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42호 (2017년 03월)

비극은 말의 전장에서 시작된다

셰익스피어 <오셀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오셀로>. 오셀로는 이 극의 남자 주인공이다. 전장에서 빛나는 용사 오셀로, 한 여자의 헌신적 사랑을 받은 오셀로. 그런 그가 한순간에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가장 화려한 삶의 정점에서 왜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


베니스의 장군인 오셀로. 그의 사랑은 이곳에서 하나의 ‘사건’이 됐다. 한 남자의 사랑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몇몇 사람들의 뒷담화 때문이겠으나, 오셀로의 사랑이 당시 베니스에서 규범에 벗어난 사랑인 것만은 분명했다. 오셀로가 베니스에서는 보기 드문 ‘무어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그를 ‘흑인’ 장군이라고 불렀다. 피부색 자체가 스캔들인 셈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무어인이 감히 베니스의 원로인 브라반시오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이라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 것이다.

특히 데스데모나를 짝사랑했던 베니스의 신사 로데리고나 오셀로의 등장 이후 부관직을 놓친 이야고의 경우에는 더했다. 질투심 많은 이야고는 이 사태를 그냥 두고 보지 않으려 했다. 그는 베니스의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여성이 ‘아랍 말과 교접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며 ‘음탕한 무어인’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여성을 빼앗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이야고는 흑인 장군 밑에서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진다고 생각되자 ‘지옥의 고통’을 느낄 정도로 화가 났다. 비천하고 유약한 이야고의 사정이다.

그렇다면 오셀로는 어떻게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얻었을까. 사실 이 과정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오셀로는 ‘일곱 살 힘이 붙은 후’부터 줄곧 전장을 전전하며 지냈다. 그래서 말투는 거칠고 매끄러운 문구를 잘 표현하지도 못한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만큼 교양과 매너가 출중하지 않았다.
오셀로는 산전수전 다양한 경험을 겪은 용사라 워낙 다사다난한 일이 많았다.

눈앞에서 성벽이 무너져 아슬아슬하게 탈출했던 일, 적군에게 속아 노예로 팔렸다가 구출된 일, 거대한 동굴들과 메마른 기암절벽 속에서 살아남은 일 등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을 겪었다. 데스데모나는 이 이야기에서 거대하고 숭고한 삶의 단면을 엿봤다. 하루는 오셀로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주 눈물을 보였다. 여기에서부터 둘의 사랑이 시작된다.

말 한마디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인간
데스데모나의 이런 기질은 베니스에서 일반적인 경우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낯선 세상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알고, 그 속에서 한 인간의 삶을 오롯이 상상할 수 있는 미덕을 가진 데스데모나에게 이런 결정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더욱이, 결혼 이후 전장에 나가야 하는 오셀로를 따라가겠다고 한것은 데스데모나에게는 당연했다.

하지만 오셀로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나지 않는다. 칼부림이 낭자한 전장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로 삶의 생기를 소진시키는 말(言)의 전장, 그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그 중심에 이야고가 있다. 이야고는 전쟁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협잡꾼이다. 이야고는 타인의 삶에 개입해서 그 삶을 몰락시키는 힘으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인물이다.

스스로 자기 기쁨을 생산하는 자가 아니라 타인의 기쁨을 빼앗는 데 힘을 발휘하는 자다. 이야고는 오셀로에게 모호한 문장을 흘리기 시작한다. “전 카시오가 데스데모나와 안면이 없다고 생각했죠”라든가 “사람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라는 말처럼 문맥을 알 수 없는 말을 오셀로에게 전한다.

그런데 오셀로에게 이런 어법은 익숙지 않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말이란 사실에 근거한 것이고 그 이면의 함의(含意) 같은 게 따로 있기 어려웠다. 오셀로는 이야고의 질척한 어법을 반복적으로 듣던 어느 날, 결국 이야고에게 “제발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해주게”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이야고는 끝내 분명하게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오셀로를 자극하는 것일 뿐 메시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야고는 심지어 데스데모나가 실수로 떨어뜨린 손수건을 가져다가 카시오 방에 놓은 후 이를 증거 삼아 오셀로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결국 오셀로는 이야고가 던진 덫에 걸리고 만다. 그래서 변함없이 사랑을 외치는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가 죽은 뒤 하녀의 통탄을 그제야 듣고 정신을 차리지만 이미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결하고 만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악한 이야고만 없었더라면, 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런 의심이나 한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사악한 이야고에 홀린 오셀로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하녀 에밀리아가 줄곧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실을 말했지만 의심만 하면서 제대로 듣지 않았고, 데스데모나가 끝까지 결백을 부르짖을 때에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전장에서 지켜야 할 단 한 사람임에도 말이다.

<오셀로>는 말에 홀린 두 명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다. 그 속에 사랑과 질투가 있다.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이야기 속에서 경험과 사실 사이에 놓인 오셀로의 삶 전체에 공감하고 상상하며 사랑을 했다. 이 사랑을 통해 오셀로의 삶은 더 진가를 발휘하게 됐다. 그러나 오셀로는 이야고의 이야기에 홀려 죽음을 결단했다. 데스데모나가 타인의 말과 말 사이에서 행간을 읽으며 오셀로의 삶의 맥락을 이해했다면, 오셀로는 말과 말 사이의 행간을 읽지 못한 채 말 그 자체에 홀렸다. 그러므로 말에 홀린 사람은 오셀로뿐일지도 모르겠다.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의심과 이간질이 난무하고, 데스데모나처럼 타인의 삶을 온전히 듣고 이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런 귀를 오셀로가 가졌다면 적어도 그 삶의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악의적인 말과 말,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지 몰랐던 사람들 속에서 오셀로의 사랑은 허약했다. 오셀로는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말의 전쟁터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박숙자 경기대 교양학부 조교수
일러스트 민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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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3-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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