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53호 (2018년 02월)

사람과 땅, 농업유산 3 - 제주 밭담

‘밭담’이 곧 ‘돌의 섬’ 제주의 역사

[Farm Report]
[제주=한경 머니 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층층이 쌓여 있는 돌들은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다. 외롭지 않게 서로 엉겨 붙어 얼마나 지난한 세월을 견뎌 왔을까. 캔버스에 담긴 하나의 풍경으로서 검고 거친 현무암이 서 있는 듯했다. 해질 무렵의 붉은 태양이 내리쬔 땅에 인적은 드물고 트랙터 소리, 개 짓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돌무더기에 기댄 풀과 나뭇잎이 잔잔히 흔들렸다. 돌, 바람, 오름이 있는 땅. 제주에서 ‘반전의 역사’를 만났다.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화산섬, 제주도에는 ‘흑룡만리(黑龍萬里)’가 있다. 이름에서부터 위용이 느껴지는 ‘흑룡만리’의 정체는 들녘을 가득 채운 제주 밭담이다. 2만2000km가 넘는 긴 길이가 흑룡의 검은색 외양을 닮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검은색 현무암 밭담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만 리가 된 사연이다.

제주 밭담은 ‘힐링의 제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미감이다. 제주공항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스쳐지나 버린 그 풍경 속에 진흙 속 진주와 같은 존재가 숨어 있다. 흙과 작물, 밭과 돌들의 이야기. 유채꽃으로 물든 제주의 경관이 아닌, 밭에 심긴 초록 작물에 단아하고 편안한 멋이 있다. 

오름에 올라 내려다본 제주 밭담의 풍경. ‘흑룡만리’의 밭담이 제주 전역에 퍼져 있다. 그 속에 천 년 세월의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빚은 세계유산
땅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모자이크를 닮아 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맞닿은 모습엔 삶의 궤적이 녹아 있다. 사람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기반이자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땅이다. 땅의 형태는 나름대로 특징을 담아 그곳의 문화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인(sign) 역할을 한다. 흑룡만리, 제주도 땅은 무엇을 담고 있는 걸까.

제주시 서귀포 시흥리 두산봉에 올랐다. 산과 바람과 하늘,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밭이 있는 풍경이다. 동틀 무렵의 안개에 휩싸인 땅은 바다까지 뻗어 있다. 흑색과 흙색이 조화를 이루고, 곡선 형태로 구불구불 이어진 모습이다. 밭담과 작물이 한데 어우러져 섬 전체를 수놓은 농업 경관이 으뜸으로 꼽힌다.

특이한 것은 크고 작은 밭은 여러 개인데,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돌로 쌓은 밭의 담, 밭담은 일종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필지의 블록들이 밭담을 기준으로 나뉘어져 있다. 농사를 지으려면 각각의 밭에는 기계(소나 말)나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길이 필요하고, 안쪽에 위치한 밭담은 길이 없는 맹지에 해당한다. 그런데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농사짓는 사람에겐 맹지는 없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가까이서 바라보면 밭담 모서리에 담을 허물어 길을 터준 흔적이 있다. 또 도로에 인접한 밭에서 안쪽 밭으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밭담을 두 줄로 쌓은 ‘잣담(잣길)’이 특징이다. 보통의 경우 ‘밭두렁 논두렁’이 있지만 제주도는 두렁 자체를 만들 수 있는 흙이 없어 돌을 양쪽으로 쌓아 길을 냈다. “오늘날은 길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사거나 보상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잣길을 만들어 서로 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백승석 한국농어촌공사 과장) 잣담은 땅을 매개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인이자, 팍팍하지 않았던 인심, 즉 마음의 여유가 만들어낸 배려의 길이다. 

이 밖에도 밭담은 쌓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한 줄로 쌓은 담이자 가장 대표적인 ‘외담’, 아랫부분에는 작은 돌을, 윗부분에 큰 돌을 올려놓은 ‘잡굽담’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큰 돌을 아래에 놓는 것과 반대로 쌓는 잡굽담은 개간한 농지에서 연접한 땅과의 높낮이 때문에 생기는 토양의 유실을 방지하려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밭담은 특정 장인이 쌓은 것들이 아니다. 오랜 경험으로 터득해 대를 이어 만들어진 것들이다. 쉬워 보이지만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한다. 크고 작은 돌을 적절히 골라내서 돌들이 서로 이가 맞도록 엇갈리게 쌓아야 하고, 맞다 싶으면 세차게 내려 눌러주는 감각도 필요하다.

“당연히 쌓은 기억이 나죠. 농사지으면서 돌이 엄청 나왔어요. 없애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조상 대대로 밭을 갈고 돌을 쌓고 후손이 나오면 또 올려요. 수백 년에 걸친 밭담이라. 할아버지도 쌓고 손자도 쌓고, 바람을 막는 역할이 컸지만 치워야 해서 쌓았어요.”(24대째 제주에 사는 부석희 씨)

밭에 쌓으면 밭담, 집 울타리는 울담, 산에 쌓으면 산담이다. 마을 출입구엔 올레담을 쌓았고 여기서 올레길이 나왔다. 돌의 섬 제주도는 그래서 힘이 센 사람, 장수 신화도 꽤 많이 있다. 부 씨는 “전설에 얽힌 이야기가 비석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제를 지내는 풍습이 지금까지 유지돼 오고 있어요. 그게 우리 부씨”라며 “제주도의 돌과 돌로 쌓은 담은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정체성이다”라고 했다. 제주도의 재산인 돌, 그리고 오름, 바람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제주의 자연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제주 밭담은 제주도 밭농사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돌밭을 일군 개척정신, 밭담을 쌓아 농경에 활용하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밭담은 쌓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한 줄로 쌓은 외담이 가장 대표적인 형태다.

허술해 보여도 태풍에도 끄떡없다. 파풍 효과로 농사를 가능케 하고, 말의 침입을 막고 경계선으로 쓰이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돌의 섬 제주도는 지천에 돌이 널려 있다. 밭에 쌓으면 밭담, 산에 쌓으면 산담, 마을 출입구에선 올레담으로 통한다.


밭담, 왜 제주 전역에 있나
제주 밭담은 이렇듯 가족 단위로 자기 밭을 개간하면서 쌓아온 형태다. 천 년에 걸쳐 개인과 가족의 소규모 공동체가 오직 돌로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삶의 궤적이다. 소수의 지주가 다수의 종에게 시켜 만든 착취의 문화가 아닌 민초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로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인정받았다.

그 자체로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농업 시스템(시설)이자 전통 농법으로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현장으로서의 의미도 있다. 해외의 유산과 비교할 때 아일랜드나 보카주의 경관도 형태는 비슷하지만 형성된 기간이 짧고 쓰인 재료와 농업의 종류 등에서 차이가 난다. ‘흑룡만리 제주 밭담’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관이다.

만약 제주도에 밭담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밭담의 차별적 가치는 이와 같은 접근에서 나온다. “제주도의 농업이 없었을 것이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강승진 제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밭담의 핵심은 밭 농업을 일구고 지키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주도의 작물은 겨울 채소로 유명하다. 겨울에는 무와 당근,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심어 전국 각지로 배송한다. 제주 당근은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무는 40%, 브로콜리 70%, 양배추 45%, 가을감자 40%가 제주에서 생산된다.

과거 자급자족의 시절에는 보리나 조 등을 심었다. 밭담의 높이를 측정해보면 평균 1.5m에 서 그 이하로 조성돼 있는데, 작물이 자라는 높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보기엔 다소 허술해 보여도 알고 보면 경제 활동의 근간이었고, 가족들의 생계에 맞닿아 있는 생존과 생업의 공간인 것이다.

“어떤 분들은 그것으로 무슨 바람을 막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 높이로도 작물에는 이로운 영향을 주기 때문에 농사가 가능해요. 기본적으로 제주는 바람이 센데 강한 바람을 막아주면서 현무암의 파풍 효과에 의해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켜요. 바람구멍으로 스며든 적절한 바람은 작물의 생육을 도와줍니다.”(윤철원 제주도청 사무관)

시커먼 숲과 산에 인간이 개입해 지금과 같은 계단식·다랑이 논을 수백 년에 걸쳐 만든 게 다랑이 논의 역사라면, 제주의 밭담은 돌덩이로 가득한 황무지를 개간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1234년 토지 경계를 두고 다툼이 잦아지자 제주판관 김구가 경계용 돌담을 쌓도록 했다. 그러나 밭담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져 토양의 약 80%가 화산회토에 해당한다. 농사를 짓기에 척박한 환경이다. 탐라 시대 초기에는 섬의 일부 취락 주변부에서 농업 활동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구가 점차 증가하면서 중산지대로 확대되기 시작하고, 부득이 농사짓기 어려운 화산회토를 개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다에는 해산물이 있지만 해산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량의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밭이 있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좀 크게도 만들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바람에 의해서 화산회토가 다 날아가 버려요. 중간에 담을 만들어 놔야겠다는 지혜도 터득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돌을 쌓기 시작했겠죠.”(윤철원 제주도청 사무관) 밭담은 제주 농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일종의 혁명이었고, 밭담이 있는 한 농업은 계속될 것이다.

밭담이 제주 전역으로 퍼져 있다는 점, 그 형태가 불규칙적인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좀 더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밭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누가 어디서부터 개간을 시작했을까. 부의 차이가 밭담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까. “여기 살던 선조들은 다 만들었다고 봐야죠. 대를 이어가면서 만들었겠죠.”(백승석 한국농어촌공사 과장), “처음 제주도에 사람이 들어와 살았을 때는 다 주인 없는 땅이잖아요. 농작물을 재배해야겠다고 하면 식구 수에 따라 필요한 만큼 폐허를 개간했겠죠. 그때 나온 돌은 가까운 데 쌓으면서 하나의 밭이 만들어지고, 식구가 늘어나 또 필요하면 다시 일궜겠죠. 만약 특정 지주에 의해 개간됐다면 정방향으로 줄을 긋거나 넓게 만들지 불규칙적으로 만들진 않았을 것 같아요.”(이승재 사진기자)

제주도 전역에 걸쳐 모자이크의 복잡한 형태를 가진 데는 그만큼 많은 수가 참여해 가족 단위로 조금씩 일궈 나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농업을 기본 형태로 지역공동체가 만들어져 서로 협력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갔다. 또한 제주섬의 정주형(定住型) 방목 문화 또한 밭담의 제주 전역 확산을 가져온 요인으로 보인다. 강승진 연구위원은 “마소 방목이 마을별로 이뤄지면서 마소가 밭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한 목적에서 밭담이 확산됐을 것이다”라고 했다.

점차 농지를 넓혀 가는 과정에서, 많은 땅을 소유하게 됐어도 밭을 함부로 훼손하진 못했다. 규모의 집중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밭담을 허무는 게 효율적이지만 바람 때문에 헛수고였다. 큰 밭의 경우 중간에 바람막이용 담을 쌓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잡굽담도 땅의 높이 차이로 흙의 유실을 막기 위해 억척스럽게 작은 자갈을 아래에, 큰 돌을 위에 쌓은 것이다. ‘소유의 경계선’일 뿐이라면, 지금과 같은 흑룡만리의 모습을 간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능의 경계선’이기에 오늘날까지 유지돼 올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제주도가 해변 지역이라서 파도가 치면 바람에 의해 짠 물이 많이 날라 오고 그걸 막아주는 게 바로 담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초창기 해변 쪽에는 경제적으로 빈곤하거나 힘이 없는 이들이 많았다. “밭을 만들 때 아무래도 흙이 많은 쪽부터 일구기 시작하고 그때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외곽으로 넓혀 갔겠죠.”(윤철원 제주도청 사무관). 동서로 비교할 때는 동쪽이 서쪽보다 비옥도가 떨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척박했던 해안가는 오늘날 오히려 금싸라기 땅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역설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한 평의 땅을 늘리는 게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이대로라면 밭담은 줄어들 뿐, 더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지금 제주도는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유산의 소중한 정신인 ‘잣담 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어렸을 때는 20대가 되면 땅 하나, 집 하나를 가져야 한다고 배웠어요. 부모에서 물려받은 게 없어도 돈을 모아서 가장 먼저 자기 터를 갖춰야 한다는 목표로 일을 했고, 또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은 땅 가치가 너무 올라서 더 살 수가 없어요.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는 지어도 농사짓기 위해 땅을 사는 사람은 없어요. 돌을 지키는 게 중요한데 사람들이 돌담의 가치를 많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부석희 씨)

농민들에게 땅은 어떤 의미일까. “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족 노동력이 전부라서 주말에는 종일 밭에 나가 일을 했고 평일에도 조금 바쁘면 부모님이 학교 가지 말고 밭에 가라고 하셨어요. 제주도에서 공부를 잘해도 서울로 보내기가 쉽지 않을 만큼 돈이 없던 때예요. 어떻게든 열심히 일해서 내 땅을 사야 한다는 애착이 강했죠.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는 밭담 안에 선조들의 무덤이 있었어요. 한 마디로 땅은 생명줄이었죠.”(윤철원 제주도청 사무관)

제주 밭담을 비롯해 농업유산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급자족이 수월하게 이뤄진 곳은 오늘날 농업유산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황무지를 일굴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고생스럽고, 척박하고, 먹고 살기 힘들었던 땅에서 살기 위해 무언가를 이용하고 만들기 시작하면서 유산으로서의 첫 페이지가 열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준 유산이 세대의 유산이 되고, 세대의 유산이 시대의 유산이 되고, 시대의 유산이 역사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아마도 처음 개간을 하고 땅을 일궜던 사람들은 그것이 후대에 유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내 가족의 호구지책으로 매일 새벽을 깨웠을 뿐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작은 유산이 오늘날 세계의 유산이 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경제적 풍요로움은 있으나 정신적 빈곤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화려함도 트렌디한 감각도 없는 농업유산이 힘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안에 인생의 진리가 담긴 반전의 역사가 있기에 우리는 또 지켜야 할 이들을 위해 오늘의 험악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내재된 가치를 찾을 때 농업유산은 할머니의 뒷모습 같은 편안한 감동으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자연경관으로서 제주의 밭담은 작물과 밭담의 조화가 으뜸을 이룬다.

자연경관으로서 제주의 밭담은 작물과 밭담의 조화가 으뜸을 이룬다.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는 부석희 씨는 유기농 당근을 주로 재배한다. 그는 “농사짓는 사람은 땅을 갖는 욕심은 있어도 파는 데에는 욕심이 없다”며 “제주의 보물인 돌의 가치를 알고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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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2-0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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