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위한 주택 개조 '유니버설 디자인'
ETIREMENT ● Second Life Essay

[한경 머니 = 우재룡 한국은퇴연구소장]

노후생활의 핵심은 내가 거주하는 지역과 공동체에서 가능하면 오랫동안 살아간다는 점에 있다. 내 집에서 나이 들기가 성공하려면 집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개조해야 하는데 이런 개념으로 집을 개조하는 것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 한다.

수년 전 미국에 사는 한국인 교포 부부로부터 ‘특별한 집’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이 집에는 거실에 있는 등을 켜는 스위치가 세 군데나 있어서 이곳저곳에서 켜거나 끌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또 부엌에서 뒷문으로 나가는 통로가 계단이 아닌 경사로로 돼 있고 욕실과 거실 등 출입구마다 문턱이 없었다.

처음에는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내를 알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고 한다. 전에 살던 미국인 노부부가 노후생활을 하면서 고령자에게 맞도록 집을 오랫동안 고쳐 왔던 것이다.

나이가 많이 들면 거동이 불편해진다. 우리나라 중장년들은 이때를 대비해서 병원 근처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는 건강한데 아플 때를 기다리며 지루하게 병원 근처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선진국에서는 노인들이 어디서 생애 말기를 보낼까? 우리나라처럼 몸이 불편해지면 요양원으로 가든지 자녀들에게 신세를 질까? 미국, 일본, 유럽을 가보면 이렇게 막연하게 노후를 맞이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내 집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 정든 공동체를 곁에 두고 독립적으로 멋지게 살아간다. 이런 개념을 ‘내 집에서 나이 들기’라고 하며, 영어로는 ‘Aging In Place(AIP)’라고 한다.

내 집을 ‘평생주택’으로 만들기

고령자를 위한 주택 개조는 아직 국내에 보급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고령화 준비는 허술하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낙상사고를 당하는 화장실에 미끄럼 방지 장치를 해야 하며, 휠체어를 타고 집 안에서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 출입문을 넓혀야 한다. 이런 개념으로 집을 개조하는 것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하며, 쉬운 말로는 ‘문턱 없애기(barrier free)’라고도 한다.

본래 장애의 유무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포괄적인 개념에서 유래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고령자가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생활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대한주거학회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고령자를 위한 주택 개조는 고령자 자신뿐만 아니라 부양가족에게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노후생활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법들을 적용하면 된다.
첫째, 휠체어를 타고서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주방을 개조해야 한다. 부주의로 폭발 가능성이 높은 가스레인지를 없애고 전기 인덕션을 설치하고, 모든 그릇은 싱크대 밑에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노인들이 가장 많이 낙상사고를 당하는 화장실과 욕실을 안전한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 출입문은 미닫이형으로 변경해야 하며, 미끄럽지 않은 바닥재를 깔고, 변기 주위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지지대를 여러 개 설치해야 한다. 휠체어나 의자에 앉아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욕조를 없애고 샤워부스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집의 복도, 출입문, 계단 등을 개조해야 한다. 집의 출입문 안팎에 있는 계단을 경사로로 변경해야 하며, 집에 있는 모든 문턱을 없애서 휠체어를 타고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출입문의 너비를 가능하면 확장해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하면 좋다.
넷째,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서 만든 생활용품을 곳곳에 배치한다. 가볍게 뽑을 수 있는 전기 플러그, 색깔로 구분되는 터치형 전기 스위치, 가볍고 편리한 식사도구 등의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여러 출입문에 붙어 있는 돌리기 어려운 출입문의 둥근 손잡이를 레버형이나 막대형 손잡이로 교체해야 한다.

다섯째, 간병도구 역시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만든 것을 활용한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침대, 쉽게 일어설 수 있도록 기중기가 장착된 휠체어, 출입문이 달려 있는 욕조 등을 사용하면 간병기를 좀 더 쉽게 보낼 수 있다.

여섯째, 스마트홈 기술을 적용하면 생활이 안전하고 편리해진다. 집 안 곳곳에 비상호출기를 설치하고, 각종 전자제품을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용 빈도가 높은 냉장고, TV, 전기주전자 등에는 센스를 부착해서 가족들이나 간병인들이 집 안팎에서 사용 여부를 점검할 수 있도록 하면 고령자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전달 받을 수 있어서 안심된다.

일곱째, 조명의 수를 늘리고 창문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많은 조명이 필요하다. 더 많은 창문을 추가해 자연광을 최대한 집 안으로 많이 들어오게 하는 개조는 필수다. 또한 캐비닛과 계단 등에 더 많은 조명기구를 설치하고 여러 곳에 조명 스위치를 추가하는 것도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주거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도심에 있는 자신의 집을 리모델링해 실버타운 못지않게 안락하게 만들고, 주택연금을 사용해서 오랫동안 지내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실버타운이나 타운하우스같이 노인들이 대규모로 모여 사는 주거시설은 큰 인기를 얻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나이가 많이 들더라도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집 구조가 꾸며져 있는 ‘평생주택’의 개념이 중요해진다. 평생주택은 연령이나 건강 단계별로 다양한 용도를 가진다. 은퇴 후 삶의 단계는 활동기, 회고기, 남편 간병기, 부인 홀로 생존기, 부인 간병기라는 5단계를 거치면서 변화한다.

이런 은퇴생활의 단계별로 주택이 가지는 의미 역시 함께 변화한다. 예를 들어 대략 50대에서 80대 초반이나 중반까지의 건강한 시기에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은 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몸이 불편해지는 80대 후반의 간병기에는 간병 활동에 불편하지 않은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개조된 주거시설이 필요해진다. 내 집을 평생주택으로 만든다는 것은 이처럼 집의 설비, 가족과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가능해진다.

누구나 요양시설보다는 내 집에서 가능하면 오랫동안 지내길 원한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내 집을 요양원이나 실버타운 못지않게 변경하면 된다. 단순하게 집을 리모델링하기보다는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적용해보자.

우재룡 소장은… 국내 은퇴 설계 대중화에 기여한 은퇴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은퇴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수천 명의 은퇴자를 컨설팅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무설계 무작정 따라하기>, <긴 인생 당당한 노후 펀드투자와 동행하라>, <오늘부터 준비하는 행복한 100년 플랜>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