어낸 미학적·기능적 실험
“이번 프로젝트는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백하면서도 절제된 리모델링의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의 얘기처럼 사실 구기동 주택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분명 작용했고, 넉넉지 않은 공간에 3대가 함께 거주하는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건축이 탄생한 건 철저히 설계자의 의도였다. 낡고 오래된 집을 어떤 방식으로 숨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어떤 감성으로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였다. 대표적인 게 마감재로 쓰인 벽돌이다. 그는 기존 집에 쓰였던, 현재는 생산되지 않는 타입의 1970~1980년대 벽돌을 그대로 남기면서, 30여 년이 지난 2014년 생산된 벽돌을 증축 면에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기존의 벽돌 면을 정리해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보존한 채 새로 증축된 면의 벽돌은 이와 유사한 색을 가진 현대적인 벽돌을 사용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교감을 공간의 형체로 드러낸 것이었다.
[ART & ARCHITECTURE] 시간적 교감을 이뤄낸 공간의 구축
감성적, 미학적 측면과 함께 주택이 가지는 기능적인 부분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이번 주택은 기능적 실험 측면에서도 좋은 사례다. 일단 이미 형성된 기본적 공간 구성 자체가 꽤나 흥미로웠다. 1층 거실과 부엌은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구성돼 있고, 부엌이 1층 거실과 2층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식이다. 1층은 1세대인 건축주 어머니의 영역이고, 2층은 건축주와 아이들의 영역으로 구분되는 등 라이프스타일적으로도 공간 구획이 명확했다. 증축을 하면서 공간은 이전에 비해 여유로워졌지만, 그 또한 법적으로 가능한 증축 공간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여전히 다양한 세대의 삶을 담아내야 한다는 명제도 있었다. 무엇보다 건축주가 요구한 대로 엄청난 양의 책을 수납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2층 상부 거실의 벽면과 측면을 다양한 책을 수납할 수 있도록 배치했고, 화장실 상부와 같은 자투리 공간 또한 서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효율적 공간 활용을 위한 디자인에 주력했다. 증축 면에 경량의 목구조를 활용한 것 또한 곳곳에 책을 수납하기 위해 채택한 방식이었다.

아이들의 방으로 구성된 공간이자 현재적 시간성의 재현인 증축 부분의 매스는 단순한 공간적 확장이 아닌 빛과 공기가 흐르는 일종의 설비 장치로서의 기능적 의미도 있다. 복층 구조를 택함으로써 내부에서 데워진 공기가 상부로 순환할 수 있게 하는 공기의 통로가 되는 동시에 간접 채광을 통해 항상 일정한 조도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 내부에는 전동 창을 설치해 여름과 겨울의 계절 변화에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친환경적이다.

리모델링 건축은 현 시대의 사회적 요구이기도 하다. 구기동 주택은 단순히 공간적 확장이나 양적 증축 관점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 살아 숨 쉬는 시간성과 새로운 기능적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ART & ARCHITECTURE] 시간적 교감을 이뤄낸 공간의 구축
Interview

주택 설계자 이정훈 대표
“과거의 흔적과 현대적 재료로 새로운 감성 창출”

시간이 쌓여 만드는 공간이라는 접근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종로구 구기동은 1970~1980년대 지어진 집들로 채워져 있는데, 경사지에 위치한 대부분의 집들을 무작정 헐고 다시 짓는 건 비용적인 면에서 또 도시의 역사적인 면에서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적 신축 대신 기존 과거 벽돌이 가지는 감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재 생산된 벽돌로 과거와 현재가 투영된 공간을 디자인하고자 했죠. 누군가에게는 그곳에서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고, 새롭게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이겠죠. 그 상반된 시간들을 이어주고 새롭게 공간을 재편하는 것이 건축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 건축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키포인트는 무엇이었습니까.
“기능과 미학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기능적으로는 새로운 방식의 채광 및 환기 방법이 시도됐습니다. 법정 용적률상에서 채울 수 있는 최대의 용적을 채우면서 상부 지붕을 빛과 공기의 통로로 만든 것이죠. 결과적으로 빛으로 인해 전기 사용 없이 밝게 유지할 수 있고, 공기층을 형성해 에너지 활용에도 효과적입니다. 미학적으로는 외부에서 기존 주택이 가지는 과거의 흔적과 현재적 재료로 채워진 증축된 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새로운 감성을 창출해낼 수 있었죠.”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이란 점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하다 보니 구조에 대한 어려움과 사용 시 발생되는 하자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일례로 건축주 부부가 주문한 장서 수납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경량인 목구조를 이용해 증축하고 구조 엔지니어와의 협업을 통해 내부의 벽을 설치 또는 철거하는 과정을 진행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30년 된 벽인 데다가 당시 어느 정도의 구조강성으로 건물을 지었는지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이처럼 리모델링 시 가장 어려운 부분이 기존 건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예측 불가능한 문제들입니다. 더구나 법적으로 증축할 수 있는 공간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제약 조건이죠. 따라서 수납공간은 인테리어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건축주 가족의 만족도는 어떤가요.
“이번 주택 프로젝트는 3대가 모여 사는 공간이란 점에서 특별한데, 건축주 세대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만족도가 무척 높습니다. 단독주택에 살면서 아담한 마당에서 다양한 놀이도 할 수 있고, 3차원적으로 구성된 공간의 층위를 드나들면서 마치 집이 하나의 놀이공간처럼 인식된다고 해요. 특히 증축된 목조 공간은 아이들 방으로 구성했는데, 전망뿐만 아니라 복층으로 돼 있어 건축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으로 탄생했죠. 남향을 향해 펼쳐진 외부 전경이 너무 아름다운데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좋은 감성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조호건축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