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55호 (2018년 04월)

유리조형,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찾다


LIFE & ●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이후창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국내 조각계에서 가장 큰 행사는 ‘서울국제조각페스타’다. 매년 봄이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실내외 전관에서 진행되는 이 행사는 제목처럼 국내외 조각가 100여 명의 작품 1000여 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조각 전문 축제의 장이다. 이 중에 최고 인기 작가상은 미술 전문가는 물론 수만 명의 관람객이 함께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를 설문 투표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그 첫 번째 수상자가 유리조각으로 이름난 이후창 작가다. 

이후창 작가의 상복은 예사롭지 않다. 이미 2011년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수여하는 ‘하정웅미술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매년 ‘빛’이라는 테마로 우수한 역량의 작가를 특별 선정하는 의미 있는 상이다.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이이남 작가와 구상조각의 한 획을 그은 고(故) 구본주 작가가 이전 수상자였다는 점만 봐도 비중을 짐작할 만하다. 또한 2009년 서울문화재단과 경기문화재단 두 군데 동시에 우수 작가로 선정된 이력은 미술계 내부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음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올해엔 미술교과서에도 이 작가의 작품이 인터뷰와 함께 게재되는가 하면, 국내 아파트의 유명 브랜드(푸르지오) TV CF에도 깜짝 출연하고 있다. 내용은 ‘프리미엄 주거공간에 예술이 접목돼 있다’는 설정으로 예술가로서 작업하는 모습이다. TV와의 인연은 이게 끝이 아니다. 2016년 유니버셜이 아시아 최초로 투자해 100% 사전 제작한 이준기, 아이유 주연의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 등장하는 100여 개의 모든 가면디자인 제작을 총괄하기도 했다.

이 작가의 종횡무진은 국내 영역을 벗어났다. 지난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개인전을 가진 이후 마이애미, 팜스피링, 아스판 등 미국 전역에 순회전을 이어가고 있다. 반응 역시 남다르다.
지난 2월경 미국 ‘LA아트쇼’에 출품된 소품 3점이 모두 판매되고, 지난 연말 마이애미 전시에선 대형 설치작품들이 매진되기도 했다. 전혀 연고나 이해관계가 없는 해외 전시에서의 판매는 작가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인간 내면의 심리를 탐구해 온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매력을 서양의 미술애호가들에게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감성을 동시에 충족시켜준 그의 유리조형 작품에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후창 작품의 첫인상은 ‘무척 신비롭다’는 느낌이다. 마치 빛과 그늘의 경계에 걸쳐 있는 듯, 몽환적인 감흥의 연출에 탁월하다. 차가운 재질임에도 볼수록 오히려 따뜻한 정감이 넘친다.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작품에서 ‘빛’은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아마도 인간은 빛으로 인해 세상의 만물을 인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빛은 존재감 자체이지만, 동시에 ‘있고 없음’의 환영을 선사한다. 알 듯 모를 듯, 있는 듯 없는 듯, 실제인지 허상인지에 대한 문답(問答)이 그가 지닌 화두다. 

“작품의 내용과 재료의 물성이 서로 이질적이지 않도록 유념합니다. 조각 작업에선 재료와 물성이 차지하는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물성의 장점을 최대한 잘 살려 작품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관람자에게 더 큰 공감을 이끌어낸다고 믿습니다. 결국 재료는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주재료인 유리의 물성 연구에 게을리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굳이 이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작업’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 작품과 조우하는 동안 또 다른 ‘내면의 나’를 만나고, 그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보길 기대합니다.” 

이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일루전(illusion)’에 관해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허깨비나 그림자를 뜻하는 ‘환영(幻影)’의 의미를 좇는 셈이다. 이를 위해 표현 재료로써 ‘유리’를 선택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리는 태생적으로 반사와 중첩의 효과를 지녔다. 그리고 제 몸에 스스로 빛을 품을 수 있는 대표적인 물질이다.

ILLUSION, Glass·Light·Steel, 가변설치, 높이 300cm, 2016년


관람객이 바라보는 시점이나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느낌을 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투명과 불투명 혹은 완벽함과 연약함 등의 상이한 성질을 한 몸에 담고 있다. 이 같은 유기적인 특성으로 인해 관람객은 지루할 새가 없다. 

 작품의 제목을 보면 <나를 바라보다>,  <타자(로서)의 시선>, <시선의 중첩>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최근 3~4년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일루전’ 시리즈와 서로 통한다. 이 작가의 일루전은 단순히 ‘보이는 환영’을 넘어, ‘바라보는 환영’이나 ‘환영을 인지하는 과정’에 방점이 있다. 자기 자신을 최대한 객관화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그것은 내면 깊숙이 숨겨진 욕망의 존재를 밝은 빛으로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상실된 자아를 회복하려는 수행자적 정진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의 타자성에 관해 관심이 많습니다. 누구나 ‘내 안의 무수히 많은 나’의 존재감을 지녔을 겁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 몸에서 사는 것과 같겠지요. 그래서 되도록 작품 속에 ‘타자의 시선’과 결합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의 욕망과 상실감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벌써 10여 년이 넘었군요. 작품들 중에 사실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인체의 모습으로 표현된 부분들도 인간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며 과정입니다. 그래서일까. 예전 개인전 때 한 가족 관람객이 ‘불교는 아니지만 내 안의 진정한 자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했던 말이나, 어느 수녀님이 ‘종교를 떠나 명상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 반가웠다’는 품평이 아주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작품의 주재료로 쓰이는 유리는 매우 예민하고 다루기가 힘들다. 작업 과정은 크게 유리주조(casting) 작업과 설치 작업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주조 과정은 표현될 원형을 흙이나 유토(油土)로 만들고, 거푸집을 뜬 후엔 다시 왁스(wax)로 그 원형을 뽑아낸다. 다음으로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내화재(耐火材)로 다시 거푸집을 만들고, 유리를 약 섭씨 900도 이상의 전기로에서 녹여 주조하게 된다.

유리는 두꺼울수록 서냉(徐冷, slow cooling)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 약 40cm 정도의 작품이면 유리 재료를 녹이는 과정만 적어도 2주 이상 소요되고, 후가공까지 감안하면 상상 이상의 공력이 들어간다. 더더욱 작품용 유리 재료는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다 보니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작가의 작품 가격은 작업 공정이나 활동 이력과 역량에 비해 낮은 편이다. 2010년 기준 ‘30×20×50cm’ 크기 작품이 350만 원 정도였고, 지금은 400만 원으로 형성돼 있다.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세종대 겸임교수, 2017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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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3-2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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