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원망
RETIREMENT ● Longevity

[한경 머니 =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 석좌교수]

우리나라 백세인 조사 과정에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은 백세장수인의 남녀비가 절대 여성 위주였으며 백세까지 함께 산 부부가 극히 적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100세인데 부인이 90대 또는 80대 후반인 경우는 더러 만날 수 있었으며 이들의 부부관계도 주목할 대상이 됐다. 이러한 부부들은 보통 60, 70년을 함께 살아왔다. 당연히 그토록 오래 함께 살아왔으니 이들의 부부관계는 따뜻하고 편안하게 살아왔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만난 몇 부부의 경우 너무도 뜻밖의 현실을 보여 주었다.

강원도 속초에서의 백세인 조사를 마치고 미시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들어서서 산기슭에 사는 백세인 부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후 월남해 지금 부인과 재혼했고 이후 사업이 승승장구해 젊은 시절 한 몫 하면서 사신 듯했다. 지금은 막내아들 내외가 모시고 있었다. 백세가 되셨지만 지금도 건강하셔 논에도 나가고 장작도 팰 정도의 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인터뷰하는 내내 함께한 할머니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영감님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봇물 쏟아지듯 불만과 투정을 토로했다. “저 영감 지겨워.” 첫마디부터가 심각했다. 실은 영감이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젊은 시절 춤바람이 나서 바람 꽤나 피었던 과거사에 대한 원한이 가슴속 깊이 맺혀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에는 할아버지가 실금으로 소변 실수가 잦는데도 내복 빨래를 할머니가 챙기지 않고 막내며느리가 하고 있었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듣기 싫어 다른 방 쓴 지 오래됐으며, 남편의 모든 것이 더러워서 상대하기 싫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뱉는 소리가 “더러워서 질투도 안 했어”였다. 50년 넘게 살아왔고 할아버지의 과거 행적도 40, 50년이 지난 일인데도 할머니의 뇌리에는 영감이 바람을 피웠다는 상처가 골수에 맺혀 있었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면으로 들어서서 여든이 넘어 시각장애자가 된 백세인을 찾았다. 기골이 장대하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했다. 젊은 시절 팔팔했고 바깥일도 열심히 했다고 자신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분에게는 부인이 두 사람이었다. 본부인은 2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들이 모두 죽자, 남편이 스무 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 젊은 첩을 들여 아들을 보았다고 했다. 이후 작은 부인에게서 난 자식을 큰 부인이 자신의 아들로 입적하고 작은 부인은 얼씬도 못하게 해 아직도 그 아들은 본부인을 친어머니로 알고 있었다. 본부인은 한 지붕에서 30년 넘게 같이 살면서도 작은 부인에게 영감은 뺏겼지만, 집안을 관리하고 아들을 차지했다는 것으로 자위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하면서 할머니에게 남편에 대한 생각을 묻자마자 폭풍우 몰아치듯 비방을 쏟아냈다. 남편에 대한 여자의 증오가 이렇게나 심할 수가 있을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욕설과 증오의 말들을 내뱉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들렸던 표현은 “눈 다친 것 벌 받아서 그래”였다. 남편이 시각을 잃어 고생하는 것마저 남편이 바람 피워 첩을 들인 것에 대한 당연한 귀결로 생각할 정도로 원한이 가득 차 있었다.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에 기인인 장수인이 계신다기에 찾았다. 이 어르신은 우선 백세인답지 않게 팔팔하기가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지금도 팔 굽혀 펴기를 100번 정도 거뜬히 하신다고 자랑했다. 그분은 젊은 시절 그 지방에서는 이름께나 알려진 풍수꾼이었다. 풍수 잡기 위해 전국을 누볐고,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도 다 다녔노라고 자랑했다. 백세인 조사를 하면서 부부인 경우는 기념으로 부부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의 관례였다. 그래서 당연하게 할아버지 내외분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함께 앉으시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나 저 영감하고 사진 못 찍어” 하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마침 아랫동네 살고 있는 따님이 와 있어서 따님에게 부탁을 했더니 “두 사람 함께 사진 안 찍을 걸요”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의외의 일에 놀라서 할머니께 여쭈었다. 답은 엉뚱했다. “저 영감은 처음부터 내게 거짓말만 했어”라는 것이었다. 사연인즉 할머니와 결혼할 때 할아버지는 자신의 실제 나이가 서른인데 스물이라고 열 살을 속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은 할아버지가 풍수를 잡는다고 전국을 다니느라 한번 나가면 보통 반년이나 1년쯤 지나 돌아왔다가 다시 휙 떠나 버렸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가 다른 여자들과 관계가 있었고 그때마다 거짓말로 둘러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70년을 함께 산 부부지만 남편은 거짓말쟁이고 바람피우는 사람이라는 것이 할머니의 뇌리에 새겨져 가슴에 깊은 상처와 원한을 남겨둔 것이다. 그래서 백 살 나이에 이르렀는데도 사진 한 장도 같이 찍고 싶지 않을 만큼 원한이 가득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지만, 백세가 돼서도 아직도 그런 한이 가득한 부부들을 만나면서 가슴이 섬뜩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젊어서 한때 바람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는커녕 한과 증오를 가슴에 새겨 놓은 채로 백 살이 넘게 살아야 한다는 게 바로 지옥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여자의 질투가 무섭기로는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 이야기가 절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영웅들로 구성한 아르고원정대를 이끌고 황금양피를 찾아 콜키스 왕국에 간 이아손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 왕의 딸인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임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결혼해 자식을 둘이나 낳았다. 그러나 나중에 이아손이 코린토스 공주 글라우케를 사랑하게 되자, 분노한 메데이아는 글라우케도 죽여 버렸지만,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난 자신의 두 아들마저도 죽여 버리는 무서운 모정을 가진 마녀였다. 이러한 메데이아의 질투, 그리고 저주는 여성이 남성에게 품은 원한의 극심한 사례이지만 이런 신화의 존재는 여자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나게 표현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신화의 엄정함을 우리 백세인 가족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충격이었다. 젊었을 적 한때 바람피웠던 일을 평생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여인의 한도 한이지만 백 살이 되도록 처절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부부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일까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