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김준식

[Life&]‘팔색조 회화’엔 특별한 무엇이 있다
김준식(36) 작가의 그림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긴 정말 힘들다. 기법으론 단순히 극사실주의 회화로 보이지만,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보면 팝아트적 요소가 강하며, 한지와 캔버스를 번갈아 사용한 바탕 재료나 유채, 금박(金箔)을 혼용하는 걸 보면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든다.

오로지 손작업에 의존해 완성된 페인팅 기법의 평면 그림이지만, 3D 프린팅 뺨칠 정도의 실감 나는 테크닉은 ‘사진 같다’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특히 매화나무를 표현한 부분에선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흔히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현장의 대상을 사진으로 찍었다가, 작업실에 돌아와 그 사진을 보고 화면에 또다시 옮겨 그린다. 대부분 김준식 작가의 나뭇가지 그림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김 작가는 사진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 실제로 수집해 온 나뭇가지들을 작품대에 배열해 놓고 장시간 근접 거리에서 관찰한 기록화에 가깝다.

그는 현재 한국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하다. 작업실도 이미 수년 전에 중국으로 옮겼으며, 작품 활동 무대도 홍콩과 중국 본토까지 확장돼 있다. 2015년 12월 호엔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잡지 중 하나인 ‘중국 BAZAAR(時尙芭莎)’에 6쪽에 걸쳐 비중 있게 소개됐으며, 2017년엔 베이징 소재 중국 최대의 국립미술관인 중국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참으로 놀라운 활약이다. 세계인이 탐을 내는 중국 시장에 이미 깃발을 꽂은 셈이다.
'금매화-12지간(부분)4'
'금매화-12지간(부분)4'
김 작가의 회화가 지닌 매력이 무엇일까? 그것은 실상과 허상,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등 서로 상존할 수 없는 대상이 한 몸처럼 융합된 ‘다차원적 혼재의 하모니’에 있다. 2011년 서울 인사동의 개인전 때, 수많은 관람객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찌그러진 캠벨 깡통을 주워보며 그림 속 깡통들도 실물을 붙인 것이라고 혼동했던 에피소드는 지금도 화제다. 불과 3~4년 만에 어느덧 스타작가 반열에 오르며 성공적인 중국 진출까지 이룬 김 작가의 진면모가 궁금하다. 그래서 그에게 직접 이모저모를 물었다.
'금매화-12지간(부분)5'
'금매화-12지간(부분)5'
부조입체처럼 극사실로 표현된 매화 나뭇가지엔 전통 수묵의 사군자 매화와 유화로 그린 인공적인 조화(造花)가 함께 피어 있는데요. 평소 본인 작품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서로 다른 요소들의 결합입니다. 만화와 동양화, 유화와 화선지, 전통과 현대, 팝아트와 초현실주의 등 ‘서로 어울리기 힘든 요소들’을 함께 어우러지게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여러 관점에서 감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작품의 특징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몇 가지 꼽는다면.
“우선 ‘융합’입니다. 상반되는 요소들이 한 화면에 공존하죠. 사진이 할 수 없는 부분까지 발견하고 표현하려 노력해요. 다음은 ‘입체’입니다. 제 그림은 평면회화로 분류되겠지만, 실제로는 콜라주나 조소처럼 ‘시각적 입체’를 지향해요. 그리고 ‘명상’이죠. 서양의 작품이 화려한 액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장식품으로써의 역할이 강하기 때문이겠지만, 동양화가 단순한 액자에 보관돼 온 까닭은 명상과 수양의 도구로써의 역할과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작품을 통해 이 둘을 동시에 담아내려 합니다. 또한 ‘POP’적인 요소예요. 그렇다고 팝아트로 규정되기보다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대적 일상에서 이미지를 차용합니다. 이제 팝아트라는 용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도 좋을 만큼 일상에 무수하게 널린 흔한 요소가 됐잖아요.”

그래도 작품에 담고 싶은 분명한 메시지는 있지 않을까요.
“의도한 메시지는 피라미드의 구조처럼 담겨 있어요. 맨 아래층엔 (포토리얼리즘과 구분되는) 입체를 지향하는 평면 바탕의 사실주의가 기본을 이루죠. 그 위에는 팝아트에 대한 다소 비판적인 개인적인 시각이 담겨 있고요. 다시 작품에 따라 유머나 위트, 매화의 남다른 아름다움이나 추상화적인 개념들이 섞입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린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 자체로서의 미학을 얹는 것입니다. 시각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종합해 정리하면, 여러 시리즈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면엔 ‘평면에서 입체를 지향하는 새로운 사실주의에 대한 시도’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작품의 주제의식을 돋보이게 하고자, 혹은 깊이를 더하고자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현대미술은 저마다 깊이 있는 철학과 개념으로 무장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미술작품들이 많죠. 저도 미술사의 진행 방향을 염두에 두고 나름의 깊이 있는 철학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좀 더 친절한 방법으로 관람자와의 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한 장치들을 잊지 않죠. 가령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특정 제품 광고(그 제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대중과 친숙한)의 유명인을 쓰는 방식과 비슷해요. 작품에 스며 있는 여러 층의 주제를 어디까지 발견할 수 있는가는, 오로지 관람자의 미술사적인 지식 혹은 상식에 달려 있죠. 하지만 동시에 미술사적 지식이 전혀 없는 아이들조차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해요.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맛이 없다면 먹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먼저 그림의 테크닉에 집중합니다. 첫 데이트에서의 관건은 그 사람이 가진 깊은 철학과 가치관이 문제가 아니라, 그날 입은 말끔한 옷차림이나 인상일 수도 있으니까요. 작품 역시 첫 만남에 성공하면 작품의 주제와 개념을 전하기에 좀 더 수월해지리라 믿습니다.”

작품의 제작 과정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대표적으로 매화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면, 우선 겨울날 매화산에 가서 주워 온 나뭇가지들을 화면에 배치해 ‘동양화 매화의 구조’를 만들었어요. 그리곤 그 나뭇가지들을 직접 보고 그림자까지 유화로 옮겨낸 이후, 그 작품의 소주제에 맞는 만화나 인물을 그려내고 마지막으로 매화꽃을 유화로 피워내어 완성했습니다.”

작품 제작 과정이 의외로 심플하네요. 그래도 특별한 버릇이나 습관이 있다면.
“사진 이미지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에요. 사진을 사진처럼 그려내는 것이 아닌, 실제를 실제처럼 그려내는 것이 작품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작품 제작의 공정에 있어서 철저한 계획은 있지만, 작품의 완성된 모습에 대한 계획은 없어요. 말하자면 작품이 거의 완성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 저 자신도 모르는 상태로 진행되는 셈이죠.”

다른 이에게 작품에 대한 인상(평가)을 전해 들었던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때와 그 이유를 말해주세요.
“작품이 ‘다양한 전시에 참여 가능하다’는 이야기예요. 극사실주의 전시에도 참여할 수 있고, 팝아트 전시, 동양화 전시 등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이죠. 그러고 보면 디즈니 90주년 전시나 만화박물관 전시에도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가장 참여하고 싶은 전시는 조소 전시나 동양화 전시이기도 하고요.”

끝으로 먼 훗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 사실주의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쿠르베 같은 중요한 작가로 기록된다면 더욱 기쁠 것 같아요.”
동서양의 감성과 창작 기법을 넘나드는 김 작가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다. 그에게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궁금하게 여겨지는 이유, 그것은 30대 중반의 젊은 열정과 깊이 있는 작가관, 탄탄한 실력으로 무장한 기본기, 홀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에 입성한 투지와 배포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김준식의 작품 가격은 중국식으로 계산되는데, ‘33×33cm(1평방자=0.9㎡)’에 1만1000RMB(약 200만 원)라고 한다. 굳이 한국식으로 계산하면, 100호F(160×130cm) 정도가 21만3000RMB(약 3900만 원)인 셈이다.

김준식 작가는…
울산학성고 출신으로, 2007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2세대 신진 팝아트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준식 작가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평면과 입체, 만화와 사실적 이미지 등을 선보이며, 그동안 서울과 베이징에서 수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청년예술가전(Enjoy of Art Museum, 베이징 798), 2013년 도쿄 아트페어(Tokyo Art Fair, 도쿄), 2013년 한국 팝아트 유망작가 기획초대전(울산), 2013년 NEWPOP(슈운갤러리, 상하이), 2013년 아트 타이페이(ART TAIPEI, 대만)전 등 30여 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윤섭 미술평론가·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