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Act] 최광철 전 원주시 부시장·여행작가
“수상한 집시 여행으로 낮아지는 법 배웠죠”
[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최광철 전 부시장(유럽 여행 사진) 제공]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부시장까지 올라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최광철 전 원주시 부시장.
그는 2014년 6월, 37년의 공직 생활을 마쳤다. 최 전 부시장은 은퇴한 지 보름 만에 유럽 자전거 횡단 여행에 나서더니 지난해에는 한·중·일을 잇는 동북아 자전거 여행을 마쳤다.

“이제는 누가 부시장이라고 부를 때보다 여행작가라고 불러줄 때가 더 기분이 좋답니다. 그만큼 여행을 통해 제가 많이 낮아진 덕이겠죠.(웃음)”

남다른 행보의 이면에는 은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최광철 전 원주시 부시장. 고행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힘겨운 자전거 여행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 된 자전거 여행

“2014년 6월 30일 부시장 임기를 마치고 보름 만에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은퇴하고 보름 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으니 여행이 일종의 도피였던 셈이죠.”

이미 은퇴한 선배들만 봐도 은퇴 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방황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머물던 연고지를 떠나는 경우도 흔했다. 그 자신도 고향인 원주를 떠나야 하나 갈등했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킨 건 도피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웃는 척, 흔들리지 않는 척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어요. 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죠. 원주는 떠나지 않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죠. 그래서 어쩌면 무모하게 유럽 자전거 횡단을 결심했는지 몰라요.”

유럽을 자전거로 횡단하려면 갖춰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체력, 돈, 언어, 여행 감각 등. 하지만 그에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럽행 비행기 티켓만 쥔 채 아무것도 없는 그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낯선 상황에 저를 던지고 사회에 담금질해야만 왕년에 부시장이었는데 하는 특권의식을 조금이나마 내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여행을 마치고 보니 자전거 여행이 일종의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 된 셈이죠.”

다행히 유럽은 캠핑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매일 수십 km를 달리며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쉬고 다시 길을 떠나는 고된 행군이 계속됐다. 매일 아침 캠핑장을 떠나며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만나지만 ‘과연 오늘 하루 무사할까’를 담보할 수 없는 그런 여정이었다. 예순을 코앞에 둔 나이, 25kg의 짐을 싣고 15kg에 달하는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체력적으로 벅찬 일이었다. 매일 한계에 부딪히다가 그와 동행한 아내는 탈진해 쓰러지기도 수차례였다. 영국에서는 지도 위에 펼쳐진 실핏줄 같은 길을 찾아다니다가 길을 잃어 경찰에 구조되기도 했다.

힘든 여행 중에 그는 매일매일 일기를 쓰며 하루를 기록했다. 매일 오전 5시부터 2시간씩 블로그에 올리고 이를 다시 소셜미디어에 링크를 걸어 뒀다. 힘들고 지쳤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맺은 팔로어들의 격려와 위로 덕에 포기하려는 고비를 견뎌냈다.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를 거쳐 목적지인 영국 에든버러에 도착하니 정확히 90일이 걸렸다. 첫 번째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동안의 일기에 살을 더하니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를 묶은 책 한 권이 나왔다. 책을 내고 유럽에서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회도 열고 여행을 다녀온 후의 감회를 강연을 통해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은퇴 후 1년이 훌쩍 지났다.

여행을 시작한 지 1년 후에는 한국~중국~일본을 잇는 동북아 화해 대장정에 나섰다. 다시 3개월의 여행 후 책 집필에 들어갔고 두 번째 여행 책이 나왔다. 그렇게 여행을 마친 지금 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울감, 주위의식, 체면치레는 독일 도나우 강에 흘려버렸어요. 권위와 특권의식은 중국 황허 강 유역에 내던졌고요. 여행에서의 고통스러운 추억이 더욱 진하게 남았지만 여행은 분명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줬습니다. 한때 은퇴를 앞두고 우울했던 감정에 싸였던 것이 바보스럽기까지 했어요.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뉜 것이 아니라 폭넓은 스펙트럼이란 것을 깨달은 거죠. 이제는 은퇴 전의 두려움에 싸여 있는 제가 아녜요. 주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제 당당히 인생 2막을 마주하기로 했죠.”

부시장 권위 내려놓고 여행작가로 연 인생 2막

최 전 부시장은 올해 중국 여행을 마치자마자 안경부터 바꿨다. 그동안 안경 쓴 것이 표시나지 않는 금테 안경이나 검은 뿔테 안경을 썼다면 새롭게 바꾼 안경은 독특한 동그란 노란색 테다. 그는 그동안 끼고 다니던 안경이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근엄해 보이는 안경을 끼고 있는 게 아직 공무원의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한 것만 같이 느껴졌어요. 안경을 바꾸고 보니 자신을 더욱 내려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제 자신을 남들에게 더 잘 각인시킬 수도 있고 한층 젊어 보이기도 하고요.”

은퇴 후 여행작가로서 인생 2막을 연 그는 아예 목표를 자전거로 떠나는 세계여행으로 잡았다. 이르면 올해 겨울 또다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는 재직 시절 공무원 역량교육 퍼실리테이터 과정을 이수해 가끔 후배 공무원들에게 강의를 하곤 한다. 그때마다 여행 얘기를 꼭 들려준다. 자신이 여행을 통해 느낀 바를 진솔하게 전하는 것이다.

“누군가 저한테 ‘멘토’란 표현을 쓰더라고요. 함부로 쉽게 얘기할 수 없는 호칭이지만 은퇴 공포를 극복한 제 얘기가 그들에게는 도움이 됐나 봐요.”

서두에 밝힌 대로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해 부시장까지 오른 전설적인 인물이다. 1977년 9급 공채에 합격한 후 다시 7급 공채에 합격해 중앙관직에 진출한 이후 지방직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직인 부시장까지 지냈다. 주변에 석박사 출신과 해외 대학 출신들이 즐비했지만 그는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었다. 승진에도 ‘초졸’이라는 학력이 발목을 잡지는 않았다.

다만 매년 공무원 신상명세서 변동 사항을 제출해야 할 때 학력 란에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한 줄 외에 빈칸으로 둘 수밖에 없던 것에는 늘 마음이 아렸다. 과거 어려웠던 형편 탓에 형제들 줄줄이 학업을 포기했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위를 검정고시로 딴 후 50대의 늦은 나이, 바쁜 일정을 쪼개 가며 1년에 한 과목씩 이수해 대학 학사도 취득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제가 말년에 부시장까지 오른 것을 돌아보니 참 감사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공무원직은 은퇴했지만 말년에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며 더욱 몸가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은퇴 이후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한 원동력도 어쩌면 이러한 혜택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두 번의 여행 후에 나온 두 권의 책 제목을 <집시부부의 수상한 여행>이라고 지었다. 집시의 겉모습은 비록 누추할지라도 내면은 삶에 대한 깊이와 철학이 있다는 데서 삼은 제목이다. 그런 집시를 닮아 보헤미안을 꿈꾸며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 속에 내려놓고 얻은 행복을 짐작해볼 수 있게 했다.

“수상한 집시 여행으로 낮아지는 법 배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