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금산갤러리 개인전 장면.
2017 금산갤러리 개인전 장면.
LIFE & ●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마저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마저 작가의 작품엔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최근 작품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점은 입체적인 구성 방식이다. 가령 전혀 별개의 장르인 회화와 가구의 조합이다. 기존 회화 작품의 이미지나 패턴을 특별히 제작한 가구에 입혔는가 하면, 아예 액자를 가구 형식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구와 회화의 만남은 마저 작가만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그는 건축계에서 제법 이름난 실내건축·가구 디자이너로도 알려져 있다. 건축과 관련해 1000명의 네트워킹을 관리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그 방증이다.

“작업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에 화두를 지니고 다녀요. 과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는 거죠. 그렇게 찾은 주제의식은 마치 원자 같습니다. 몸에서는 아주 작은 세포 하나에 불과해 보이지만, 내 몸 수많은 곳에 퍼져 있죠. 그것을 타자의 입장에서 보고, 마치 남의 이야기를 늘어놓듯 작업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 활동이 하나의 작업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잘 이끌어내는 방식 같아요.”

마저 작가에게 회화와 가구는 둘의 장르 혹은 서로 다른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름을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키는 작가적 선택이다. 그는 그동안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줄곧 한 가지 주제와 메시지에 몰입해 왔다. 그것은 ‘삶에 대한 예리한 성찰’이다. 누구나 녹록지 않은 삶의 여정을 겪는다. 간혹 기쁨과 애환, 희망과 질곡의 변주에 울고 웃는다. 그 역시 그 애증의 삶에 대한 표정을 작품에 담은 것이다. 그 안엔 여러 이성의 폭력성, 페티시, 성(性)이나 젠더(gender), 관계성 등 삶에 대한 몸부림이 고스란히 스미어 있다.

최근 가구디자인을 혼용한 작업에선 전통적인 책가도를 활용해 흥미로움을 더한다. 그 책가도에 등장하는 가구적 요소의 공간성에 주목한다. 아마도 회화 기법을 가구의 치장용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화적 요소를 중점으로 접목한 가구를 선보인 역발상이 그만의 경쟁력을 높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두 영역의 협업이 완성도를 갖추기까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그는 가구를 제작하는 회사에 말단 직원으로 입사해 수년 만에 임원을 지냈을 정도로 치열한 자기계발의 과정을 거쳤다.

마저 작가의 작품 방식은 장르의 경계가 없다. 회화, 입체, 설치, 가구와의 컬래버레이션 등 쉼 없는 그의 창의적 도전은 현대미술이 지닌 고유의 생동감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유화(油畵)지만, 한국화 화법을 응용해 ‘겹겹이 쌓는 중첩 채색 기법’으로 완성한다. 미술대학의 학부와 석사에서 서양화와 한국화를 교차하며 학습한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특히 2차원적인 평면회화로 출발해 3D 미디어 영상 작품까지 영역을 확장한 점은 디지털 대세인 시류의 트렌드도 접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관계란 정해진 것이 굳어져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언제나 변화될 수 있을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살아 있는 것들이 만들어 가는 보이지 않는 생명체죠. 삶이란 결국 이런 관계가 생명력을 가지고 날아오를 수 있는 공간의 이완을 확보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분홍방, 캔버스에 유채, 130×72cm, 2017년
분홍방, 캔버스에 유채, 130×72cm, 2017년
마저 작가는 평소 ‘관계’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옛 민화의 까치와 호랑이처럼 ‘관계성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예도 드물 것이다. 단지 우열의 물리적 관계를 극복하고, 동등한 이상적 균형과 가치를 보여준 관계미학의 정수다. 이에 반해 인간은 끊임없이 우열과 계층을 나눠 서로 반목하며 갈등한다. 결국 평등이란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균형’의 결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의 그림의 메시지는 바로 그 연장선에 닿아 있다. 온갖 사회적 병폐와 억압의 무게를 이겨내고 상생의 지혜를 획득할 수 있는 대안을 보여준다.

단지 겉으론 전통 민화의 평면성을 3차원의 공간적 입체화로 재해석한 것이지만, 내재된 함축적 의미는 참 깊다. 이런 민화풍(民畵風)의 회화 방식은 ‘플라스틱 화조 민화’라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었다. 마치 진정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이미테이션 삶’을 직설적으로 꼬집고 있는 듯 예리한 감성을 지녔다. 처음엔 플라스틱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시작한 회화 형식이다. 또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선명하면서도 조화로운 색의 변주’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28세에 ‘삭발’을 하고 절에 들어가 단청을 그렸던 그의 경험도 한 몫 했을 것이다.

“20대 우연히 명상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면의 진정한 자아나 내재된 아름다움을 찾게 됐어요. 그래서 되도록 나를 스스로 관찰하고 타자화시켜보고자 노력합니다. 그런 과정이 곧 나와의 진정한 만남이며, 그 일련의 시간들이 곧 나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어요. 그런 면에서 지금의 작업 방식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결국 나다운 것을 찾는 것이 가장 큰 자신의 매력을 찾는 것입니다. 작가에게 있어 작품은 결국 자신의 여러 모습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닐까요?”

아마도 그에게 젊은 시절의 불교적 체험은 각별한 계기가 됐을 것이다. 지금의 ‘회화와 공간적 요소의 이색적인 하모니’ 이면엔 쉼 없이 다양한 체험의 노력들이 기반을 이룬다. 평소 현실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은 다양한 변주의 작업 방식을 거치면서 어느새 자연치유가 되는 단계에 이른다. 또한 그의 그림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에 걸려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바보스러움에 자각(自覺)의 지혜도 암시해준다. 곳곳이 찢어져 있는 그림 속 이미지가 그 해답이다. 마치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꿰뚫는 파격의 시각적 연출이다.

마저 작가의 이러한 ‘그림 속 찢기’는 소통의 새로운 방식이며, 관계성의 재편을 보여준다. 마치 불교적 공사상(空思想)을 말하려는 듯하다. 찢긴 ‘차원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실상과 허상, 빛과 그림자, 현실과 본질, 비움과 채움, 있음과 없음 등은 과연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의문은 누구나 갖고 있는 삶에 대한 물음이다. 그는 그 찢어진 공간을 넘나드는 흰 고양이를 등장시킴으로써 또 한 번 질문을 한다. ‘당신은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이다. 본성을 찾아 수행을 떠나듯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심우도(尋牛圖)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의 레지던시에 6개월간 다녀온 경험은 마저 작가에게 작가적 의지를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됐다. 단순히 동양적 색감이나 조형 세계로 경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동서양의 감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실존형 감성주의 작품’으로의 발전적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을 것이다. 장식적 역할에 머물렀던 전통적인 민화의 특성을 현대의 실생활 속 가구에 접목하는 과정은 마저 작가의 작품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프랑스 레지던시에서 작업한 200호(약 260×194cm) 그림이 SNS에 올려지자마자 한 작가에게 4시간 만에 판매돼 화제였다. 그의 작품 가격은 4~5년 전엔 10호(53×45.5cm) 크기가 100만 원 정도였지만, 최근엔 150만 원 정도로 소폭 올랐다.
가구와 회화의 조합, 멀티 회화로 변주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세종대 겸임교수, 2017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