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기자의 HIP & HOT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2015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기자는 이제야 비로소 ‘머니’의 코어 타깃 독자층이 됐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보며, 그 연장선에서 한 가지 생각한 게 있다. 누군가는 ‘아이 어른’이라고도 명명하는 ‘어중간한 세대’가 돼버린 40대 전후에게도 그들이, 아니 우리가 열광할 만한 문화 콘텐츠는 있지 않을까. ‘힙’하고 ‘핫’한 장소가, 문화가 꼭 20대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나. 해서,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 첫 번째는 30대 후반 이상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물 나이트’의 대대적 변신 얘기다.
드디어 ‘정상적인’ 특급 호텔로서의 면모를 갖춘 더 리버사이드 호텔.
드디어 ‘정상적인’ 특급 호텔로서의 면모를 갖춘 더 리버사이드 호텔.
2014년 12월 11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거리 인근에 들뜬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창 연말 모임 시즌인 데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늘 북적이는 동네니 뭐 새삼스러울 것 있을까만, 그래도 뭔가 다른 하나가 있었으니, 화려한(?) 역사를 뒤로하고 새롭게 태어난 어떤 공간의 비포(before) 앤 애프터(after)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확 바꿔드립니다’라고 광고하는 성형외과도 아니고, 그래봐야 상업 공간의 ‘before’ 따위가 무슨 이슈라고 호들갑일까 싶겠지만, 그 이름이 ‘물(MOOL) 나이트’였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30대 후반 이상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곳, 이제는 ‘응사(응답하라 1994)’에나 나올 법한 추억 속의 장소, 무수한 눈길이 오가고 에피소드가 생산됐던 그곳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명 상징적인 존재였다.
라운지 바 & 스테이크 하우스로 재탄생한 ‘물 나이트’의 ‘변신 후’ 모습.
라운지 바 & 스테이크 하우스로 재탄생한 ‘물 나이트’의 ‘변신 후’ 모습.
놀이 문화 대변하던 나이트클럽의 상징적 존재
이쯤에서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풀어놓자면, 1990년대 후반 기자도 꽤 자주 물 나이트를 ‘출입’했었다. 당시 모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같은 팀 메인 PD가 2차로 어김없이 향하던 곳이 물 나이트였다. ‘백두산’인가 하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한쪽 벽면을 따라 쭉 자리 잡고 있던 룸(나중에 알게 됐지만 90개가 넘었단다) 하나에 자리를 잡은 뒤, 얼마 안 있어 시끌벅적한 스테이지로 나가는 패턴이 늘 반복되곤 했었다. 이름처럼 ‘물’ 좋다고 소문이 났었다는데,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기자의 눈에 비친 물 나이트는 사실 중년들을 위한 다소 ‘끈적끈적한’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메인 PD도 40대 초반이었고, 덩달아 물 나이트에 열광하던 다른 팀원들의 나이도 고작 30대 초중반이었으니, 30~40대의 놀이문화를 대변하는 핫한 곳이었음에 틀림없다.
다양한 종류, 맞춤형 칵테일은 이곳의 또 다른 경쟁력이다.
다양한 종류, 맞춤형 칵테일은 이곳의 또 다른 경쟁력이다.
물론, 그 ‘끈적거림’은 느낌만이 아니라 다소 사실이었다. 물 나이트가 위치해 있는 리버사이트호텔 자체가 그랬다. 말은 ‘호텔’인데 호텔업보다는 향락업에 치우쳐 있었다. 2층에는 카바레, 3층에는 이른바 ‘터키탕’, 12~13층은 ‘풀살롱’ 형태의 윤락업이 성행했다. 그런 리버사이드호텔이 정상적인 호텔로 돌아온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경매, 유찰 등을 겪으며 2009년 경영진이 전면 바뀐 호텔은 폐쇄적 공간에 대한 리모델링을 거쳐 2011년 9월 ‘더 리버사이드 호텔’로 재오픈했다. 그 결과 카바레는 중식당으로, 터키탕은 남성 전용 고급 스파로, 12~13층은 객실로 바뀌었고, 드디어 마지막 남은 물 나이트까지 대대적 변신을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특급 호텔의 모습이 완성됐다.
과거 ‘터키탕’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남성 전용 스파.
과거 ‘터키탕’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남성 전용 스파.
사실, 기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지만 지난 1여 년간 물 나이트는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그 이전 3년은 이름도 ‘유씨티’로 바뀐 채 운영됐다. 나이트 문화의 쇠퇴와 함께 손님이 줄어든 것도 있었지만, 호텔 측은 임대업장으로 운영되던 나이트클럽을 호텔 직영으로 바꾸고, 문화적 흐름과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로 결정했다.

4628.0~4958.7㎡에 달했던 어마어마한 나이트클럽 공간의 절반 이상은 이미 웨딩홀로 바뀌었고 그 나머지 공간은 ‘3040 전후를 위한 럭셔리 라운지 바 & 스테이크 하우스’를 콘셉트로 리뉴얼 공사가 진행됐다. 이름 하여 ‘6-1’. 호텔 주소(서초구 잠원동 6-1)에서 따온 간판 자체에 다시 한 번 문화를 이끄는 상징적인 존재로 거듭나겠다는 각오가 배어 있다.
모던과 클래식이 공존하는 바의 내부.
모던과 클래식이 공존하는 바의 내부.
트렌디한 음악·퀄리티 높은 음식·다양한 주류로 승부
‘6-1’은 이태원에서 요즘 가장 ‘힙’하고 ‘핫’하다는 ‘글램 라운지 바’를 모델로 했다. 모델로만 한 게 아니라 아예 글램 라운지를 디자인한 건축가 김치호 교수에게 공간 디자인을 맡겼다. 같은 건축가가 만든 공간이라 우려가 없지도 않지만 호텔 측에 따르면 “글램처럼 화려한 느낌을 가져가되 보다 발전적으로 차별화된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고. 거기다 호텔 셰프가 제공하는 퀄리티 높은 음식과 뉴욕 현지 바텐더가 만드는 정통 프리미엄 칵테일 등 차원이 다른 주류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니 일단 표면적으로는 ‘차이’가 확연해 보인다.

저녁 8시 이전에 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글램 라운지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 사실 그 ‘디테일한 차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양한 니즈를 가진 사람들에게 각각 맞춤 형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전체적으로 모던함과 럭셔리함이 공존하는 분위기에, 250여 석에 이르는 좌석의 레이아웃 또한 고객의 동선을 배려해 여유롭게 구성돼 있다. 복층 구조의 바 상층에는 2명에서 12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5개의 룸도 마련돼 있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이상까지를 아우르는 공간을 표방하다 보니, 비교적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더 원하는 연령대를 위한 사소한 배려다. 그 배려는 인테리어 소품에서도 드러난다. 테이블마다 다른 분위기를 내는 가구를 비롯해 소품과 조명 하나하나까지 콘셉트에 맞춰 공수해 오는 노력을 기울인 것. 또 하나 이름 자체로 재밌는 공간이 있으니 바로 고급 위스키 바 ‘로스트 앤 파운드(Lost & Found)’다. ‘분실물센터’라는 다소 짓궂은 이름의 이곳은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보냈으나 지금은 갈 곳을 잃어버린 세대가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미래의 추억을 찾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의미를 담았다.
모델 겸 디제이인 파스칼이 ‘6-1’의 메인 디제이를 맡는다.
모델 겸 디제이인 파스칼이 ‘6-1’의 메인 디제이를 맡는다.
이 흥겨운 공간에 음악이 빠지랴. 라운지 바의 전체 분위기는 너무 시끄럽지 않으면서도 트렌디하고 신나는 음악이 좌우한다. 디제이(DJ) 바를 중앙의 바 테이블 앞쪽에 설치해, 배경음악으로서의 음악이 아닌 음악과 더불어 즐기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디제이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모델 겸 디제이로 유명한 파스칼과 ‘런닝맨’ 등에 출연하는 등 방송과 디제이를 겸하고 있는 존 등이 메인 디제이를 맡을 예정.

개인적으로 물 나이트의 대대적 변신을 전해들은 이들은 모두들 ‘한번쯤’ 가보고 싶어 했다. 자, 이제 물 나이트의 애프터는 공개됐다. 새로운 ‘역사’가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마음이 느끼는 바는 반반이다. 어쩐지 구세대가 돼 버린 것 같은 아쉬움과 그 공간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랄까.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