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김수정 기자]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건강엔 좋지만 채식이 선뜻 내키지 않는 이유도 이와 흡사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채식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위한 식당, 서적, 방송 등도 늘어나고 있다. 채식을 통해 건강과 환경 보호,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채식주의자들의 ‘맛있는 채식’ 트렌드를 따라가 보자.
글로벌 채식 바람, 국내도 솔솔
사진출처: 유기농 쌈 채소 전문 농기업 장안농장 (무단복제 시 저작권에 저촉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존재가 아닌 건강에 있다’는 고대 그리스 격언처럼 건강은 온 인류의 최대 과제이자 행복의 요건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경우, 잦은 외식과 불규칙한 식습관, 폭식, 과음 등으로 인해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발생률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고열량 육식 위주의 식생활과 운동 부족 등이 원인으로 꼽혀 온 대장암 유병률도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지난 7월 원영주 국립암센터 연구원 등은 국가 암 등록사업의 일부인 ‘1999〜2013년 암 발생 기록’과 통계청의 ‘1993〜2014년 암 사망률’ 통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16년 남성 대장암 신규 환자 수는 3만7698명으로 남성 위암 신규 환자 수(3만4331명)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과도한 육식 문화의 확산이 또 다른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주로 20~40대 여성들 사이에서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불었던 ‘채식 바람’이 이제는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조류독감, 구제역 등 음식 매개형 전염병에 대한 공포, 웰빙 문화,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로 채식주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가 인구의 약 2%, 즉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채식 레스토랑 및 채식 베이커리는 300여 곳으로 5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비건(vegan: 동물에게서 나온 혹은 동물 실험을 거친 음식도 먹지 않고 채식만 하는 가장 엄격한 채식 단계) 채식 전문 체인점 ‘러빙헛’은 서울 개포동 본점에서 시작해 경기도, 대전, 전주 등에 18개 매장을 냈다.

서울 인사동의 ‘오세계향’, 이태원의 ‘플랜트’, 성북동의 ‘슬로비’ 등은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비(非)채식주의자도 찾는 건강 맛집이다. 한남동 베이킹 스튜디오 ‘운스(Oons)’는 디저트를 즐기는 여성 채식주의자들의 명소로, 버터나 우유 대신 코코넛 오일이나 두유를 쓰는 순식물 성분 빵과 디저트를 개발하고 소규모로 판매도 해 아토피나 당뇨 등의 지병으로 식습관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7년째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요가강사 배윤정(33) 씨는 만성적인 소화불량으로 채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채식 입문 후 첫 3년간 비건을 선택했던 그는 채식을 통해 서서히 속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을 뿐 아니라 불안했던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도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채식을 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늘 불편했던 뱃속이 편안해지면서 심적으로도 점차 여유로움을 찾게 됐죠. 채식 하면 으레 ‘맛이 없다’고 오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정작 채식을 실천하면 되레 기존 인스턴트 음식이나 육류 요리 등의 맛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져서 선호하지 않게 돼요. 더불어 채식을 통해 환경문제나 생명에 대한 윤리적 이슈들도 생각해보게 돼 세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는 걸 느낍니다.”

수도권 지역 외에도 대형 농지를 소유한 유기농 채식 레스토랑들도 채식주의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충북 충주시 신니면에 위치한 유기농 쌈 채소 전문 농기업 장안농장도 최근 ‘체험형 채식뷔페’를 선보였다. 이용객들은 음식을 먹기 전 농장에서 재배된 100여 가지의 쌈 채소를 직접 수확해볼 수 있으며, 당일 찧은 유기농 쌀로 갓 지은 가마솥 밥을 맛볼 수 있다.

류근모 장안농장 대표는 “손님 층이 다양한데 그중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중장년층들이 단골고객이고, 최근엔 집밥을 그리워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방문도 늘고 있다”면서 “사실 그동안 채식 하면 자칫 ‘맛이 없다’는 편견이 있기도 했는데 건강과 믿을 만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육식 애호가들도 디톡스 개념으로 종종 방문한다”고 전했다.
글로벌 채식 바람, 국내도 솔솔


◆채식 시장 급성장했지만, 인프라는 아직 미흡
이처럼 현재 국내에도 채식 관련 식당들이나 식재료 판매처가 늘고 있지만 절대적인 점포 수와 재료의 다양성 면에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상당수 채식주의자들의 중론이다. 13년 넘게 채식을 고수하는 45세 주부 최미진 씨는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일부 비건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인위적인 콩고기나 콩 가공식품, 식물성 단백질 식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사람들과 식사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식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대 인근에서 채식 위주의 일본 가정식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A식당 관계자도 “손님들 중 외국 관광객들이 상당히 늘고 있다”며 “이미 외국에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관련 식당은 물론, 조리 과정도 선택이 자유로운데 한국에서는 그런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단,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만큼 채식주의·비건 식당을 찾는 수요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채식연합 관계자는 “아직은 국내 채식 관련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채식인이 아니더라도 건강과 환경, 동물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채식 관련 레스토랑이나 채식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국내의 채식 관련 시장이 성장하고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