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버릴수록 이곳이 더 좋아진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이 단장을 맡아 신루트를 개척한 히말라야 피크-41은 쉽사리 등정을 허용하지 않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 회장과 서울산악조난구조대(대장 구은수)는
마지막 베이스인 피크-41 베이스(4800m)에 도착했다. 이제 극한의 도전이다. 대원들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위험을 음악 삼아 불굴의 투지로 죽음의 능선을 오르고, 노 회장은 특유의 짧고 감각적인 언어로 이를 기록했다. <편집자 주>
‘영원한 청년’ 노익상의 히말라야 피크-41 신루트 개척기 ②
피크-41 베이스(4800m)로 가는 길은 하이킹 코스 같다. 오른쪽 아래에는 초록색의 호수가 있고, 길에는 야생화들이 잔뜩 피어 있고, 경사는 완만하다. 날씨도 화창하다. 화려한 구름이 산봉우리들을 가렸다가 다시 물러간다. 이런 길을 걸을 때에는 속으로 산 노래를 부른다. 대학생 때부터 부르던 노래다.
“숲속엔 새들이 울고 풀벌레 우는 곳, 노루 사슴 뛰노는 곳, 정다운 꽃동산….”
우리가 가는 마칼루 쪽의 히말라야에는 거의 사람이 없다. 하루에 한 팀 보기도 어렵다. 야크와 포터들이 줄 지어 가는 에베레스트 쪽은 늘 분주하다. 그러나 이곳은 한없이 조용하고 한가하다. 능선에 누웠다. 산 냄새가 난다. 눈으로 경치를 보기보다 코로 산 냄새를 맡는 것이 더 좋다. 이 냄새는 뭐라 표현할 수 없다. 2000m나 3000m의 산에는 계곡, 물, 숲, 새들이 있다. 그 계곡을 돌아 오를 때에는 늘 촉촉한 기운이 코 속으로, 피부 속으로 들어온다. 여기는 4000m가 넘는다. 맑은 냄새다. 냄새만큼 좋은 것이 내 살갗으로 느끼는 산의 기운이다. 윗옷을 벗고 누워 있으면 살 속으로 고산의 기운이 들어온다. 얼마나 좋은가. 그냥 여기 그대로 있자. 나를 버리자. 이렇게 좋은 곳에서 나를 찾아 무엇 하나. 자신을 버릴수록 이곳이 더 좋아진다.
‘영원한 청년’ 노익상의 히말라야 피크-41 신루트 개척기 ②

4800m 베이스에 도착하다

2016년 10월 10일, 트레킹 10일째, 드디어 피크-41 베이스에 도착했다. 아, 초원이다. 보통 8000m의 산 밑 베이스캠프는 바위와 흙바닥이다. 하루 종일 먼지가 날린다. 식당 텐트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밥그릇에 먼지가 쌓인다. 그런데 여기는 푸른 초원지대. 이런 행운이 있다니. 까마귀 몇 마리가 날고 있다. 피크-41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왼쪽 쿨와르(couloir: 움푹 팬 직벽)가 2014년 서울산악조난구조대가 등반한 루트라고 한다. 쿨와르 정점까지 올랐다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내려왔었다. 당시 구은수 대장이 “다시 실력을 키워서 오겠습니다”라고 소리 지른 영상을 보았었다. 2년 후 오늘, 우리는 다시 왔다.

저녁을 먹고 천막 밖으로 나왔더니 보름달에 가까운 반달이 베이스캠프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혼자 휴대전화의 음성 녹음 장치에 넋두리를 했다. 기분이 좋은 밤이었나 보다.
“반달과 보름달 사이에 밝은 달, 높은 설산, 넓은 계곡, 그 사이 구름, 달빛에 가리어 간신히 빛을 내는 별들, 그 속에 서 있는 나. 오르는 자는 오르는 자의 기쁨이 있고 서 있는 자는 서 있는 자의 그 무엇이 있다. 이 속에서 나를 버리려 해도 그렇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버리지 말고, 그냥 두자. 그러면 어떠하리. 사람이 사람의 굴레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음을…. 그러나 자신을 버리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세우지는 말자.”

유학재 위원도 밖으로 나왔다. “서울 가면 다시 오고 싶겠지”라고 물으니 유 위원이 “그립겠지요”라고 답한다. 베이스캠프에서 3일 동안 구 대장과 유 위원이 피크-41을 정찰했다. “2014년 루트는 정상 등정을 하기에 너무 위험해 보여. 저기 쿨와르 위에는 엄청난 눈이야. 10m 이상 되는 것 같은데 확보할 곳이 없어”라고 유 위원이 말하자, 구 대장이 “좀 찾아봅시다”라고 한다. 우리의 목표는 북벽이다. 그들 둘은 북벽의 남쪽과 북쪽을 살피러 떠났다.
다음 날, 구 대장이 북벽의 북쪽 쿨와르가 가능해 보인다고 했다. 비록 내가 단장이지만, 이런 결정에 도움을 줄 경륜이 없다. 구 대장과 유 위원은 알프스와 히말라야의 저렇게 생긴 거의 모든 벽을 오른 사람들이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영원한 청년’ 노익상의 히말라야 피크-41 신루트 개척기 ②
멀리서 키친보이(kitchen boy: 산행에서 잔심부름을 모두 하는 역할)가 하얀색의 무엇인가를 가져온다. 콩티마 로지에서 본 플라스틱 등받이가 있는 의자다. 구 대장이 이 의자를 내 천막 바로 옆, 피크-41 북벽이 잘 보이는 곳에 놓는다. 여기서 편하게 보고 있으라는 뜻이다. 일부러 이 의자를 가져왔다고? 거 참, 배려를 해도 너무 하는구나.

2016년 10월 15일, 베이스캠프 6일째. 오늘부터 피크-41 북벽 등반이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참으로 준비를 잘하고 팀워크도 좋고 기세도 당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비가 저렇게 많은데다 전부 쇠붙이들이다. 암벽 틈에 박고, 얼음을 뚫어 집어넣고, 설벽에 깊이 파묻어 추락을 방지하는 장비들이다.

구 대장에게 말했다.
“무언가 잘 될 것 같아.”
“날씨가 좋아요.”
이 말뿐이었다. 암벽, 설벽, 빙벽 장비와 7일분의 최소한의 식량만을 챙겨 메고 떠나는 구 대장, 유 위원, 한동익 대원을 배웅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마주쳤다. ‘해야 돼, 안전하게.’ 생각은 그랬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 마음이 같으면 된다. 기도한다고 해서, 바란다고 해서, 부탁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얀 플라스틱 의자와 대형 망원경을 놓고 떠났다. 그들을 믿는다.
‘영원한 청년’ 노익상의 히말라야 피크-41 신루트 개척기 ②
저녁을 먹고 베이스캠프 주변을 산책하러 나왔다.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데, 가사가 있는 음악은 자꾸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 가사가 없는 연주 음악이나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이 산에서는 마음을 더 편하게 하는 것 같다.
구 대장의 공격조가 떠난 다음 날부터 베이스조(최지원, 김정도, 노익상)는 등반하는 모습을 관찰하고자 맞은편 능선으로 오른다. 망원경을 등반 루트에 고정시켜 놓고, 오르는 모습을 보면 베이스조도 신이 난다. 히말라야 셀파 족인 텐징(쿡, cook)은 망원경 없이도 공격조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나는 망원경으로 봐도 잘 안 보이는 데 말이다. 그들이 서로 무전기로 교신하는 말이 들린다.
‘영원한 청년’ 노익상의 히말라야 피크-41 신루트 개척기 ②
“완료.”
“올라갈까요?”
“짐부터 올려.”
“네, 올리고 있어요.”
“대장님, 로프가 15m밖에 안 남았어요.”
“알았다.”
벽이다. 거의 90도에 달하는 직벽이다. 저기를 오르고 있다고. 괴력이다.
벽을 오른 지 5일째, 마지막 피치(pitch, 구간)가 험해 보인다. 그때 구 대장의 무전이 왔다. 우리는 등반조에게 방해가 될까 봐 무전을 못 보낸다. 그냥 궁금하기만 할 뿐이다. 무전을 해서 “지금 어디쯤이야” 하고 물어봤자, 등반조에 도움이 안 된다. 말하기도 힘든 상황이 틀림없을 것이다.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벽 등반에 괜히 베이스에서 떠들면 위험하기도 하다. 그런데 구 대장으로부터 최지원 대원을 찾는 무전이 왔다.
“거기서 망원경으로 봐봐. 루트를 살펴봐. 여기서 오른쪽으로 트라파스(벽을 옆으로 건너가는 것) 하면 그다음은 뭐지? 여기서 직등하면 능선인가?”

최 대원이 가물가물 보이는 벽을 망원경으로 보면서 의견을 낸다. 나는 제발 옆으로 비껴가기를 바랐다. 곧장 오르면 허공에 매달리게 되는 루트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쓸데없는 참견을 할 처지가 못 된다. 결국 구 대장은 그 위험한 오버행(90도가 넘는) 벽을 오르고 있는 것 같다.
‘영원한 청년’ 노익상의 히말라야 피크-41 신루트 개척기 ②

대원들 죽음의 능선을 오르다

3~4일이면 쿨와르에 올라 능선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벌써 5일째다. 가져간 식량은 7일분(나중에 알았지만 무겁다고 5일분만 가져갔단다). 능선에 오른 후 정상에 가자면 적어도 또 3~4일은 걸릴 것이다. 먹을 것도 없을 텐데.

2016년 10월 20일, 정상을 향해 등반을 시작한 지 5일째다. 베이스캠프에서 등반조를 위해서 할 일은 사실 없다. 등반조에 대해 관심 또는 기대, 걱정을 해도 베이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런 관심, 기대, 희망, 걱정, 이런 것이 사람에 대한 정이다. 어찌 보면 사랑이다. 이런 정과 사랑은 요구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다. 자제할 수는 있으나 억지로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이런 것이 산 친구들 사이의 정이다. 돌아가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자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너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2016년 10월 21일, 등반 6일째. 구 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여기 능선입니다.”
‘아, 신루트 개척에는 성공했구나.’ 여기서 보이는 동북쪽의 능선은 칼날이다. 도저히 사람이 오를 설벽이 아니다. 저쪽(안 보이는 반대쪽, 남서면) 능선은 어떨까? 제발 좀 평평하면 좋을 텐데. 피크-41 정상 능선에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하늘로 솟은 눈발의 높이가 30m는 되는 것 같다. 저렇게 눈보라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저쪽 능선은 좀 완만하다는 것이 아닐까? 그냥 희망일 뿐이다. 희망은 사람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실과 당위를 구별해야 하고, 예상과 희망을 분별할 줄 알아야 쓸데없는 허상을 버리게 된다.

베이스캠프에 돌풍이 몰아쳤다. 매트리스가 300m 이상 날아갔고 플라스틱 의자가 바람에 날려 뒹굴고 있다. 세워 둔 망원경도 바람에 넘어져 구르고 있다. 내가 앉아 있는 텐트 안이 들썩거릴 정도다. 이 정도니 능선의 돌풍은 얼마나 심하랴.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서울산악조난구조대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