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수직으로 선 기둥은 남성의 힘을 상징한다. 부러진 기둥은 흔히 갑작스런 죽음이나 요절을 가리키며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남성적 투지와 인내, 불굴의 용기를 의미한다.
[Motif in Art] 부러진 기둥(broken column): 소멸에 맞서는 불굴의 용기
◆ 조르조네, <폭풍>, 1508년경, 베네치아 아카데미 갤러리

여기 수수께끼처럼 베일에 싸인 그림이 있다. <폭풍>이라고 불리지만 원래의 제목은 알 수 없다. 작가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화가 조르조네(Giorgione)라고 알려져 있다. 그림의 내용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연구했지만 속 시원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술 애호가들을 사로잡는 이 그림의 자석 같은 매력은 무엇일까?

삶을 유지시키는 긴장된 힘
멀리 도시의 건물들과 다리를 뒤로 하고 강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야생의 장소가 나온다. 그곳 한쪽 수풀 밑에서 한 여인이 나체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반대편에는 목동 차림을 한 남자가 긴 장대를 짚고 서서 여자와 아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마주보지 않는다. 여자의 시선은 남자가 아니라 관람자를 향하고 있다. 뭔가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주위의 황량한 분위기 때문일까? 때마침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한 줄기 번개마저 날카롭게 번득인다. 곧 폭풍이 닥쳐 올 것 같은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다.
이런 곳에 외롭게 남겨진 남자와 여자는 과연 누구인가? 이들의 신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아주 분분하다. 길 안내자인 헤르메스와 그의 연인 아프로디테라는 설,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라는 설,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이라는 설, 군인 또는 목동과 집시 여인이라는 설, 그리고 특정 인물이 아니라 운명이나 용기나 사랑 같은 추상적 개념을 의인화한 알레고리라는 설 등.
인물의 신원이 모호해도 이 그림이 명작인 것은 화면을 주도하는 저 강렬한 풍경 때문이다.도시와 전원이 안정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물, 나무, 흙 등 자연의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고 하늘의 표정이 살아 있는 신선한 풍경은 이전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조르조네의 <폭풍>은 자연의 위력과 변화를 포착한 진정한 풍경화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 풍경에서 자연과 인물 외에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남자 뒤편에 있는 두 개의 부러진 기둥이다. 기둥은 그림의 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무너진 건축의 잔해일까? 아니면 어떤 상징적 의미가 숨어 있을까?
본래 수직으로 선 기둥은 남성의 힘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부러졌으니 파괴, 몰락, 단절, 죽음과 같은 필멸성을 내포한다. 부러진 기둥은 흔히 갑작스런 죽음이나 요절을 가리키며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남성적 투지와 인내, 불굴의 용기(fortitude)를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서양의 종교미술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이나 순교자의 희생 장면에 파손된 기둥이 자주 나타난다. 일반적인 미술작품에도 부러진 기둥이 부속물로 들어가면 죽음을 애도하거나 등장인물의 용맹한 정신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는다.
[Motif in Art] 부러진 기둥(broken column): 소멸에 맞서는 불굴의 용기
◆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 <투구를 기둥 위에 얹은 남자의 초상>, 1555~1556년, 런던 내셔널갤러리

일례로 르네상스 말기 북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Giovanni Battista Moroni)는 귀족 남성의 초상화 속에 부러진 기둥을 자주 그렸다. 그의 작품 <투구를 기둥 위에 얹은 남자의 초상>에는 기사 복장을 한 남자가 부러진 기둥 위에 투구를 올려놓고 있다. 장소가 무너진 건축 폐허인 것으로 보아 그가 격렬한 전투를 치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그는 의연함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서 있다. 자신의 투구가 놓인 기둥이 부러졌으니 어쩌면 그는 이미 운명을 달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폐허 위로 조그맣게 열린 파란 하늘이 그의 용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조르조네의 <폭풍>에서도 기둥은 남자와 가까이 있으므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부러진 기둥이 불굴의 용기를 상징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남자는 폭풍과 같은 무서운 시련을 헤치고 용감하게 연약한 여자와 아이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든든한 길잡이 헤르메스, 성모자를 보호하는 가장 요셉, 힘과 용기로 집시를 돌보는 목동이나 군인처럼 말이다.
그러나 부러진 기둥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 기둥은 문자 그대로 남자가 맞게 되는 죽음을 암시하는데, 왜냐하면 죽음이 모든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 운명은 인간이 에덴의 낙원을 잃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따라서 <폭풍>은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된 장면이고 번개를 동반한 날씨는 신의 진노를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부러진 기둥은 실낙원 후 아담과 이브가 겪게 될 죽음을 예고하는 상징인 것이다.
한편 상징적 해석을 떠나 부러진 기둥을 자연적인 현상으로만 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언젠가는 낡고 부서져 폐허가 된다. 벼락, 지진, 전쟁과 같은 급작스런 재난으로 파괴되지 않으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풍화한다. <폭풍>의 번개와 부러진 기둥은 자연 재해의인과관계를 나타내 그 위험을 경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여운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필멸의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용감하게 맞서고 사랑으로 새 생명을 키우며 삶과 죽음의 고리를 이어간다.
조르조네의 <폭풍>은 부러진 기둥을 매개로 이처럼 다양하게 의미를 추정할 수 있다. 신화에서 종교로, 역사와 문화로, 작가의 감성으로, 그리고 존재의 철학적 상황으로 끊임없이 의미가 순환한다. 부러진 기둥에는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불굴의 용기라는 상반된 힘이 긴장되게 얽혀 있다. 황무지에 버려진 기둥처럼 고독한 인간은 모든 사물의 소멸을 인식하고 폐허를 직시하며 용감하게 살아가야 한다. 조르조네는 그 시대에 현실과 상징을 동원하되 단일한 설명을 거부하며 인간 존재의 모순을 표현하려 했을까? 수수께끼 같은 그의 그림은 오늘날 질문을 품고 다가가는 사람들마다 깊고 깊은 의미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박은영 문학박사·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