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58호 (2018년 07월)

[SPECIAL]여수 예울마루, 기업과 예술의 만남

[한경 머니=여수=이현주 기자] 거대한 공연 시설 앞마당을 배경으로 바지락 캐는 여인들. 여수 예울마루에서 마주한 첫 풍경은 그랬다. 바다와 산과 유리 지붕, 그리고 아낙네. 눈에 보이는 모습의 전부였다. ‘전체’를 보여주기보다 ‘개성’과 ‘본질’을 포착해 강조하는 게 좋은 예술 작품이라지만 69만4214.8㎡ 부지에 지어져 있다는 문화예술 공간의 진면목은 한눈에 드러나지 않았다. 건물이 아닌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는 조화 속에서 여수 예울마루 ‘최고의 뷰’를 만났다. ‘전략적 사회공헌’의 일환이자, ‘기업과 예술의 만남’으로 또 하나의 선례를 남긴 GS칼텍스 예울마루를 돌아봤다.
사진 이승재 기자 | 전문가 도움말 박신의 경희대 교수

여수 예울마루에서 바라본 전경. 공연장과 바다가 인접해 있는 친수 공간이 특징이다.


조명으로 수놓은 여수의 밤바다가 청춘의 기억을 붙잡는다면 여수의 낮 바다는 일과 삶, 평범한 일상을 평화롭고 풍요롭게 보듬는다. 물이 고운 여수의 바다 앞에서라면 기억과 희망, 슬픔과 회복을 끄집어내는 ‘예술의 경험’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아우라를 내뿜는 여수 바다를 앞에 끼고 예울마루는 위치해 있었다.

여수시 시전동 망마산과 장도 일원의 69만4214.8㎡ 부지. 그중 아직 공사가 한창인 장도를 맞은편에 두고 망마산 자락에 올랐다. 지난 2012년 5월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1021석), 소극장(302석), 전시실, 분수광장과 함께 2km의 산책로로 하나의 문화예술 공원을 지향하는 이곳은 GS칼텍스의 사회공헌 활동, 즉 기업의 예술 지원 사례의 현장이다. 

지형을 해치지 않고, 산속에 안긴 공연장
예울마루는 ‘문화예술의 너울이 가득 넘치고 전통가옥의 마루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시민 공모와 네이밍 컨설팅을 거쳐 선정된 이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은 152m의 ‘유리 지붕(glass river)’이 단연 하이라이트다. 계곡의 흐름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망마산 자락에서부터 여수 앞바다로 향하고 있다. 문화의 강이 흐른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유리 지붕 이외에 한눈에 외관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공간이 안쪽으로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산속에 파묻힌 공연장’의 형태다. 그래서 전체 7층으로 조성돼 있으며 땅속임을 증명하듯 삼면에 창문이 하나도 없다는 게 특징이다.

전국에 수많은 복합문화공간 및 공연장 가운데, 이곳 예울마루만의 차별성은 바로 장소적 특성에 있었다. 여수 내에서도 15군데 후보지 가운데 선별된 입지는 절묘하게 바닷가 앞에 자리하고 있다.

이승필 예울마루 대표는 “국내 도시에서 바닷가를 볼 수 있는 공연장을 가진 곳은 부산, 통영, 여수 정도인데 그중에서도 여수는 또 다르다”며 “바다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 바로 앞에 맞닿아 있는 ‘친수 공간’이라는 점이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물을 가까이 할 수 있을뿐더러 동네 주민들과도 호흡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 당일에도 공연장 바로 앞에서 바지락을 캐는 어부들의 모습이 카메라 렌즈에 포착됐다. 멀리서 바라보면 일상의 노동과 클래식 무대라는 다소 이질적인 풍경이 하나의 뷰에 들어온다.

자연이 가진 지형을 해치지 않고, 산이 가지고 있는 선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앉혀 있는 모습은 전통적인 한국 정원이 존재하는 방식과 꽤 유사하다. 아이러니하게 이 모든 기본 설계를 진두지휘한 이는 프랑스 출신 도미니크 페로. 친환경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는 이다. 

산속에 위치한 공연장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상상도 가능하다. 일반적인 진동에 의해 건물이 소리를 낸다고 볼 수 있다. 이곳은 음악 소리가 울리면 산이 울리는 셈이다. 그 울림이 그대로 바다로 연결되면 물이 울린다는 의미적 해석을 할 때 공연장으로 향하는 감동은 배가 될 것이다.

처음 설계 당시부터 예울마루는 또 하나의 ‘예술섬’을 꿈꿨다. 마치 일본의 나오시마 예술섬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힐링 여행지로 통하듯이, 2단계 섬 프로젝트를 통해 장도를 전시 가 중심이 되는 특별한 체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계획이다.

현재 망마산과 장도 양쪽을 잇는 독특한 잠수 보행 다리 하나를 놓는 중이다. 이곳에서 조수간만의 차이에 의해 물이 빠지고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리 위로 찰박찰박 물이 지나가는 진풍경은 자연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도의 전시장에서 예울마루까지 일직선의 축으로 연결돼 있다고 귀띔했다. 망마산에서 장도 전시장까지 약 2km의 산책로가 조성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내년 이맘때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장도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는 중이다. 다리 위로 찰박찰박 물이 지나가는 진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울마루에 오르는 입구에서 시원한 분수쇼가 펼쳐졌다.

산속에 파묻힌 공연장은 예울마루의 차별적 특성이다. 7층 규모로 공연장과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GS칼텍스, 여수와의 인연…상생으로 꽃피다
그렇다면 GS칼텍스는 왜 여수에 공연장, 예술섬을 만드나. GS칼텍스와 여수의 특별한 인연은 1967년 국내 최초 민간 정유회사인 호남정유가 여수에 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공장 하나로 출발해 현재 826만4462.8㎡의 석유화학공단으로 성장한 GS칼텍스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 사이 이곳엔 거대한 석유화학 컴비나트(단지)가 형성됐다.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바도 있었지만 동시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도 적지 않았다. 기름 유출로 인한 환경 문제가 대표적이다. 기업으로서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고민이 남게 됐다. 이때 ‘양수겸장’ 카드로 꺼내든 게 전략적 사회공헌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발전 과정에서 최근 ‘가치 창출’이 강조되는 CSV가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일회성 지원에서 그치는 게 아닌, 기업 경영과 비즈니스의 선순환 작용이 가능한 사회공헌 ‘아이템’을 찾는 게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비용을 쓰면서도 효과를 극대화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승필 대표는 “CSR에서 가장 고민은 두 가지 포인트였다. 기업은 어떤 식으로든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용납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율적인 사회공헌 사업을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그때 그 아이템이 기업의 정체성과 맞아야 했다”며 “예울마루의 경우 철저히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역이 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궁극적으로는 비즈니스에 기여하게 한다는 원칙에서 나온 결과물이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지역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이를 위한 프로세스에서 실제 지역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의논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이템을 선정할 때부터 협치를 위한 ‘거버넌스’가 존재했다. GS칼텍스는 처음 지역을 위한 사회공헌의 필요성을 절감한 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100억 씩 총 1000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곧바로 지역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자로 이뤄진 회의체를 구성했고, 10개 분야의 지역 대표자들이 모였다. 기업에선 간사로 참여할 뿐 의사결정 과정은 철저히 거버넌스의 몫이었다.

처음엔 후보 아이템이 약 30가지에 달했다고 한다. 장학이나 복지를 비롯해 생각할 수 있는 주제들이 쏟아졌고 그중 시민의 광장, 만남의 광장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었다. 그때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개최가 결정되면서, 대형 문화예술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여수 세계박람회 개막과 함께 문화예술 관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대형 복합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다.

산이 가진 선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된 건축 설계가 돋보인다.

유리 지붕은 계곡의 흐름을 형상화한다.


클래식 공연장 바로 앞에서 지역주민들이 조개를 캐는 모습, 이질적인 만남인데 절묘하게 어울린다.

기업의 예술 지원, 공공과 민간의 협치 모델 실험
사회공헌을 통한 기업의 예술 지원으로 볼 때 생각해볼 만한 지점은 또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지원하는 문화예술 공간은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재단을 통해 직접 운영하거나 네이밍 스폰서로 후원하는 것이다. 금호아트홀, 롯데아트홀, LG아트센터 등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등이 후자 쪽이다.

예울마루의 경우 여수시가 부지(69만4214.8㎡)를 제공하고, GS칼텍스가 시설(1100억 원)을 짓는 방식으로 공조를 했다. 또 준공 이후 실제 극장을 운영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협치가 계속되고 있다.

여수시와 GS칼텍스는 2018년 기준 연간 약 50억 원의 운영비에 대해 공동의 짐을 지기로 했다. 각각 38:62의 비율로 분담하기로 합의하면서 보다 안정적인 운영 체제를 확보하게 됐다. 어느 한 쪽이 쉽게 예산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는 구조다. 예산은 공동으로, 극장 경영은 민간 주도로 감사나 회계처리는 공공 주도로 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기부 체납 후 소유권이 여수시에 있고 다시 위탁운영의 형태로 GS칼텍스가 재단을 통해 실제 운영을 맡고 있는 형태다.

박신의 경희대 교수는 “기업이 사회공헌을 할 때 기업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례는 논의 과정과 운영 방식에 있어 여수시와 협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례”라며 “이것은 예술 조직의 형태로 봤을 때도 공공도 아니고 민간도 아닌 새로운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왜 의미가 있을까. 공공이나 민간이 전적으로 맡았을 때 상황과 비교해보자. 먼저, 공공에서 운영을 도맡을 경우 전문성이 결여될 우려가 크다. 담당자가 자주 바뀌고 전문성이 쌓이지 않아 특히, 지역 문예회관의 경우 시설관리 수준으로 머무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 창의성과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예술경영 리더십도 공공의 영역에서 담당하기에는 애로사항이 있다.

전략적 사회공헌의 방법론에서 GS칼텍스 예울마루는 첫째, 지역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둘째, 구체적인 조성을 위한 프로세스를 기업 주도가 아닌 지역의 이해관계자와 함께 논의하고, 셋째, 설계뿐만 아니라 실제 운영에 있어서 여수시와 협치를 통해 가장 지속 가능한 방향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갖는다.

기업의 예술 지원이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하는 만큼, 성과나 효과성을 들여다보는 것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다. 이승필 대표는 “한번은 여수시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여수 국가 산단 기업 중 가장 사회공헌 활동을 잘하는 기업에 대해 물었는데, 예울마루 이전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다가 그 이후에는 GS칼텍스가 73.5%로 압도적인 1위를 했다”며 “그 이전에도 장학금, 섬 봉사활동, 어르신 섬김 봉사, 점심 사랑 나눔터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 왔지만 확실히 가시적인 시설이 들어서니 체감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총 55만 명이 예울마루에 다녀간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기준 유료 관객 비율 92%를 유지하고 있다. 이승필 대표는 “초대권 없이, 티켓 가격을 낮추더라도 무료 공연을 없애자는 원칙 아래 극장을 운영 중”이라며 “마케팅 비용을 더 쓰더라도 적정 티켓 가격을 유지해야 대관을 해서 이곳에 오는 다른 기획사도 지역에 와서 공연 적자를 면할 수 있는 콘셉트를 가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남은 과제는 소프트웨어의 다변화, 예술섬으로서의 가능성 실험 등으로 꼽힌다. 나오시마와 비교할 때는 아쉬운 점은 있다. 나오시마가 전시장을 마련할 때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작가진을 선별하고 작품에 맞는 전시장을 올린 데 반해 장도 예술섬은 작가진에 대한 구상 없이 건물이 먼저 올라가는 중이어서다.

망마산 일대는 공연장 중심의 음악 공간, 장도는 전시 위주 공간으로 꾸며진다.



아이들을 비롯해 지역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역의 문화력을 높일 계획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8호(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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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9-1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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