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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글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한다. 맏이는 맏이대로 막내는 막내대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한결같음을 표현한 말이다. 다 큰 자녀도 여전히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보이지만 일정한 때가 되면 품 안의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도 부모의 몫이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이 결혼을 해야 독립하는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자녀 양육 기간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긴 편이다.
딸과 아들의 차이
그뿐만 아니라 양육 비용도 소득 대비 적지 않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기혼자 64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자녀가 있는 가정의 월평균 가구 수입이 494만 원으로 자녀가 없는 가정의 446만 원보다 약 48만 원 많았다. 반면 자녀가 있는 부부의 개인 월평균 용돈은 29만5000원으로 자녀가 없는 부부의 32만7000원보다 약 3만2000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를 양육하느라 다른 비용을 아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유자녀 부부의 경우 월평균 가구 수입이 증가하더라도 개인 용돈을 좀처럼 늘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혼자 6099명의 자녀 성장에 따른 가계소득 추이를 살펴봤더니 자녀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차례로 진학하는 동안 월평균 가계소득은 501만 원에서 532만 원, 555만 원, 571만 원으로 점차 상승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부모 1인당 한 달 여윳돈은 30만9246원, 31만339원, 31만8790원, 31만7691원으로 거의 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수 자녀가 돈 버는 부모보다 더 많은 용돈을 쓰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자녀를 돌보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2014년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초혼 연령은 남성 32.6세, 여성 30.0세로 집계되고 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30세를 넘겨 첫 결혼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 서른이 넘어 첫 애를 낳으면 노산(老産)이라 불렀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결혼이 늦어진 만큼 부모에게 의지하는 기간은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자녀의 초혼 나이가 늦어지는 상황이 불안한 부모들이 자녀들 대신 짝 찾기에 나서는 ‘맘매칭(mom matching)’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공부뿐 아니라 자녀의 연애마저 부모가 노력해야 하는 시대다. 이렇게 해서라도 결혼하고 독립하면 다행이다. 통계청이 2014년 만 13세 이상 전국 3만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에 대해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고 한 응답은 전체의 38.9%로 2008년의 27.7%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돼 가고 있다.

치매 노인 봉양, 딸 > 아들 자식이 결혼하겠다고 해도 부모의 역할이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 의식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결혼 비용의 차이로 나타난다. 여성가족부가 2014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들을 장가보낼 때는 부모가 대체로 8000만 원 이상을 지출하고 딸을 시집보낼 때는 6000만 원 이하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세대 응답자 중 93%가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감을 상대방 집안에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중 51.9%는 자녀 결혼 지원금이 ‘부담스러웠다’고 답했다.

반면 통계청의 조사를 보면 부모에게 생활비를 드리겠다는 자녀들의 비율은 점점 줄고 있다. 부모 부양이 가족과 정부,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응답은 2014년 47.3%로 2008년에 비해 3.7%포인트 늘었다. 이에 비해 가족의 책임이라는 응답은 31.7%로 9%포인트 줄었다. 부모에 대한 부양을 개인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응답자 중 부모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비율은 49.5%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세태 때문인지 부모의 생각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보험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자녀에게 주택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20대는 86%, 30대는 67%가 나중에 자식들한테 집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답해 젊은 층일수록 집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산을 물려줄 계획이 없는 만큼 자식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도 크지 않았다. 은퇴 후 어떤 종류의 소득이 필요할지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48%가 ‘내가 준비한 노후 생활 자금’이라고 답했고 그다음은 35%가 답변한 ‘재취업을 통한 근로소득’이었다. ‘자식의 경제적 지원’이라는 답은 9%에 불과했다.

믿었던 아들은 정작 노후에 큰 보탬이 안 된다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치매나 중풍에 걸린 노인을 돌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09년 당시 장기요양보험의 재가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의 가족 수발자 1233명을 조사했더니 배우자가 32.8%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3명 가운데 2명이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남편이 아내의 수발을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의미다. 배우자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21.3%인 딸, 그다음은 20.9%인 며느리로 나타났다. 아들은 19.3%로 꼴찌를 차지했다. 노후 설계는 가족 설계로부터 시작된다는데 우선 딸부터 낳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