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design] 나이 드는 것도 즐길 수 있다
‘노인’하면 연상되는 단어나 이미지는 고집, 주름, 고독, 지팡이 등 대부분 어둡고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나이 들면 정말로 모든 것이 나빠지기만 하는 걸까?

세월이 가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나이 든다는 것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
그것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누릴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보스턴대 의과대학 신경학과 겸임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을 주창했다. 인간의 지능을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와 같이 한 가지 척도로 측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므로 상호 협력하고 있는 여덟 가지의 지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논리적 문제나 방정식을 풀어 가는 지적 능력인 논리수학지능, 공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활용하는 능력인 공간지능, 생각이나 느낌을 몸동작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인 신체운동지능, 복잡한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를 사용하고 그것으로 사고하는 능력인 언어지능, 음의 리듬·높이·음색에 대한 민감성을 보여주는 능력인 음악지능,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과 효과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능력인 인간친화지능,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조절하는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 자기성찰지능, 자연의 패턴을 관찰하고 대상을 정의하고 분류하며 자연과 인공적인 체계를 이해하는 능력인 자연친화지능이 바로 그것이다.

가드너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여덟 개의 지능이 모두 우수한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일부 지능이 낮다고 해서 모든 지능이 반드시 낮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 또한 나이가 든다고 모든 능력이 하락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연령별 다중지능 검사 결과를 보면 논리수학지능, 신체운동지능, 공간지능은 나이가 들면서 떨어진다. 반면 언어지능, 음악지능, 인간친화지능, 자연친화지능, 그리고 자기성찰지능의 점수는 연령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통념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여덟 가지 인간의 지능 중 과반이 넘는 다섯 가지가 향상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생물의학 및 스포츠인지연구소 이르메스(IRMES)의 조사에 따르면 전성기에 해당하는 연령이 운동선수를 기준으로 평균 26.1세로 나타났다. 다중지능이론에서 젊었을 때 신체운동지능이 높게 나타난다는 주장과 일치하는 결과다.

번뜩이는 영감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젊은 시절에 발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 불과 26세 때였다. 그는 27세 때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머지않아 젊은이의 혁신적 정신이 없어졌음을 애도하면서 정체와 불모의 시기로 접어들겠지”라며 나이가 들어 자신의 천재성이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언어·음악지능, 나이 들수록 높아져
바둑기사도 이제 20대 초·중반에 절정기를 맞는다는 것이 정설이 됐다. 예전에는 두뇌 스포츠인 바둑의 기량은 기사가 중년에 이를 때까지 점점 더 무르익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예상이 틀렸다는 것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바둑황제 조훈현의 전성기를 30대 초·중반으로 보는데 30대 후반부터 10대 후반의 제자 이창호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산(神算)이라 불렸던 이창호도 스승보다 더 이른 20대 중·후반부터 10대인 이세돌에게 서서히 밀려 1인자 자리를 내놓게 된다.

논리수학지능이나 공간지능은 젊은 시절에 최대로 발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의 에사키 레오나 박사는 사이언스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의 조건은 10대 중반과 20대 초반 사이에 이미 결정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면 연륜이 더 중요한 분야도 있다. 문학은 상당한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다. 풍부한 지식과 재치 있고 감각적인 어휘의 선택, 인생의 경험이 고루 필요하다. 그런데 감각이 중요한 시의 경우 젊었을 때 최고조에 이르는 반면 삶의 경험이 필요한 소설은 작가의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을 때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고 한다.

톨스토이(1818~1910년)가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간한 때 그의 나이가 51세였다. 팔순에 가까운 시기인 1899년에는 왕성한 필력을 과시하며 ‘부활’을 출간했다. 구상에서 완성까지 60년이 걸렸다는 괴테(1749~1832년)의 대작 ‘파우스트’도 그가 죽기 바로 1년 전인 1831년 83세에야 완성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년) 선생은 대하소설 ‘토지’를 43세에 집필하기 시작해 68세에 탈고했다. 시인이나 물리학자는 20대 후반에 기량을 발휘하는 데 반해 의사나 소설가 등은 중년 이후 기량이 정점에 도달한다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그 밖에도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능력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는 증거는 많다.

노년기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다. 젊은 날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비로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정년 후 보내야 할 여유 시간이 8만 시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연평균 근로 시간이 2261시간이므로 현역 36년 동안 일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체감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지내기엔 너무나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현역 시절에 그토록 꿈꿔왔던 시간이며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늙는 순간 노인이 된다고 한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창의적인 인생을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