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곡에 일군 천 년 차밭 자연과 공존해 온 삶터

제주나 보성의 녹차밭과 비교할 때 하동 전통 차밭은 산속에 몽실몽실 피어 있는 형태를 가진다.
제주나 보성의 녹차밭과 비교할 때 하동 전통 차밭은 산속에 몽실몽실 피어 있는 형태를 가진다.
[Farm Report=하동 전통차농업]

아침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섬진강가에 섰다. 고요한 마을 뒤로 물기를 머금은 초록빛이 반짝인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서니, 몽실몽실 구름처럼 퍼져 있는 자연형 차밭이 드러났다. 산기슭에 핀 차밭이다. 굴곡진 지리산에 야생처럼 자라 있는 차나무와 커다란 돌, 밤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세계가 인정한 전통 차 군락지의 진면목을 맞닥뜨리는 순간이었다.
[하동=한경 머니 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서울에서 버스로 약 4시간, 경남 하동군 화개면은 지리산 줄기를 따라 마을을 이루고 있다.지역 전체가 해발 100~1000m의 산지인 전통 수제 차 생산 지역이다. 2017년 11월 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를 맞았다. 공식 명칭은 하동 전통차농업.

그 유명한 화개장터에서 섬진강을 왼쪽으로 끼고 올라가면 차 재배의 핵심 지역에 이른다. 하동군은 13개의 읍면 전역에서 차 재배가 이뤄지는데, 그중에서도 이곳 북서부에 있는 화개면이 전체 녹차 생산량의 87.8%를 차지한다.

중국의 푸얼 전통차농업, 재스민과 차문화, 일본의 시즈오카 차농업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차 관련 농업유산으로 선정된 하동 전통차농업의 가치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역사성, 농업 경관, 생물 다양성, 차 문화 등이다. 가장 큰 차이는 ‘공존’이라는 키워드에 담겨 있다.

소규모 농가들이 일궈 온 일터이자 삶터

가파른 산비탈에 일군 차밭은 그 자체로 역경 속에 피어올린 꽃이다. 면적의 93%가 산지다. 화개 사람들은 화개천 협곡의 경사지를 중심으로 차농업 문화를 일궈 왔다. 그 세월이 무려 1200여 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차밭의 이미지는 드넓은 평지 위에 펼쳐질 것이다. 혹은 푸른빛의 계단식 녹차밭이 자연경관으로 미적 가치를 지닐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화개의 차밭은 다소 투박하거나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

화개천 양쪽으로 옹기종기 모인 주거지와 인근의 전통 차밭이 함께 존재하는 형태는 제주나 전남 보성과는 다른 풍경이다. 하나의 지역공동체로서 땅을 기반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 모습이다. 소수의 부농이 아닌 다수의 농가들, 가족 단위로 차 재배와 생산이 이뤄지기에 그렇다.

1000년 이상 그 땅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생계를 해결하고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자연과 상호작용했던 일터이자 삶터인 것이다. 보이는 풍경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 삶의 흔적이 그득하다.

하동 전통차농업의 가치는 첫 장, 첫 줄의 흥미를 끄는 매력보다 이곳만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정체성의 이야기에 눈을 뜨는 데서 발견된다. 험준한 산지에 차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는 이유, 차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농사가 지속됐던 이유, 명맥이 끊길 뻔한 위기에서 다시 만개한 이유는 뭘까.

농업유산으로 지정된 7곳(청산도 구들장논, 제주 밭담, 구례 산수유농업, 담양 대나무밭, 금산 인삼농업, 하동 전통차농업, 울진 금강송 산지농업)은 지역과 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에 인간이 각고의 노력으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개척해 온 삶의 공간으로 대체되거나 없어지지 않고 유지돼 왔다. 또 사람이 사는 한 앞으로도 지속될 곳들이다.

세월 속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멈추고 새로 생겨나는 동안 유구하게 제자리를 지켜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력이다.
하동 전통차농업 시스템은 화개천에서 주거지, 전통 차밭, 지리산 산림부로 연결되는 순환 체계를 갖는다. 산림이 찬바람을 막고 맑은 화개천이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하동 전통차농업 시스템은 화개천에서 주거지, 전통 차밭, 지리산 산림부로 연결되는 순환 체계를 갖는다. 산림이 찬바람을 막고 맑은 화개천이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화개면 정금마을에는 관광객을 배려한 수려한 차밭 풍경을 조성했다.
화개면 정금마을에는 관광객을 배려한 수려한 차밭 풍경을 조성했다.
이곳 차밭의 특징은 차나무가 크고 작은 바위와 밤나무, 감나무, 매화나무 등의 유실수, 고사리 같은 임산물과 함께 어우러지는 점이다. 어떤 나무와 공존하느냐에 따라 차의 향이 달라진다. 농민들은 부족한 경작지 탓에 바위 틈에 차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수분 조절이 잘돼 차 맛이 으뜸이다.
이곳 차밭의 특징은 차나무가 크고 작은 바위와 밤나무, 감나무, 매화나무 등의 유실수, 고사리 같은 임산물과 함께 어우러지는 점이다. 어떤 나무와 공존하느냐에 따라 차의 향이 달라진다. 농민들은 부족한 경작지 탓에 바위 틈에 차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수분 조절이 잘돼 차 맛이 으뜸이다.
생계 수단에서 ‘사명감’으로
“저는 이곳에 심더라도 계단식 차밭처럼 만들진 않을 거예요. 옹기종기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지게 하는 게 이곳만의 차별화된 장점이고, 또 미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전통 차밭을 운영하는 홍만수 비주제다 대표는 산자락에 심겨진 차나무를 보며 말했다.

일찍이 이곳 주문들은 인위적인 차밭 관리를 최소화하고 자연 상태 그대로의 찻잎을 따 왔다. 보통 자생차나무는 산비탈에 위치해 있어 기계를 이용한 찻잎 수확이 힘들다. 현재까지도 채다(採茶)는 사람에 의해 한 잎씩 손으로 찻잎을 따서 모으는 전통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화개의 차밭은 크게 두 개의 형태로 이뤄져 있다. 산 속에 있는 자연형 차밭에서 평지의 논과 밭에 조성한 차밭이다. 자연형 차밭이 전통 수제 차로 역사성을 간직한다면, 2000년대 이후부터는 차농업 확산과 함께 주변 마을의 평평한 경작지를 차밭으로 전환한 평지 차밭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주로 평지 차밭에서는 녹차 티백을 만든다.

홍 대표가 자연형 차밭을 조성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는 제대로 된 고품질의 차를 생산하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서다. “수확량은 좀 적더라도 직접 손으로 따서 만든 수제 차로 화계 고유의 야생차를 생산하고 싶다”는 것이다.

“제가 1991년부터 차를 했거든요. 이 차밭은 100년이 넘은 건데 7년 전에 동네 분에게 샀어요. 계획 관리 지역이라서 안 샀으면 펜션으로 바뀔 뻔 했어요. 당시 모아놓은 돈 하나 없이 차밭을 샀는데 지금은 참 잘 샀다 싶어요. 쉰 살이 넘으니까 차나무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함으로 저한테 다가오는 거예요.”

홍 대표는 차밭을 후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이라고 했다. 문화적인 혜택일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 나갈 때의 경쟁력은 전통 차농업의 역사성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다. 2007년 농약 파동으로 하동의 차 산업이 휘청할 때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차밭을 지키고 유지해 온 농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그 형태를 지킬 수 있었다.

화개제다를 운영하는 홍소술 회장은 60년 세월을 차 인생 한 길을 걸어온 차 명인이다. 스물여덟 살에 처음 차를 시작해 어느덧 8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가 되기까지 인생을 바친 차다. 그는 “차는 곧 ‘나 자신’이다”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치르며 한때 차농업은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산 속에 밤나무, 감나무를 심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던 시절이다. 이때의 차나무는 아이들을 위한 ‘약재’로 쓰였다. 밤나무를 심지 못하는 바위와 돌 틈에 차 씨앗을 뿌려 기호식품이자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다.

홍 명인은 당시 집집마다 소규모로 키우던 차나무를 한데 모아 가공하기 시작했다. 찻잎을 가마솥에 덖어 상품으로 판매하면서 전국 단위의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농가마다 소규모 다원을 운영하며, 재배와 가공을 한곳에서 담당하는 생산 형태가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홍 명인 이외에도 화개에는 김동곤 쌍계제다 명인을 비롯해 세 명의 차 명인이 존재한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다원이 수백 개에 이른다. 농민 한 명 한 명이 차 기술자이면서 장인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화개 차밭의 큰 경쟁력이다. 뜨거운 가마솥에 손을 넣어 아홉 번 차를 덖어내는 ‘구증 구포’는 이들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다. 1년에 딱 한 번, 4월 중순 차의 첫 잎을 따는 시기에 농가마다 자신의 노하우를 가진 차를 만들어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화개 지역에는 유난히 불교문화가 융성했다. 사찰과 승려가 많았던 사하촌으로 ‘지리산 불교’라 불릴 정도였다. 근현대 이전까지 화개면과 인근의 차밭을 주로 사찰에서 관리했고, 하동 전통 차는 스님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현재까지도 쌍계사와 칠불사 등 절터 주변에는 자생 차밭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스님과 화개 주민들은 함께 차밭을 재배해 하동 지역만의 차농업 지식 체계를 공유, 전승해 왔다. 이처럼 불교문화가 번성했던 지역 구조는 지역 내에서 자생 차밭을 지속시키고 수제 차를 만드는 전통을 이어나가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100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차의 재배나 가공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차 문화와 산업도 시대마다 다른 옷을 입었다. 그 가운데 변하지 않은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공존이라는 하동 차밭의 정신이다.

공존은 야생의 형태로 이곳 차밭이 오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중요한 비결이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해 자연과 공생하는 자연친화적 농업 시스템으로 토지를 관리하면서다. 화개 주민들은 인공적인 비료를 이용해 토양과 차나무를 관리하지 않는다. 참나무 부속물, 도라지 등을 이용해 ‘풀비배’(차밭 관리를 위해 풀을 직접 뽑아 거름을 대신함)를 한다.

나무 하나 바위 하나도 함부로 없애지 않았다. 중국, 일본과 다르게 바위와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경관적으로도 조화롭지만, 실제 차나무의 품질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위틈에 자란 차나무는 물이 잘 빠지는 까닭에 더욱 잘 자라는 효과가 있다.

주민 협력 공동체인 ‘품앗이단’도 공존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전통차농업 보전 활동이다. 사람이 손수 찻잎을 따야 하는 농법의 특성상 주민 협력 공동체인 품앗이단을 구성해 인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전통 방식의 차농법을 유지해 왔다. 오늘날에 이르러 품앗이단은 차 산업과 연계해 지역 단위의 공동 생산, 공동관리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공존의 정신은 모든 농업유산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백승석 한국농어촌공사 과장은 “식량의 가치를 뛰어넘어 생태나 문화로 그 지역에 파생된다는 점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 가치관이 아니라 동식물과 인간과 문화와 경관이 함께 공생한다는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생하지 않으면 유산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며 “이것은 미래 유산으로서 후대에까지 기능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라고 강조했다.
홍소술 화개제다 명인은 스물여덟 살에 처음 차를 시작해 8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가 되기까지 차에 인생을 바쳤다. 그는 "차는 곧 '나 자신'이다"라고 말한다.
홍소술 화개제다 명인은 스물여덟 살에 처음 차를 시작해 8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가 되기까지 차에 인생을 바쳤다. 그는 "차는 곧 '나 자신'이다"라고 말한다.
쌍계사와 칠불사 두 사찰은 화개 주민들에게 차 문화와 지식 체계를 공유하는 역할을 했다. 사진은 도응 칠불사 주지 스님이 사찰의 차밭을 돌보는 모습.
쌍계사와 칠불사 두 사찰은 화개 주민들에게 차 문화와 지식 체계를 공유하는 역할을 했다. 사진은 도응 칠불사 주지 스님이 사찰의 차밭을 돌보는 모습.
경사지 전통 차밭에서 차를 수확하는 모습. 4월이 되면 1년에 딱 한 번 첫 잎을 따 덖음차인 우전을 만든다. (사진 제공-하동시)
경사지 전통 차밭에서 차를 수확하는 모습. 4월이 되면 1년에 딱 한 번 첫 잎을 따 덖음차인 우전을 만든다. (사진 제공-하동시)
사람과 땅, 농업유산 2- 하동 전통차농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