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58호 (2018년 07월)

[Great Teaching] 벽초 홍명희 <임거정전>, 남북한이 같이 읽는 최고의 고전

[한경 머니 = 박숙자 경기대 교양학부 조교수] 벽초 홍명희는 <임거정전(林巨正傳)>에서 조선인의 말과 삶을 기록해 분단을 넘어, 평화체제를 상상할 수 있는 버팀목을 그려냈다. 남북한이 읽는 최고의 고전을 떠올릴 때, 소설 <임꺽정>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유다.


1962년 ‘최고의 동원 기록’으로 선전하는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유현목 감독의 <임거정>이다. 영화의 유명세 때문인지 부산의 영화 팬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신문 독자는 <임꺽정>과 <임거정> 중에 어떤 말이 맞는 것인지 묻는다. 편집자의 설명에 따르면, “임꺽정은 쇠돌이 막동이 등과 같이 순한글로 된 이름인데, 우리나라 야사에 중국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중국 글자로 적어야 되는 줄 알고 ‘임거정(林巨正)’으로 억지로 중국 글자로 만들어 썼다”고 밝힌다. 이 설명이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임꺽정’은 ‘임거정’이 아니라 ‘임꺽정’으로 쓰는 편이 역사적 맥락에 좀 더 부합한다. 기실 ‘임거정’이든 ‘임꺽정’이든 그가 조선시대 이름난 ‘도적’인 것만이 아니라 민중들의 뜻과 마음을 몸으로 표현했던 ‘장수’였다는 사실이 중요할 것이다.

벽초 홍명희는 1928년부터 1939년 조선일보 폐간 직전까지 <임거정전(임꺽정)>을 연재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쓰인 최대 규모의 역사대하소설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왜 ‘임꺽정’에 열광했는가. 알려진 것처럼 ‘임꺽정’은 조선시대 3대 의적이다. 성호 이익은 조선시대 3대 도적으로 ‘연산군 때의 홍길동, 명종 때의 임꺽정, 숙종 때의 장길산’을 꼽았지만 이 3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문학사의 걸출한 주인공인 동시에 당대 역사에 문제 제기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준 영웅이다.

벽초가 일제강점기 동안 살아가던 모습을 엿보게 되면 그가 왜 ‘임꺽정’에 주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홍명희는 어렸을 때부터 한문 공부를 하며 <시경(詩經)>을 읽고 한시를 지었는데, 시절이 시절인지라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일본 대성중학교에 편입한다. 그러나 1910년 국권피탈 이후 한일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조선으로 돌아와 충청북도 최초의 만세운동을 추진하기도 하고, 신간회 창립을 도모하기도 하는 등 민족지사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홍명희는 “임꺽정이란 옛날 봉건사회에서 가장 학대받는 백정 계급의 한 인물이 아니었습니까. 그가 가슴에 차 넘치는 계급적 불길을 품고 그때 사회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만 하여도 얼마나 장한 쾌거였습니까”라고 말하며 조선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고 말한다.

임꺽정은 단지 허구 속에서 상상된 인물이 아니라 조선 명종 때에 출현한 실제 역사 속 인물이다. ‘도적 임꺽정’은 황해도 지방의 농민들과 서민, 각종 수공업자 등과 결탁해서 지주의 집을 습격하기도 하고 관청을 공격한, 잔악한 인물로 전해지고 있지만, 황해도뿐만 아니라 평안도, 경기, 서울에 이르기까지 임꺽정의 무리를 두둔하는 이들이 많았다. 임꺽정은 탈취한 재물과 곡식을 착복하지 않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억울하게 붙들린 죄수들을 풀어주면서 ‘의적’으로 이름이 높았기 때문이다.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의적
그렇다면 소설 속 임꺽정은 어떠한가. 우선 그는 ‘힘이 장사고 육 척 장신에 주둥이가 까치집같이 검고 거친 수염을 달고 다닌 것’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임꺽정’ 소재의 TV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임꺽정은 항상 수염이 덥수룩한 힘센 장사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또한 그는 “백정의 자식이라구 멸시 천대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즉 자기 노력이 부족해서 천대받는 것은 그럴 수 있지만, 자신이 ‘백정’이라는 이유로 천대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다른 삶의 감각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임꺽정의 무리 역시 인상적이다. 이 무리들을 ‘청석골 칠두령’이라고도 하는데, 꺽정이, 유복이, 봉학이, 막봉이, 청왕동이, 곽오주, 배돌석이다. 이들 각자가 이 무리에 가담하게 된 구구절절한 사연 역시나 이름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래서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임꺽정’과 그의 무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대개 중요한 결정은 대장인 꺽정이 내리지만 각자 자기 정체에 맞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부당한 위계가 작동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이 부락을 만들어 사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집이 필요하면 뚝딱뚝딱 집을 지어 ‘여러 두령들이 공론하고 집들에 나눠’ 들면 그만이고, 집을 나눠 쓸 때에도 ‘오가는 식구가 단출하여 큰 집이 쓸데없다고 있던 집을 식구 많은 임꺽정에게 내주고 새집 중에 제일 번듯한 채로 내려앉고’ 하는 식이다. 이 방식은 기존 질서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로지 각자의 필요를 통해 자원을 나누고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당시 삶의 감각과는 다른,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들이 양반집을 습격하는 행위를 두고 ‘저항’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해 보일 때도 있다.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결단, 즉 ‘삶’이 먼저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는 홍명희가 <임거정전>을 통해 살아 있는 ‘조선의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했다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조선의 정조’를 남기고 싶었다는 것, 중국 문화나 서구 문화가 아닌 조선의 풍속과 문화, 언어와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임꺽정>을 읽어 나가다 보면, ‘조선적인 삶’이 무엇인지 눈에 선하게 붙잡힌다. 이는 192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화된 일제의 ‘조선적인 삶’에 대한 해석에 응전하는 일이었다. 조선의 고유한 문화들이 왜곡, 변형되는 과정에서 조선적인 삶의 흥취를 기록해내는 것, 또 이를 억압하는 문화를 넘어서는 힘을 그려내는 것은 조선적인 삶을 기록하고자 하는 기획이었다. 이는 1930년대 후반 조선 문화의 원본을 탐구하는 시선으로 빚어진 여러 노력, 이를테면 <춘향전>에 담긴 민중적인 삶의 역동을 조선 문학의 중심으로 놓고자 한 시도와 맥을 같이 한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일제강점기 조선 문학이 가진 아름다운 자산이다. <임꺽정>
을 통해 조선인들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선인의 말과 삶을 기록해내고자 한 것은 분단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를 상상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남북한이 같은 읽는 최고의 고전을 떠올릴 때 <임꺽정>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유다.


일러스트 전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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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7-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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