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멀티아티스트 유현미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 초대전-내 마음 속 서재’ 전시 전경.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 초대전-내 마음 속 서재’ 전시 전경.
“전시장 안이 마치 머릿속에서 그렸던 상상의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에요. 바닥이며 벽지, 책장 등 온갖 가구들이 하나같이 그림을 옮겨 놓은 것 같아요. 아니, 오히려 그 그림 속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어요. 너무나 환상적인 체험입니다. 이젠 그림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것만 같아요.”

교보문고가 광화문점에 운영 중인 교보아트스페이스를 찾은 어린이 관람객이 함께 온 엄마와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6월 26일까지 진행 중인 이 전시는 ‘내 마음 속 서재’라는 제목으로 전시장을 멋스러운 실제 서재처럼 꾸민 유현미 작가의 개인전이다. 그렇다고 일반 서재를 소개한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전시장 전체를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던 서재로 변신시켰다. 전시장엔 책장, 소파, 조명, 화분 등이 어우러져 누구나 갖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나는 매력적인 서재로 연출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멋지게 꾸며진 서재 풍경이 마치 ‘그림 속 한 장면’ 같다는 점이다. 전시장 속 서재 전체를 진짜 물감으로 채색했기 때문이다. 회화, 설치, 사진, 영상 등의 경계를 넘나드는 멀티아티스트 ‘유현미’의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전시장을 그림 속 서재로 탈바꿈시킨 유현미 작가는 “일상의 서재 모습이 꿈에 그리던 상상 속 ‘나만의 서재’로 최대한 느껴지도록 다양한 측면에서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다양한 시각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유 작가는 서울대와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조각과 창작미술을 전공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개인전 20여 회, 단체전 150여 회 이상 가진 대표적인 중견 여성 작가다.

그가 화단에서 주목 받는 이유는 단지 왕성한 활동 이력 때문만이 아니다. 위에 소개된 교보문고 전시처럼 3차원의 공간과 공간 속 사물들을 2차원의 회화적 감성으로 탈바꿈시킨 후 사진이나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융합형 멀티아트’를 개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작가 역시 자신의 작업 특성을 이렇게 정의한다. “내 작품을 볼 때마다 늘 모자라게 느껴지는데, 그게 어쩌면 제 작품의 매력일지 모르겠네요. 조금만 더하면 뭔가 아주 멋진 것이 분명 나올 것 같은 충족되지 않는 아쉬움 때문에 끊임없이 작업을 지속하게 되니까요. 참고로 남들이 제 작품의 매력에 대해 말할 때 ‘그림인지, 사진인지 아리송해서 묘한 느낌을 주면서도 색채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 표현에 만족하며 공감합니다.”

이 말은 특정한 시점의 결과만을 제시하기보다는 항상 ‘현재 진행형의 작업 형식을 지향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작품을 가리키는 키워드 다섯 개를 ‘스토리, 입체, 회화, 사진, 그리고 무언가’로 꼽았다.

우선 그의 작품에는 늘 이야기가 존재한다. 마치 멋진 영화가 태어나기 위해선 잘 짜인 시놉시스와 시나리오가 뒷받침돼야 하듯, 유 작가 역시 평소 글쓰기를 즐겨한다. 단행본으로 출간할 정도의 탄탄한 글쓰기 실력을 지녔다. 초기 단계의 글쓰기부터 영상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단계까지 내밀한 완성도가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간 과정의 ‘입체, 회화, 사진’은 거의 동시에 진행된다. 몸체를 지탱하는 줄기나 척추 역할의 세 요소는 제각각의 특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다양한 시각적 재미로 승화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한 몸처럼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어쩌면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키워드 마지막 요소로 언급된 ‘무언가’다. 여기에서 ‘그 무엇’은 관객의 몫일 것이다. 시각예술의 여러 차원이 혼재돼 느껴지는 몽환적인 감흥, 허상과 실상을 넘나들며 ‘앨리스’가 된 듯 묘한 예술적 환영 체험을 제공하는 요소 등이 그것이다.

유 작가의 작품이 완성되는 개괄적인 과정을 한 번 더 축약하면 ‘스토리 구성 → 입체로 형상화 → 회화 기법으로 페인팅 → 사진 및 영상으로 촬영하기’다. 물론 중간 중간 음향이나 빛, 향기 등이 적절히 양념 같은 요소로 가미된다. 그렇다고 특정한 주제의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길 꺼려 한다. 오히려 어떤 것을 주장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보는 이 스스로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만나게 되길 더 원한다. 결국 작품의 주제의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관객이 별다른 설명 없이 주제를 체감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유 작가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고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깊어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늘 노력한다”고 말한다. 쥐스킨트의 문학 세계는 참으로 많은 팬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봤던 눈은 근본적으로 우울함 일색이었다. 어쩌면 냉소적이고 혐오하는 시각에 가깝다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현실의 언저리를 맴돌며 방황하는 <좀머 씨 이야기> 속 좀머 씨나 병적이고 낭만적 욕망에 사로잡혀 향수 하나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며 태연자약하게 살인을 일삼는 <향수>의 그르누이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한 젊은 여류 화가를 소재로 한 <깊이에의 강요>는 예술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묘사했다. 주인공은 어느 날 “작품에 깊이가 없다”고 무심히 던진 한 평론가의 말에 깊은 상념으로 고뇌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이후에 그 평론가는 관점을 바꿔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 ‘깊이에의 강요’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에피소드는 예술과 현실이나, 예술과 삶이 지닌 여러 문제성 등을 다시 생각해 한다. 유 작가도 그 ‘강박’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겉으로는 전혀 형언할 수 없는 ‘예술에 있어 깊이’야말로 대부분의 예술가들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원일 수 있다. 그런 강박관념을 경계하는 유 작가의 태도는 예술가 본연의 자세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몫을 배려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작가적 욕심은 최대한 ‘더 뺄 수 없을 때까지’ 빼냈지만, 그 대신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요소들로 ‘의외의 색다른 재미’를 재창조해낸 것이다.

유 작가는 늘 책을 읽고 글쓰기를 즐긴다. 그 과정 역시 작업의 중요한 일부다. 그렇게 모아서 쓴 소설을 기본으로 영화를 만들고, 미술관에서 상영하고, 소설은 다시 그림과 사진이나 도록 형태로 발표되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이 제작되는 전 과정 자체를 ‘한 몸의 작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 가격을 단순히 최종적으로 만나는 ‘사진 형식’으로만 국한한다면 과소평가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럼에도 미술 시장에서 유통되는 유 작가의 작품 가격은 대개 사진 작품을 기준으로 형성돼 있다.

가령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5점 시리즈 개념의 대형 작품인 (650×195cm, 잉크젯 프린트, 2013년)는 7500만 원이다. 이어 크기별 가격을 살펴보면 약 ‘200×150cm’ 정도는 1800만 원 선이고, 약 ‘100×150cm’는 1000만 원 내외, 약 ‘80×100cm’는 600만 원 정도다. 간혹 드물지만 소품에 해당하는 ‘60×40cm’는 약 3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이들 작품별로 보통 두 가지 사이즈가 있고, 사이즈별로 에디션은 3장으로 관리된다.
멀티아티스트 유현미
멀티아티스트 유현미

멀티아티스트 유현미는

유현미(1964~)는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창작미술을 전공한 후, 같은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개인전 20회와 ‘2015 환영과 환상’(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Trace of Art/OMI’(토탈미술관), ‘The Treachery of Images’ (러시아 갤러리 오브 클래식 포토그래피), ‘가상과 실제의 틈’(경주 우양미술관), ‘New future’(자카르타 아트 스페이스 아트 1), ‘컬러풀 Color Pool’(경기도미술관) 등 15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동안 제3회 일우사진상(2011년), 모란미술상 우수상(2001년), 문예진흥원 우수 해외 개인전 지원(2001년)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주요 작품 소장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일민미술관, 금호미술관, 하나은행, 포스코 빌딩, 하이트컬렉션, 아모레 퍼시픽, 서울도시철도공사, 매일유업, 타워팰리스 등 여러 곳이 있다.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및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