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옥, ‘사람의 역사’를 담다

[공간 탐구] 근대 한옥을 만나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당신이 사는 공간에는 당신 자신의 인생이 스며 있다. 집과 동네, 골목과 거리, 마을 공동체는 당신의 일상을 생동감 있게 증언한다. 한 사람의 삶과 접하는 곳, 그가 살던 시대의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 바로 역사가옥이다. 서울 빌딩숲 사이, 고즈넉한 바람과 볕과 새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공간. 역사가옥박물관에 가보았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내셔널트러스트 제공 | 참고 도서 <백인제 가옥, 서울역사박물관>·<역사가옥박물관의 의미와 역할>

역사가옥박물관(Historic House Museum)이 있다. 일반 박물관과 달리 건물 자체가 전시의 주제이자 전시물이 되는 박물관이다. 소장된 유물이 아니라 건물이 지닌 건축적 특성, 건물에 살던 사람, 건물에 깃든 역사를 조명한다.

역사인물 관련 박물관 네트워크를 만든 내셔널트러스트에 따르면 역사가옥박물관은 “문화, 예술, 종교, 정치, 교육 등 인간 활동이 일어나는 모든 분야에서 사회에 의미 있는 영향과 뚜렷한 업적을 남긴 역사인물이 생활한 집을 보존해 박물관으로 운영하며 역사인물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기관”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 인물이 살던 가옥이다.

개인이 거주했던 집이면서 역사적 가치를 지녀 박물관으로 기능하는 가옥 박물관 중에서도 근대 한옥의 모습을 한 가옥들이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 가운데 서양식 근대화와 개발의 열기가 가득했던 시기, 서울 도심에 지어진 근대 한옥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역사적 도시와 마을들을 고려할 때 300년이 넘는 오래된 가옥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근대가 언제부터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림잡아 100여 년, 사라진 옛 거리와 건물들 사이에서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가옥은 그래서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최근 한옥에 대한 늘어나는 관심 속에 한옥마을, 마을 및 도시재생을 이루는 데에도 옛집들은 공공건물과 달리 일상의 풍경을 재현한다. 역사가옥의 보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개인 소유자 등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역사가옥들이 있다.

다만, 보존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가옥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김홍남 전 국립박물관장은 “역사가옥을 보존한 다음 이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개인 소유자들의 숙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및 시민단체의 지원 속에 일반인들에게 활짝 대문을 연 역사가옥을 찾아 근대 한옥의 멋을 살펴봤다.
[공간 탐구] 근대 한옥을 만나다
서울의 주요 역사가옥들
-딜쿠샤집(서울시 미래유산 ‘딜쿠샤’) | 등록문화재 제687호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을 서양에 알린 앨버트 테이러(무역상, 언론인)가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1923년 붉은 벽돌 2층 건물로 지어 1942년까지 거주했던 서양식 주택이다.
-홍난파의 집 | 등록문화재 제90호
홍난파 가옥은 서울 한양도성에 바로 인접해 지어진 양식 주택이다. 종로구가 매입해 위탁 운영을 통해 개방하고 있다.
-북촌문화센터 | 등록문화재 제229호
북촌문화센터는 옛 민형기 가옥으로 알려졌다가 최근에는 유진경 가옥으로 고증이 진행되고 있다. 북촌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공공에서 매입해 주민 커뮤니티 및 방문자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박노수 가옥 |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
1991년 5월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됐다. 1938년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 주거 가옥의 형태를 보이는 2층 건물로 한식과 양식의 절충식 가옥이다.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한용운 가옥 | 서울시 기념물 제7호
1933년~1944년까지 만해 한용운이 거주했던 곳으로 서울 성북구청에서 관리,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다. 심우장 내부에는 만해의 업적이 전시돼 있다.
-고희동 가옥 | 등록문화재 제84호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1886~1965)이 살았던 주택이다. 고희동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18년 직접 설계해 지은 목조 개량 한옥. 한때 건물을 헐고 주차장이 될 뻔 했으나 서울시가 구매,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성락원 | 명승 제35호
조선시대의 별서정원으로 유명한 성락원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돼
있으며 문화유산탐방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
-장욱진 가옥 | 등록문화재 제404호 용인 장욱진 가옥
한옥과 양옥이 각각 남아 있는 가옥은 후손들에 의해 재단법인이
만들어지고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다.
-한무숙 가옥 | 서울시 미래유산 한무숙 문학관
한옥과 양식이 연결된 가옥은 후손들에 의해 문학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변종하 가옥 | 서울시 미래유산 변종하 가옥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이 가옥은 후손들에 의해 ‘석은 변종하 기념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권진규 아틀리에 | 등록문화재 제134호
정기 개방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배렴 가옥 | 등록문화재 제85호
20세기 중반 활동한 한국화가 제당 배렴 선생(1911~1968년)이 생애 말년을 보낸 곳으로, 이곳 사랑채에서 당대의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2016년까지 한옥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다가 서울시에서 역사가옥으로 보전, 활용하기 위해 시민과 방문객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위탁 운영 중이다.
[공간 탐구] 근대 한옥을 만나다
‘북촌에 위치한 100년 대형 한옥’
백인제 가옥

백인제 가옥은 서울의 대표적인 근대 한옥이다. 북촌의 한옥 문화와 일제강점기 서울의 상류층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대형 한옥으로 위상을 갖는다. 1913년 지어진 100년 고택으로, 전통적인 한옥의 미를 따르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이곳은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 면에서 북촌을 대표하는 한옥 건축물로 꼽힌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가와 재력가들이 살았던 북촌 일대 대형 한옥 중 당시 규모로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백인제 가옥과 윤보선 가옥 두 채로 알려진다. 윤보선 가옥은 현재 그의 후손이 거주 중인 사택으로, 근대 대형 한옥이 박물관으로 상시 개방된 건 백인제 가옥이 최초다.

역사가옥이 역사적 인물과 그들이 거주했던 주거와 활동 범위를 접하는 문화유산이라면, 백인제 가옥은 근대기 상류층의 특징 있는 한옥이라는 점에서 관람 포인트를 찾아볼 수 있다. 건물 외관 및 사랑방, 안방, 건넌방 등 각 공간마다 당시 유행했던 가구 및 소품들, 생활상과 주거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인물
1913년 당시 이완용의 조카이자 유력한 은행가였던 한상룡에 의해 건립된 이곳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한상룡의 손을 떠난 이후 1935년 개성 출신 민족 언론인 최선익의 소유가 됐고, 또다시 1944년에는 당시 외과 명의이자 오늘날 백병원의 창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소유가 됐다. 1968년부터는 백인제 박사의 부인 최경진 여사가 원형을 보존하며 살아왔고, 지난 2009년 서울시가 최 여사로부터 가옥을 매입하면서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와 같이 한상룡과 한성은행 및 천도교, 최선익, 백인제 및 가족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인물들의 흐름과 근대기 한옥이 변화하던 시기의 선구적 가옥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남긴다.

건축
백인제 가옥은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 대지 위에 전통 방식과 일본 양식을 접목해 건립됐다. 부근 한옥 12채를 합친 널따란 대지에 당시 새로운 목재로 소개됐던 압록강 흑송을 재료로 지은, 규모는 물론 건물 그 자체로도 당대 최고급 가옥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백인제 가옥은 전통과 근대 양식의 절충식 한옥으로서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당시 경성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가옥 본채와 안채는 전통 한옥 기반이다. 사랑채는 일본식 특성을 가미해 지어졌다. 유리, 벽돌, 타일 등의 근대적 재료를 사용하고 다다미방을 설계하는 등 당시 가치관 및 생활양식에 맞춰 변화를 모색했다.

다시 보면, 조선시대 상류층 양반들의 고유한 주거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안채(안주인)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우리 전통 한옥의 지혜로 손꼽히는 요소가 ‘우물마루’인데, 이곳 안채는 전통적인 우물마루로 구성한 반면 사랑채(바깥주인)는 툇마루와 복도는 물론 사랑대청까지 모두 일본식 장마루를 적용하고 있다.

한상룡이 일본 고위 인사들을 위한 연회를 염두에 두고 이 건물을 지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인다. 실제 이 건물에서 역대 조선총독부 총독들을 비롯한 당시 권력가들은 물론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도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또 안채와 사랑채가 확연히 구분되는 전통 한옥과 달리 백인제 가옥에는 이 둘을 연결하는 ‘복도’가 있고, (일반적으로 온돌을 사용하는 난방 구조 때문에) 주거용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2층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화 <암살>에서 이곳 2층 공간이 인물들의 피신처로 등장하기도 했다.

공간
백인제 가옥에 들어서면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 아담한 별당채가 펼쳐진다. 조선 사대부가의 솟을대문 형식을 그대로 따른 백인제 가옥의 높다란 대문간채와 궁궐 기둥 높이의 대들보는 건립자가 일반 사대부 이상의 위상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

대문간채를 넘어서면 보이는 사랑채는 건립 당시부터 건립자 한상룡을 비롯한 소유자들이 연회 등 사회적 활동의 배경으로 삼은 까닭에 한옥으로서는 보기 드문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한옥에서 사랑채 안채로 가는 각 영역은 담장과 문으로 분리되는데 백인제 가옥의 사랑채 역시 대문을 들어서 사랑중문을 지나야만 들어설 수 있다.

흔히 전통 한옥에서 마당은 의식주 생활과 관련된 작업 공간으로 사용되는데, 백인제 가옥의 사랑마당은 마당이 아닌 조경을 중시한 정원으로 꾸며져 연회 공간으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백인제 가옥의 가장 높은 대지에 자리한 아담한 별당채는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일반적으로 별당채는 사랑채의 연장 공간이지만 노모나 자녀의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백인제 가옥의 별당채는 바깥주인의 개인 휴식 공간으로 사용됐다. 별당채 규모에 비해 넓은 누마루와 한 칸 반 크기의 온돌방으로 구성돼 있다.
[공간 탐구] 근대 한옥을 만나다
[공간 탐구] 근대 한옥을 만나다
Info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7길 16
문의 02-724-0232
관람 시간
평일 및 주말 오전 10~오후 5시
(공휴일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관람 방법
자유 관람 및 가이드 투어(소요시간 50분, 하루 4번)
(http://yeyak.seoul.go.kr )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