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김소현 인터뷰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국보급 뮤지컬 배우 김소현(44)을 만났다. 항상 최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그가 5년 만에 다시 ‘엘리자벳’ 역으로 돌아왔다. 엘리자벳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18년간 뮤지컬 배우로서 정상을 지켜 온 그만의 비결을 들어봤다. 사진 이승재 기자·EMK 제공
“5년 만에 엘리자벳, 좀 더 인간적으로 완성”
김소현은 그야말로 신성(新星)처럼 등장했다. 2001년 국내 초연한 라이선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주역 ‘크리스틴’으로 데뷔한 그는 청아한 목소리와 차원이 다른 가창력을 앞세워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그의 행보는 승승장구였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지킬 앤 하이드>, <마리 앙투아네트>, <명성황후> 등 대형 작품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 그는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로 꼽혀 왔다.

그리고 그 사이 2011년 뮤지컬 배우 손준호(36)와 결혼해, 이듬해 사랑하는 아들 주안(7)이를 얻었다. 그렇게 김소현의 지난 18년은 다사다난했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듬질하는 성숙의 시간이었다. 그 숭고한 시간들이 모여 노래만 잘했던 서울대 성악가 출신의 샛별은 이제 노래와 연기, 그리고 관객의 소중함을 감사할 줄 아는 뮤지컬계 ‘슈퍼스타’가 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커튼콜 때마다 관객의 박수에 눈시울을 붉히는 겸손한 배우다. 그런 그가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돌아왔다. 2018년 11월 17일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벳’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를 담고 있다.

엘리자벳은 황제 요제프와 첫눈에 반해 결혼하지만 고부 갈등과 아들 루돌프의 죽음을 겪으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가상의 캐릭터 ‘죽음(Der Tod)’과의 사랑에 빠진다. 김소현은 2013년에 이어 5년 만에 엘리자벳으로 다시 분한다. 남편인 손준호 역시 황제 ‘프란츠 요제프’를 맡아 두 사람은 극중에서도 부부로 만나게 됐다. 과연 두 사람의 호흡은 어땠을까.

5년 만에 다시 엘리자벳을 맡게 됐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출산 후 복귀작이자 저를 변신시켜준 작품이에요. 그런데 처음 이 역할을 맡았을 땐 아쉬움이 남았어요. 급작스럽게 작품을 맡게 돼서 작품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다시 엘리자벳을 연기하게 된다면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죠. 부담보다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무엇보다 5년 전에는 상상으로만 연기했던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됐죠. 가령, 예전에는 지문 속 ‘차갑게 거절한다’는 부분을 단순히 ‘거절하다’에 초점을 맞춰서 표현했다면 지금은 거절을 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내면의 감정을 더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더 진실하게 표현하게 됐죠. 좀 더 인간적으로 엘리자벳을 완성해 가는 느낌이에요.”

연기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엘리자벳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 준호 씨와 2018년 여름 뮤지컬 배경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 엘리자벳과 요제프가 살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을 둘러봤죠. 실제로 엘리자벳이 걸었던 계단도 걸어보고, 입었던 옷을 보기도 하고, 그녀를 둘러싼 공간들을 직접 보니 정말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구체적으로 그녀의 상황과 심경이 느껴졌어요. 진작 왔으면 좋았을 걸 싶더라고요. 준호 씨도 그때 가서 본 것들이 연기하는 데 정말 많이 도움이 됐다고 해요. 역시 실제로 보고 느끼는 건 그 어떤 걸로도 대체가 되지 않는구나 싶었죠.”

일대기를 그린 작품인 만큼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시대, 국경을 초월해 한 여자로서 겪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특히 엄마로서 아들 ‘루돌프’를 대하는 심정에 공감이 됐어요. 보고 싶어도 제대로 만날 수 없는 심정이요. 역할에 빠져들다 보니 밤에 잠도 못 잤죠.”

엘리자벳이 그러하듯 여배우로서의 삶도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여배우로 살다 보면 종종 엘리자벳의 삶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특히 저는 작품 속 ‘아무것도’를 부를 때마다 ‘어떤 공허함’을 생각하게 돼요. 배우는 화려한 직업이지만, 박수를 받고 분장실로 돌아와 거울을 통해 민낯을 만났을 때 느끼는 공허함이 크거든요. 엘리자벳의 일생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칭송과 사랑을 받았지만, 일생은 너무 불행했어요. 여자 배우들 역시 직업 자체가 빈 곳이 많죠.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많이 했다고 해도 스스로 느끼는 공허함은 다 메워지지 않아요. 그런 부분에서 엘리자벳과 만나는 지점이 있어 매번 열변을 토하게 됩니다. 연습 때 너무 많이 울어서 감정이 주체 안 될 때도 있어요.”
“5년 만에 엘리자벳, 좀 더 인간적으로 완성”
지난 18년 배우 생활을 자평하자면.
“데뷔 땐 그야말로 성악가였죠. 아마 보컬 부분에서는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다만, 그 시절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너무 주변 이야기에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질타하듯 제게 뮤지컬 발성을 강요하고, 저 역시 그것에 맞추려고 지나치게 노력했어요. 어쩌면 스스로 제 목소리를 없앤 셈이죠. 그 점은 좀 속상했어요. 대신 연기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됐죠. 무엇보다 이제는 어떤 틀 안에 갇히기보다는 모든 걸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사실 돌이켜보면 성악가에서 배우가 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깎이고 깎이면서 저만의 동그란 돌을 만들었죠. 몇 해 전과 비교해 목소리도 많이 달라졌어요. 샤우팅이 미숙하니 장면에 맞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고, 본래 소프라노여서 저음을 내기 힘들어 또 연습했죠. 예전에는 항상 소리를 예쁘게 내고자 했어요. 이후엔 거친 목소리로 연기하려고도 하죠. 이젠 두 가지를 잘 섞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남편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결혼 이후엔 같이 무대에 오르지 않으려 했는데 많이 불러주셔서 같이 하게 됐어요. 우려했던 게 ‘바보 같았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반응이 좋아서 신기해요.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고요. 그래서 더 무대 위에선 사심 없이 집중하고 노력한답니다.”

남편 외에 특별히 호흡이 잘 맞았던 파트너가 있다면.
“일단 저는 진짜 남자 배우 복이 많아요.(웃음) 이번에도 (가수 출신의) 박형식, 레오, 준수 씨와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이분들을 제가 언제 볼 수 있었겠어요. 감사한 일이죠. 뭐, 물론 특별히 호흡이 잘 맞는 배우가 있죠. 이걸 어떻게 얘기하겠어요.(웃음) 다만, 확실한 건 작품에서 자주 만날수록 호흡이 잘 맞는 건 사실이죠. 실제로 부부로 자주 호흡을 맞춘 뮤지컬 배우 민영기 씨와는 평소에도 친숙하게 지내는 편이고요.”
“5년 만에 엘리자벳, 좀 더 인간적으로 완성”
늘 에너지가 넘치는데 체력관리 노하우가 있나요,
“뻔한 얘기 같지만 전 정말 정신력 같아요. 사실 배우로서 제게 주어진 시간은 일상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는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다 쪼개서 써야 하죠. 그래서 배우로서의 시간을 보다 집중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 같아요. 피곤해서 몸이 축날지라도 (연기하는 것이) 행복해서 에너지가 더 나오는 느낌이랄까요. 무대에 오를 때만큼은 100% 충전돼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명성황후 역할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캐릭터를 통해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고요. 그래선지 전에는 전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최근 들어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새해 인사를 부탁합니다.
“일단, 전 지금하고 있는 뮤지컬 <엘리자벳>이 끝나야만 진짜 새해가 왔구나 싶을 것 같아요. 요즘, 뉴스를 보면 좋은 뉴스보다 안 좋은 뉴스들이 참 많죠. 그러다 보니 원래 있던 일도 더 안 좋게 보이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새해에는 어떤 현상을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밝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시길 바라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년 만에 엘리자벳, 좀 더 인간적으로 완성”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