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림의 스타일이 있는 식탁

매일 맞이하게 되는 삼시 세끼의 진정성을 소박하게 풀어내는 TV 오락물이 요즘 우리를 미소 짓게 하고 있다. 사람은 사는 동안 먹어야 하고, 그것은 분명 즐거운 과정이어야 한다.

그 중요한 과정에 필요한 하드웨어가 식기와 커트러리이고 소프트웨어는 테이블 매너와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정성일 것이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우리의 식사에서 이 네 가지 요소가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면서 식탁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빅토리안 시대의 스프볼과 캔디볼, 소금·후추통, 커트러리가 어우러진 정찬 테이블.
빅토리안 시대의 스프볼과 캔디볼, 소금·후추통, 커트러리가 어우러진 정찬 테이블.
매일 범사인 듯하지만 식사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생각해보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루를 여는 든든한 아침식사에서부터 오랜 지인과의 정겨운 점심, 온 가족이 모이는 특별한 기념일의 저녁 만찬에 이르기까지 조화롭게 구성된다면 우리들의 삼시 세끼는 ‘한 끼 때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쁨이 배가되는 생활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접시의 다리 부분까지 화려하게 조각된 빅토리안 시대 금도금 스털링 베리 접시.
접시의 다리 부분까지 화려하게 조각된 빅토리안 시대 금도금 스털링 베리 접시.
즐거운 식사를 위한 우리의 자세를 다른 말로 바꾸어 쓰면 테이블 매너가 될 것이다. 테이블 매너가 완성된 것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때다. 영국 역사상 최고 번성기인 19세기에 64년간 제위에 있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한 시대에 이름을 부여할 정도로 여러 측면에서 역사상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빅토리안 시대 영국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선진공업국과 함께 화려한 테이블 문화다. 1800년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영국 상류사회 문화는 식문화에서도 절정에 달했다.
빅토리안 시대 스털링 삼구 촛대.
빅토리안 시대 스털링 삼구 촛대.
빅토리안 시대, 화려한 정찬 테이블의 기원
그 당시 유럽 전역에는 새로운 부가 창출돼 구 귀족과 기득권층은 신흥 중산층 계급으로부터 끊임없는 도전을 받게 됐다. 따라서 자신들의 신분에 어울리는 새로운 기준을 정해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그 기준이 바로 정찬모임이었고, 훌륭한 음식과 선별된 손님, 장식성이 강한 천의자, 그림, 카펫 등으로 꾸며진 다이닝룸은 그러한 모임의 필수조건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 놓인 화려한 도자기 그릇부터 은으로 만들어진 서빙 그릇, 가지런한 커트러리 등은 정찬 테이블의 기준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털 디캔터와 다양한 와인글라스, 크루엣(cruet, 조미료통), 캔디볼(candy bowl), 리넨, 화려한 촛대, 유리나 도자기 장식의 센터피스 등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유려한 라인과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빅토리안 시대 고기 수프용 스털링. 소스보트(sauceboat).
유려한 라인과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빅토리안 시대 고기 수프용 스털링. 소스보트(sauceboat).
식탁은 잘 손질된 다양한 리넨 천으로 장식됐다. 영어로 리넨(linen)은 마(麻)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테이블 세팅을 말할 때는 테이블보, 러너, 매트, 냅킨, 그릇받침 등 식사에 필요한 모든 천 종류를 일컫는다. 리넨은 여자에게 옷이나 화장품과 같은 것으로 장식성과 기능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필자는 특히 테이블클로스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컬렉션해 왔다. 대부분 빅토리안 시대의 것이 많은데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너무도 고운 자태에 놀라곤 한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공정이 수공으로 이루어졌는데 손으로 수를 놓는 것은 물론이고 한 올 한 올 올을 뽑아 얽어 만드는 드론워크(drawn work) 공법의 레이스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은 동양적 무늬 위에 스털링이 조각된 빅토리안 시대 디너 접시.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은 동양적 무늬 위에 스털링이 조각된 빅토리안 시대 디너 접시.
요리는 최고의 요리를 택하되 가짓수를 적당히 하고 포도주는 종류별로 최상급 품질을 준비했다. 음식은 가장 주된 것에서 가벼운 순서로, 포도주는 옅은 향에서 짙은 향 순으로 서빙됐다. 가령 수프 다음에 셰리주, 첫 번째 앙트레에 이어 샴페인, 생선요리와 화이트 와인, 육류와 레드 와인의 조합이었다. 음식은 모두 은식기에 담았고 후식은 도자기 그릇에 담았으니 빅토리안 시대는 진정 음식의 천국, 화려한 만찬의 극치였다.
그림과 스털링 오버레이의 조화가 우아한 빅토리안 시대 디너 접시.
그림과 스털링 오버레이의 조화가 우아한 빅토리안 시대 디너 접시.
19세기 유럽의 화려한 테이블은 아니더라도 정성껏 마련한 음식과 격조 있는 식탁은 우리를 한 차원 높은 생활로 이끌 것이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초봄 수줍게 피어나던 진달래, 히어리, 수선화가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어느새 변덕스럽던 봄날의 시간도 훌쩍 흘러 벚꽃, 라일락, 작약과 같은 꽃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의 봄날이 또 그렇게 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삼시 세끼’는 어김없이 우리 곁에 찾아오리라. 오늘 하루쯤은 마음먹고 그들을 행복하게 맞이해보자. 비슷해 보여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하지 않던가. 내 삶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정성껏 마련한 한 끼를 대접하는 즐거움을 올봄 누려보기를. 그것은 올해 처음 봄꽃을 만났을 때의 기쁨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할 것이다.
핑크와 금박이 섬세하게 핸드페인팅된 빅토리안 시대 센터피스 도자기.
핑크와 금박이 섬세하게 핸드페인팅된 빅토리안 시대 센터피스 도자기.
테이블 세팅 TIP
1 한 사람의 식기를 놓는 범위의 폭은 40~45cm, 깊이는 30~35cm, 옆 사람과의 간격은 10~20cm.
2 빵 접시는 왼쪽, 컵들은 오른쪽, 나이프의 날은 접시 방향.
3 냅킨은 접시 위, 컵 안, 디너 접시 위 또는 왼쪽.
4 테이블 세팅은 더 즐겁게 먹기 위한 것이다. 맛을 위해 존재하는 멋이 테이블 세팅임을 잊지 말자.
곡선과 조각에서 수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빅토리안 시대 캐비어 접시.
곡선과 조각에서 수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빅토리안 시대 캐비어 접시.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품위 있고 따뜻한 홈 문화를 추구하는 하우스 갤러리 이고 대표다. 앤티크 테이블 웨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테이블 세팅 클래스를 티파티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백정림 이고 갤러리 대표 |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