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불회화, 일상을 담아낸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이길우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수천, 수만 개의 작은 구멍이 뚫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흔히 ‘향불작가’로 불리는 이길우 작가의 작품이다. 그의 독창적인 조형 어법은 국내외에서 남다른 호응을 얻고 있다. 같은 기법의 작품으로 2012 런던 올림픽 기간의 영국 사치갤러리 전시, 아시아 최초로 비엔날레를 시작한 ‘방글라데시 아시아미술전’의 2010년 대상, 독일 ZKM미술관 아시아 100인전 초대,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초상화 제작, 중국 여배우 판빙빙의 개인 소장 등 주목할 만한 에피소드가 많다.

전통은 존중하되, 안주하진 않는다. 이길우 작가의 작품은 전통예술 창작 기법 가운데 ‘나무, 대나무, 상아 등의 표면에 인두로 지져서 그린 낙화(烙畵) 기법’을 모티브로 삼아 현대미술에 응용한 것이다. 다만 한국화 전공의 이력을 살려, 전통 한지를 기본 매개체로 삼았다. 제작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순지(100% 닥으로 만들어진 얇은 한지) 한 겹에 향불이나 연필 모양의 작은 인두로 태워 수많은 구멍으로 연출한 뒤, 서로 상이한 내용이나 형상의 밑그림을 부합(附合)시켜 배접이나 코팅하면 완성된다. 또한 직접 염색한 색색의 한지가 콜라주 삼아 덧붙여지면서 화면의 생기를 돋게 만든다.

일상의 자연에서 우연히 ‘결정적 계기’를 만났다. 2003년 늦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 작가의 눈에 눈부신 역광 속의 말라가는 은행잎이 들어왔다. 마치 타들어 가는 것처럼 보인 그것은 제 몸을 조금씩 소멸시키면서도, 또 다른 생(生)의 환희를 노래하는 듯했다. 그것으로부터 향불 작업의 영감을 얻게 됐다. 향불에 구멍 난 한지 너머로 다른 차원의 세상이 오버랩 됐다. 첫 장의 뒤로 제각각 다른 이미지가 그려진 2~3겹의 장면들이 겹치면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완성됐다. 초창기엔 주로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을 등장시켰지만, 점차 동서양의 정서가 대면된 ‘동문서답(東問西答)’ 시리즈를 보여 왔다.

무수히 ‘소멸된 구멍’은 다른 차원 너머의 세상과 만나는 창(窓)과 같다. 서로 반반씩 비우고, 완전히 한 몸이 돼야만 비로소 온전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배려와 포용의 미학이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 문구가 떠오른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진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소설가 김훈의 말이다. 자신의 나이테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또 다른 나’를 맞이하며 ‘교감과 수용의 지혜를 보여주는 것’이 서로 닮았다.

이길우는 작품으로 ‘폼’ 잡는 것을 경계한다. 작품을 통해 특정한 거대담론을 생산하거나 육중한 메시지를 전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의 무대는 일상이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낸 소재들이 그에겐 주인공이다. 가령 2007년 <로널드씨의 유람기> 시리즈는 당시 일곱 살이던 딸아이가 서울 인사동 맥도널드 피에로 벤치에 앉아 좋아하던 장면을 목격하고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불과 몇천 원짜리 음식이 전쟁을 상징하는 총, 칼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의 발견이었다. 이것은 ‘과연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라는 예술가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화두이자 소명에 대한 답의 발견이기도 했다.

일상의 재해석, 최근 작품 역시 그 연장선이다. 2010년 전후 알약들이 화면에 등장한 것도 가족의 아픔에서 비롯됐다. 그 시기 인생의 기둥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이후 요양원에서 아버지와의 조우마다 삭힐 수밖에 없었던 이 작가의 심적 고통은 오로지 향불 작업에서만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향불 구멍 너머에 비친 풍경들은 요양원을 오가며 만났던 풍광이다. 그 속에서 들리는 바람소리, 물소리, 벌레소리는 온전히 자연이 선사해준 치유의 손길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누구에겐 힐링의 산물일 수 있다.
어쩌면 이 작가는 무수히 스치는 풍경 속에서 쇼핑백에 한가득 담긴 부모님의 약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척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삶의 무게를 더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럴 때마다 향불을 집어 들었다. 곧바로 뇌리에 스치는 풍경들을 옮겼다. 집과 작업실, 요양원이나 학교 등을 ‘오고 가는 길’ 혹은 ‘스쳐 지난 풍경’이 고스란히 작품의 소재가 됐다. 그중에 <살구꽃아파트 804호>는 살고 있는 집이고, <보동리 234번지>는 산과 논밭이 있는 작업실이다. 간혹 풍경에 스미듯 등장하는 국영문 신문지 잔영은 번잡한 사회의 일상을 만나는 유일한 창구 역할을 대변한다.

“지금까지 새로운 창작의 방법론을 탐구하는 데 열정을 다해 천착해 오고 있습니다. 간혹 너무나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일관하는 일부 현대미술의 제작 관행을 보고 심적 부담과 갈등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일지라도 종국에는 값진 새 의미로 완성되리라 믿게 됩니다. 일상적인 삶의 작은 편린들이 하나둘 모여 인생의 지도를 완성하듯, 하나둘 향불로 드러나는 구멍을 통해 진정성의 힘과 초심이 발휘됨을 확신합니다. 이제 작품 제작에 있어 시간적 요인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삶의 자세와 에너지가 투영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 전념하게 됩니다.”

이길우 작가의 말처럼, 그는 ‘새로움에 도전하길 주저하지 않는 강한 의지의 작가’다. 그 과정이 비록 수행자의 길처럼 끊임없이 실패와 포기의 유혹으로 더디고 무딜지언정, 오히려 이길우는 어려운 길로 돌아가길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50대에 접어든 그를 지탱해준 기반 역시 그의 남다른 뚝심과 의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작품 깊숙이 스민 한국적인 서정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자연 풍경과 그 안에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과 정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작품이 동서양의 감성을 넘나들면서도 뿌리는 항상 우리의 전통성에 내리고 있기에 더욱 친밀하게 다가온다.

2차원적인 평면 작품이지만, 또 다른
향불회화, 일상을 담아낸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2차원의 평면들이 합쳐지면서 오히려 입체적 실루엣을 선보인다. 이 같은 이길우 작품의 이중적 시각 효과는 ‘전통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위한 그만의 노하우가 됐다. 전형적인 한국화 재료만을 활용하면서도 독창적인 조형 어법의 어우러짐이 연출된 결과다. 한지, 염색, 콜라주, 그리고 향불의 만남은 이길우 개인사를 넘어 이젠 우리의 일상을 담아낸 파노라마 다큐멘터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작품은 들어간 공력만큼 그 가치도 높아진다고 했던가. 이길우 작품의 전시 가격은 100호(160×130cm) 기준으로, 2007년 1200만 원에서 현재는 ‘2000만~2500만 원’ 선으로 형성돼 있다.

아티스트 이길우
아티스트 이길우
아티스트 이길우

이길우(1967년~) 작가는 중앙대 예술대학 한국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일반대학원에서 한국화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그동안 2000년 동아미술대전 동아미술상 및 2010년 방글라데시국제아시아비엔날레(방글라데시아시아미술전)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베이징 염황미술관·베이징 갤러리문, 뉴욕 화이트박스갤러리, 서울 선컨템포러리, 서울 나무모던컨템포러리 등에서 개인전 18회를 가졌다. 또한 두바이 국제아트페어, 뉴욕 스코프, 마이애미 국제아트페어, 싱가포르 국제아트페어, 스위스 바젤 스코프, 베이징 국제아트페어(CIGE), 시카고 국제아트페어 등을 비롯해 100여 회 이상의 기획단체전에 초대된 바 있다. 현재는 중앙대 한국화학과 교수, 동아미술제 추천작가, (사)한국미술협회 회원, 동방예술연구회 회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윤섭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ㆍ세종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및 수원대 미술대학 대학원 객원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