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희 바른경영아카데미 대표 겸 화가

[second act] 붓을 쥔 전직 CEO, 인생을 얘기하다
57세, 그만두는 것이 아직은 미련이 남을 시기, 김준희 전 능률교육 대표는 주저 없이 일을 놓았다. 그리고 붓을 쥐었다. 그림을 그린 지 어느덧 3년, 줄긋기부터 시작해 이제는 유화물감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실력을 갖췄고 최근에는 자신의 작품과 글을 모아 책도 펴냈다.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김준희 바른경영아카데미 대표를 만났다. 기자와 만난 소박한 밥집은 김 대표가 능률교육 대표 시절부터 단골이었다고 했다. 그는 홍대 인근 상권의 치솟는 임대료 속에 이곳도 곧 문을 닫는다며 인터뷰 내내 자기 일처럼 아쉬워했다. 마침 마지막 영업을 맞아서인지 그의 옛 직장 후배들도 이곳을 찾았다. 거리낌 없이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그의 모습과 그를 반기는 후배들의 얼굴 속에서 김 대표가 최고경영자(CEO)로서 어땠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존경하는 인물을 도화지에 담다
의아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후 20여 년을 줄곧 교육출판업에만 몸담은 전직 CEO가 돌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이 오래된 꿈도, 열정도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그는 그 답으로 어릴 적 기억을 꺼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당시에 형편이 어려워서 많은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준비하지 못했죠. 미술시간이 있는 날에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도화지 한 장만 살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마음 착한 짝이 크레파스를 함께 쓰도록 해줬고 짝이 내민 크레파스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나갔다. 하지만 크레파스가 너무 빨리 닳아 버렸다. 조금만 힘주어 색칠해도 쑥쑥 닳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린 마음에도 친구에게 미안했던 그는 힘을 빼고 연하게 선을 긋고 색칠도 살살했다.

바탕은 흰 도화지 그대로 뒀다. 그러면서 결심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48색 크레파스를 사서 빡빡 문지르면서 색을 칠해야지.’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은 그렇게 아쉬움으로 마음에 심겼다. 그는 “50년이 흐른 지금에야 그 씨앗이 싹을 틔우게 된 게 아닐까 싶다”며 회상했다.

수십 년이 흘러 홍대 앞의 작은 화실을 찾던 날, 그는 흰 도화지에 줄을 긋는 것부터 시작했다. 화실 선생님은 수평 줄긋기부터 시작해 수직 줄긋기, 빗금 줄긋기를 시켰다. 그리고서 긴 직사각형 안에 0부터 100까지 점차적으로 명암을 표현하도록 했다. 그렇게 첫 미술수업 3시간이 지나갔다. 지겨운 반복은 거듭됐다. 4B연필로 인물 데생을 8개월간 연습하고 이후 파스텔을 거쳐 이제는 유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그림을 그린 지 3년. 형태나 제대로 갖출 수 있을까 싶었는데 웬걸. 그가 펴낸 책 ‘그림수업, 인생수업’에 담긴 그림(인물화)들은 한눈에 봐도 누군가의 표정이 선명하게 읽혔다.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면 만족한다”던 얘기가 겸손하게 들릴 정도였다. “아직은 나만의 그림이 가진 독창성이 없다는 게 숙제다”라는 그는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자신이 책까지 낸 것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도 내비쳤다. 다만 평범한 인물 그림이지만 거기에 글을 덧붙여 풍부한 감상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첫 번째 책인 ‘그림수업, 인생수업’에서는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물을 그렸다면 ‘책에서 만난 선생님’(가제)에서는 거꾸로 책 속의 인물을 그려낼 계획이다. 고인이 된 신영복 선생은 벌써 마지막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박완서 선생,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항공(JAL) 사장 등은 그가 구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절망한 순간들도 있었다. 아무리 그림을 고치고 다시 그리려고 해도 도무지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바로 그런 때다.

“제가 어쩌지 못하고 있으면 화실 선생님이 와서 그림을 봐주세요. 그리고는 쓱쓱 연필로 몇 군데를 더할 뿐인데도 그림은 확연히 달라져 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망친 그림은 없다. 다만 고치면 되는 그림만 있다는 것을요.”

그가 유화를 그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수채화는 한 번 붓칠을 하면 고치기가 어렵지만 유화는 마음껏 덧칠을 할 수 있다. ‘하다 안 되면 덮어야지’ 하면서 과감하게 붓칠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 느는 것을 느꼈다.

“그림은 10년을 그릴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3년 지났으니 이제 7년 남았죠. 7년 후에는 제 실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져 있겠죠. 올해 제가 예순인데 일흔이 되면 사회 활동은 아무래도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때부터는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second act] 붓을 쥔 전직 CEO, 인생을 얘기하다
장강의 앞 물결, 바다로 나아가다
김 대표의 인생 후반전의 한 축이 그림이라면, 또 다른 축은 교육이다. 그는 웅진씽크빅에서 24년을, 이후 능률교육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3년간 전문경영인 역할을 맡았다. 그의 실질적 은퇴는 2013년이었지만, 앞서 웅진씽크빅에서 이미 한 차례 퇴직을 경험한 셈이다.

“서운했어요. 웅진씽크빅 대표직을 그만둘 때는 그랬죠. 하지만 3년 후 능률교육 대표를 그만둘 때에는 이제 다시 비즈니스는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웅진씽크빅은 1984년부터 2008년까지 24년을 근무한 직장이었기에 떠날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회사였다. 그래서 서운함과 섭섭함이 컸다. 그는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세상신인환구인(世上新人換舊人)’이라는 중국의 옛 시구를 떠올렸다. 장강의 앞 물결이 뒤 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의 새로운 사람이 옛 사람을 대체한다는 내용의 시다. 그는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장강의 강물은 언제까지나 강물에 머물고 있어서는 안 됐다. 바다로 흘러가야 했다.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시를 다르게 해석했다. ‘장강의 앞 물결은 바다를 향해 달려 나가고 뒤 물결이 빈자리를 채운다.’강물이 장강에 머무르려고 하면 밀려나는 것이 되지만 바다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저는 웅진씽크빅에 머무르면서 바다로 달려 나갈 꿈을 꾸지 않았던 거예요. 결국 서운함의 실체는 누구,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바다에 나간 제가 해야 할 것은 파도에 휘둘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손잡아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인생 후반전을 사는 자세임을 깨달은 거죠.”

그는 연봉과 스톡옵션이 얼마인지, 휴가는 얼마나 되는지, 회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반전에서의 셈이었다고 말한다. 갑자기 그가 아들과 팔씨름한 얘기를 꺼냈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까지 김 대표는 팔씨름에서 아들을 너끈히 이겼다. 아들이 군대에 다녀온 무렵 아들에게 다시 한 번 팔씨름을 제안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뜻밖의 거절을 당했다. 이유인즉슨 자신이 아버지를 이긴들 무슨 소용이며, 지면 아버지가 얼마나 걱정하겠느냐는 것. “제 인생의 후반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과의 팔씨름에서 이기고 지는 게 무의미한 것처럼 이제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자신의 존재를 반짝반짝하게 빛내는 게 아니라 쓰일 곳이 있기 위한 기본 준비를 하는 것, 혹여 써주는 곳이 없다고 서운해할 필요도 없는 것. 그게 인생 후반전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는 앞으로도 월급 받기 위한 일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사장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은 돈 많이 벌어서 이익을 남겨 달라는 거잖아요. 이익을 남기는 것은 중요하고 또 필요하지만 더 이상 제 일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는 단서를 달았다. 망해 가는 회사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보다 전문적인 경영인이 필요한 경우, 그렇다면 자신이 다시 일을 받아들일지 고려해볼 수 있다는 거였다. 마치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을 살린 이나모리 가즈오처럼 말이다.

‘바른경영아카데미’를 시작한 건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능률교육 CEO 시절부터 시작한 바른경영아카데미를 벌써 5년째 꾸려 오고 있다.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함도,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후배들에게 손을 뻗기 위함이다. 강연료를 주겠다는 후배들에게 그는 돈 대신 다른 것을 제안했다. 자신에게서 받은 도움을 후배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기꺼이 흘려 보내라는 것. 이런 서약을 한 사람만이 바른경영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있다.

“사업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착취하는 피라미드 방식이에요. 저희는 그 반대인 역피라미드 방식이죠. 제게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다음 사람들에게 도움을 확대하는 거죠. 지금 벌써 4기가 수료했으니 10기쯤 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웃음)”

처음 교육 관련 종사자들이 김 대표의 강연을 들었다면 기수를 거듭하면서는 점차 다른 영역의 종사자들도 그의 강연을 찾고 있다. 기수가 늘고 시간이 흐르는 만큼 그의 반경도 넓어지는 셈이다. 그의 인생 전반전이 이익을 확대하는 삶이었다면 인생 2막은 착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시기가 아닐까. 김 대표의 인생 후반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문혜원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