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유럽 최고의 도시 파리는 언제나 길을 걷는 사람들로 붐볐다. 거리의 군중은 동시대를 표현하는 예술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곤 했다. 그중 비 오는 날을 그린 그림에는 급변하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와 상호관계가 우산을 통해 비유적으로 펼쳐진다.

번화한 도시의 거리, 광장을 가로질러 갈림길이 교차하는 길목으로 우산을 쓴 사람들이 걸어간다. 빗방울은 보이지 않지만 가랑비가 내리는지 보도가 흥건히 젖었다. 거리의 분위기는 회색조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한두 명씩 떨어져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중 세련되고 부유해 보이는 한 커플이 우산을 함께 쓰고 앞을 향해 걸어온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지 동시에 옆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멀리에서는 생업에 분주한 사람들이 우산 없이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LIFE & Motif in Art] 우산(umbrella), 비에 젖은 파리의 거리
우연히 스냅사진에 포착된 듯한 이 장면은 1877년 귀스타브 카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그린 <파리 거리, 비 오는 날>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프랑스 파리의 생라자르 역 근처의 더블린 광장과 주변 건물을 실제와 거의 똑같이 묘사했다. 가느다란 초록색 가로등 기둥이 화면을 좌우로 이등분하는 가운데 원근법에 맞춰 건물과 인물들이 계산된 듯 배치돼 있다. 일상의 평범한 거리 풍경이지만 분명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반듯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전쟁과 혁명이 모두 끝나고 새로 정비된 근대 도시 파리의 여유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그림은 19세기 말 도시 생활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왜 하필 비 오는 날이어야 했을까? 비바람이나 빗방울이 보이지 않으므로 자연현상 자체에 중점을 두지는 않은 듯하다. 혹시 화가는 우산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궂은 날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림에 우산들이 없었다면 구성의 골격을 이룬 수많은 직선들 때문에 분위기가 매우 딱딱하고 지루해졌을 것이다. 우산들은 부드럽고 날렵한 곡선으로 화면에 우아함을 부여하고, 크기와 방향의 리드미컬한 변화로써 시선을 화면 깊숙이 유도한다. 이렇게 우산은 그림의 형식을 보완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산이 지닌 실용적, 상징적 의미다.


고립과 유대의 적절한 공존
우산은 비에 젖지 않으려고 사용하는 일종의 보호용 도구다. 비와 바람뿐 아니라 또 다른 외부 자극이나 공격을 막아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산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붐비는 도시에서 남과 나를 분리해주고 심리적 혼란으로부터 보호해준다. 우산을 쓰면 그만큼의 공간이 확보돼 다른 보행자와의 간격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쓰면 몸이 평소보다 친밀감이 커진다. 카이유보트의 그림에서 전경의 커플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있다. 팔짱을 끼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하나의 우산 속에 심리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들 옆을 지나가려는 오른쪽의 신사는 우산을 기울여 자신의 공간을 만들려 한다. 한편 화면 중앙의 가로등 옆에는 한 남자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걷고 있다. 우산이 그를 고립시키고 시야를 차단해 그의 사색은 방해 받지 않는다. 맨 왼쪽의 두 남자는 각각 우산을 따로 쓰고 함께 걸어간다. 동행을 하면서도 각자의 영역은 지키는 것이다. 이처럼 우산 속의 군중은 복잡한 거리를 서둘러 벗어나지 않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 걷기를 계속한다.
그런데 그림의 후경에는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작게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들은 마차를 모는 마부, 사다리를 들고 가는 인부, 잠시 대문 밖으로 나온 하녀 등이다. 이들은 비를 피하지 않고 일을 쉬지도 않는다. 오히려 비가 와서 일거리가 더 생겼는지도 모른다. 우산을 가진 부르주아와 갖지 않은 노동자가 분명히 구분된다.
비와 우산으로 계층 간의 관계를 표현한 경우는 이미 19세기 초에 루이 레오폴드 부알리(Louis-Léopold Boilly)가 그린 <유료 통행>에서도 볼 수 있다. 그때는 파리의 거리가 대부분 비포장이고 하수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서 비가 오면 온통 진흙탕이 됐다. 그래서 긴 널빤지 끝에 바퀴를 달아 진창이 된 길목에 걸쳐놓고 돈을 받고 길을 건네주는 사람이 생겼다. 부알리는 널빤지 위를 건너가고 있는 부유층 가족을 그렸다. 그들은 날씨에 아랑곳없이 유행에 따른 우아한 의복과 구두로 멋을 내고 있다. 발밑에서 흙탕물이 넘실대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들 뒤로 초록과 주홍의 커다란 우산들이 꽃처럼 활짝 펼쳐져 있다. 그런데 우산을 든 사람은 집안의 보모와 하녀, 그리고 뒤에서 널빤지 없이 길을 건너는 서민들이다. 상류층은 우산을 직접 들지 않아도 하인의 호위를 받을 수 있고 곧바로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70여 년 후에 탄생한 카이유보트의 그림에서는 우산이 부르주아의 필수품으로 등장한다. 파리는 새로운 건축물과 아케이드가 들어서고 상품이 넘쳐나 구경거리가 많아졌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르주아들은 웬만한 날씨에는 마차를 타기보다는 걸어서 산책하기를 즐겼다. 적당히 비에 젖은 도시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행동을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신분과 목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카이유보트의 <파리 거리, 비 오는 날>은 근대화된 대도시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지 잘 보여준다. 커플의 시선이 나타내듯 사회적 사건에 신속히 반응하고, 한편으로는 개인의 내면을 보존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도 유지해 나가야 한다. 그림 속의 우산들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과 유대를 적절히 조율하며 공존해야 하는 도시적 삶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LIFE & Motif in Art] 우산(umbrella), 비에 젖은 파리의 거리
귀스타브 카이유보트, <파리 거리, 비 오는 날>, 1877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루이 레오폴드 부알리, <유료 통행>, 1803년경, 소장처 불명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