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박은영 문학박사·서울하우스 편집장]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격언이 있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이면 생각나는 말이다. 그 격언은 본래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에 나오는 구절이다.

무지개는 비가 오고 난 하늘에 잠시 색동의 아치형을 그리고 사라지는 자연의 오묘한 작용이다. 햇빛이 공기 속에 떠다니는 물방울들에 부딪혀 굴절하면서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으로 분산돼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학적 원리를 알고 있어도 궂은비 끝에 뜻밖에 무지개를 만나면 여전히 신기하고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때론 아련한 어릴 적 기억이나 먼 세계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존 에버렛 밀레이, 눈먼 소녀, 1856년, 버밍햄 미술관
존 에버렛 밀레이, 눈먼 소녀, 1856년, 버밍햄 미술관
무지개에 비친 동심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하늘의 무지개를 보고 어려서 가슴이 뛰었듯이 지금도 그렇다고 고백하며 늙어서도 그러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설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이 어른이 돼도 경건함으로 이어지니 아이는 어른을 키운 ‘아버지’라는 것이다. 무지개는 이처럼 순진했던 동심을 일깨우는 대자연의 선물이다.
무지개에 비친 동심을 묘사한 그림으로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눈먼 소녀>가 있다. 황금빛 가득한 초원의 실개천가 둔덕에 두 소녀가 바싹 붙어 앉아 있다. 언니로 보이는 눈먼 소녀는 아코디언을 무릎에 올려놓고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겨우 보자기를 둘러쓴 채 이들은 들판에서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았을 것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아코디언 연주로 생계를 꾸려 가는 자매의 궁핍한 삶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들 뒤에는 밝은 풀밭이 넓게 펼쳐져 새들이 즐겁게 노닐고 소와 염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어두운 하늘은 쌍무지개를 띄우며 점차 밝아지고 있다. 두 개의 무지개가 두 소녀의 머리 바로 위쪽에서 나란히 피어올라 마치 자매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어린 동생은 언니에게 기댄 채 몸을 돌려 신기한 듯 무지개를 바라본다.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잊고 무지개에 마음을 뺏기는 것처럼, 무지개는 자매가 각박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보여 준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희망이 시작되는 것이다.

존 컨스터블, 목초지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 1831년, 테이트 갤러리
존 컨스터블, 목초지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 1831년, 테이트 갤러리
자연에 기록한 신성한 징표

성경에 나오는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 때 하느님이 인간에게 보여준 화해와 평화의 징표다. 하느님은 타락한 인간 세상을 지독한 홍수로 쓸어 버린 뒤,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무지개를 세운다. 그래서 무지개는 시련 후의 위로나 희망,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자연과 종교가 결합된 무지개의 표현은 워즈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낭만주의 풍경화가들의 그림에 자주 나타난다. 특히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걸작 <목초지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에서 무지개는 두렵고 웅대한 자연으로부터 구원과 희망으로 나아가는 전환의 매개체다. 그림에는 이제 막 구름이 걷혀 가는 하늘과 함께 물에 젖은 초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무성한 잎을 흔들며 쓰러질 듯 서 있는 키 큰 나무들, 연약한 싹을 틔우는 고목, 무너져 내린 울타리, 잡목 속의 오두막 등 모두가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비가 개자마자 사람과 가축들이 밖으로 나와 일과를 다시 시작한다. 풍경의 중심에는 중세의 고딕 성당이 견고하게 서 있다. 먼 지평선에서 무지개가 하늘 높이 뚜렷한 호를 그리며 상승해 대성당을 감싼다. 무지개 근처에는 아직 먹구름이 몰려 있지만 첨탑 꼭대기 주위로 구름이 열리며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이 그림은 컨스터블의 아내가 사망한 후 그린 것으로, 황량해 보이는 풍경과 휘몰아가는 비구름이 화가의 슬프고 우울한 심정을 대변한다. 그러나 세월의 풍상을 견딘 고목 밑에서 사람들이 마차를 몰고 나룻배를 띄우듯이 일상은 계속해서 묵묵히 진행된다. 컨스터블은 무지개를 그려 좌절을 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자 했다. 대성당과 결합해 밝은 빛을 돌려주는 무지개는 먼 옛날 신이 보여 준 평화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죽은 영혼에게는 구원을, 산 사람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줄 신성한 약속의 표시다.

바실리 칸딘스키, 코사크인, 1910~1911년,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미술관
바실리 칸딘스키, 코사크인, 1910~1911년,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미술관
양극을 잇는 화해의 다리

아치 모양의 무지개는 분리된 양극을 다리처럼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추상미술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에 무지개를 도입했다. 무지개가 있는 <코사크인>이라는 작품은 1905년 러시아 혁명 때 모스크바에 들어오는 코사크인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흑백과 원색 위주로 구성된 반추상적 화면에서 몇 가지 알아볼 수 있는 형상들을 찾을 수 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는 붉은 모자를 쓴 세 명의 코사크인이 창과 칼을 들고 걸어가며, 왼쪽 위에서는 하얀 말을 탄 코사크인 두 명이 칼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다. 당시 차르 정부는 혁명을 진압하고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코사크족 용병을 이용했다. 격돌하는 기마병들 밑에는 아치형 무지개가 양편에 걸쳐 놓여 있다. 대립하는 두 세계가 압제와 투쟁을 끝내고 화해로써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흩어진 검은 선들처럼 극심한 혼란에 빠진 사회는 빨강, 노랑, 초록, 파랑으로 단순 명료해진 우아한 원색의 띠에 의해 균형과 조화를 회복한다. 칸딘스키의 반추상 회화에서 무지개는 이전처럼 화해, 평화, 희망을 상징하며 한편으론 회화 형식을 구성하는 점, 선, 면, 색채의 기본 요소를 강조한다.
19세기 시인 워즈워스는 무지개를 보고 일생 동안 변치 않을 본연의 경건한 심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20세기 화가 칸딘스키는 무지개로부터 회화를 구성하는 근본 요소를 도출하고 사회를 움직일 근원적 잠재력을 탐색했다. 예술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화가에게 필요했던 것은 결국 무지개에 비친 순진한 동심처럼 관례와 편견에 오염되지 않은 열린 눈과 마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