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벤치. 피에르 잔느레 작품. 벤치에 숫자가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공공건물에 쓰였기 때문에 비품관리를 하기 위한 번호다.
스크린+벤치. 피에르 잔느레 작품. 벤치에 숫자가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공공건물에 쓰였기 때문에 비품관리를 하기 위한 번호다.
LIFE • house & story [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서울옥션블루·빈트갤러리·비투프로젝트·모벨랩 제공]

남들이 다 가진 것, 모두가 다 하는 그런 인테리어가 아닌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면서도 색다름에 대한 갈증은 어쩌면 빈티지 가구에서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고가라는 가격적인 위세 때문이 아닌 빈티지가 주는 미묘한 매력이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희소성의 가치를 더한다

2017년 방송된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케이팝(K-pop) 스타 빅뱅의 태양의 집이 소개된 적이 있다. 집 안 곳곳에 장식된 오브제들은 그의 안목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시선을 끌었고, 이우환을 비롯해 데이비드 호크너,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이 벽에 걸렸다. 가구는 또 어떤가. 점당 1000만 원을 호가하는 피에르 잔느레의 의자 ‘오피스’가 다이닝 공간을 메우고 있었고, 식탁에는 1억 원을 호가하는 장 푸르베의 테이블이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값비싼 잔느레의 의자는 새 제품이 아닌 빈티지 제품이라는 것. 수십 년 전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심지어 일부는 버려져 있던 제품이 유통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고가에 말이다. 그 집은 얘기하는 듯했다. ‘내 취향은 이정도야.’

이야기가 담긴 가구

1951년 스위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피에르 잔느레는 사촌 형이자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인도 펀잡주의 주도 찬디가르의 도시계획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찬디가르 프로젝트는 인도 고유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진보적인 도시를 건설하는 20세기형 신도시를 세우는 프로젝트였다.

잔느레는 도시 곳곳을 건축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가구도 제작하는데 인도 현지의 토속 재료와 장인의 전통적인 공예기술을 접목해 만들었다. 덥고 습한 인도의 기후에도 견디도록 미얀마산 티크와 인도산 로즈우드를 이용해 가구를 디자인했고 캐인(대나무)으로 엮어 통풍을 좋게 했다. 도서관이나 관공서에 의자를 설치해 카스트제도에 의한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인본주의 정신이 작품에도 담겨 있다.

세월이 지나 잔느레의 작품들은 땔감 정도의 가격에 팔려 나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가치를 알아본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였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컬렉터들이 인도의 야적장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잔느레의 작품들을 발견한 것이다. 값은 수천 배로 뛰었고 현재는 점당 1만 달러를 호가하고 있다.

박혜원 빈트갤러리 대표는 “그의 아이디어는 실용적이지만 정제된 미학에 기반한 것이었다”며 “디자인을 특권층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람들의 삶의 기준을 향상시킴으로써 20세기 디자인의 경계를 확장시켰다”고 설명했다.

찬디가르는 훗날 근대 유산을 인지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면서부터 잔느레 피스들은 빈티지 시장에서 점점 높은 몸값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왜 빈티지인가?
피에르 잔느레의 식탁과 오피스 체어.
피에르 잔느레의 식탁과 오피스 체어.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즉, 미드센추리 시대를 가구 산업의 황금기로 꼽아요. 견고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재료와 아름다운 제품을 디자인할 디자이너 이 둘이 환상의 조합을 이루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빈티지 가구 수입 회사인 모벨랩 김종원 차장의 말이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는 핀 율을 비롯해 아르네 야콥슨, 한스 웨그너 등이, 미국에서는 찰스 임스나 조지 넬슨 등의 디자이너가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목재의 수종으로는 결이 아름답고 견고하기로 이름난 브라질산 로즈우드나 티크만을 고집했다. 디자이너에 의해 그려진 도안은 전문 가구제작자의 손에 수작업으로 모습을 갖춰 나간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가죽을 꿰매고, 나무를 다듬고 접합해 가구 한 점 한 점을 제작하는 것.

최고급 목재는 일류 디자이너와 장인의 손을 거쳐 수제작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붙는다. 이 때문에 미드센추리 시대의 가구는 가구 중 가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구는 수십 년의 세월을 덧입으면서 자연스럽게 색상과 질감이 변화한다. 이를 에이징(aging)이라고 한다. 또 사용하면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흠집도 가구의 일부가 된다. 가구업계에서는 이를 ‘파티마’라고 부른다. 에이징과 파티마에서 새 가구가 줄 수 없는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찰스 임스나 조지 넬슨, 한스 웨그너, 아르네 야콥센 등의 디자이너 가구는 허먼밀러, 비트라, 프리츠한센 등에서 라이선스를 갖고 계속 생산 중이다. 하지만 이들 가구가 당대에 생산된 빈티지일 경우 얘기는 한층 더 깊어진다. 오리지널이 가진 품격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핀 율의 가구여도 현대에 라이선스 협약을 맺고 재생산된 새 가구보다 당대의 가구제작사 닐스보더가 제작한 제품의 가격은 3배 이상 값이 나간다. 미국의 가구 디자이너인 조지 나카시마의 것도 마찬가지.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그의 집에 둔 유일한 가구의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조지 나카시마의 가구는 오리지널 버전과 재생산된 미라 나카시마 버전의 가격 차이가 3배 이상 된다. 장인의 손길로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차이가 오리지널과 재생산을 가르는 차이가 되는 셈이다. 컬렉터들은 이 작은 차이에도 엄청난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오리지널 빈티지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산 가구를 40년, 50년 묵히면 빈티지 가구가 될 수 있을까. 모벨랩 실장은 “아쉽게도 그렇게 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가구의 목재부터가 다를 뿐 아니라 제작 방식도 당시와 다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최고급 수종인 로즈우드와 티크는 당대에 하도 벌목을 많이 해 이제는 구하기 어려워졌다. 1970년대부터는 수종 보호를 위해 아예 벌목을 금지하기도 했다. 수작업과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라는 작업 방식의 차이도 빈티지와 현대 가구의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그렇기에 빈티지 가구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희소성을 띠게 되고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빈티지 가구를 수입하는 ‘컬렉트’의 허수돌 대표는 “미드센추리 이후의 시대인 요즘 가구는 황금기가 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누가 만들었고, 어떤 목적에 따라 만들었고, 어디서 만들었냐는 등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빈티지로 인정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가구를 사야 할까
기성제품으로도 빈티지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한스 웨그너의 와이 체어.
기성제품으로도 빈티지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한스 웨그너의 와이 체어.
컬렉터의 눈에 들어오는 가구는 어떤 것일까. 빈트갤러리의 박혜원 대표는 자신이 지닌 소장품으로 2018년 10월 피에르 잔느레 전시를 열었다. 자칭 ‘나무성애자’라는 그는 잔느레가 디자인한 가구가 공공 프로젝트에 쓰였다는 역사성에 주목했다.

“컬렉터로서 주안점을 두는 것은 나중에까지 컬렉션의 가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잔느레의 가구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희소성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잔느레의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가구 60여 점과 국내에는 잘 볼 수 없는 스크린 파티션과 캥거루 체어 등 활발히 거래되지는 않지만 디자이너의 마스터피스 같은 제품을 모았고 2018년 10월 드디어 잔느레의 가구들로만 전시회를 열었다.
허수돌 대표는 가구가 가진 이야기에 매료되는 편이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책상은 프랑스 태생의 미국 산업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가 디자인한 제품입니다. 로위가 디자인한 제품으로는 코카콜라 병이나 럭키스트라이크 담뱃갑 등이 있죠. 그가 디자인한 책상이라는 점이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제가 컬렉팅 하는 제품들도 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어떤 가구를 사는 게 좋을까? 허 대표는 의자를 추천한다. “가장 부피가 적을 뿐 아니라 집의 전체적인 인테리어에 일조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김종원 차장은 “빈티지 가구는 반드시 눈으로 보고 의자라면 앉아보고 구매해야 한다”며 “빈티지 가구여도 실제 생활에 사용하는 가구이다 보니 견고함과 안락함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사진으로는 에이징과 파티마가 자세히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며 “너무 과한 파티마를 지양한다면 눈으로 직접 보고 가구를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매입은 가급적 지양하는 편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허 대표는 “이베이를 통해서도 빈티지 가구가 거래되지만 오리지널리티를 보증할 수 없어 위험 부담이 큰 편”이라며 “가격대가 있는 만큼 안전하고 검증된 가구 숍을 통해 구매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빈티지 가구의 재테크적 가치
사이드보드, 다이닝 테이블. 모두 작자를 알 수 없는 언노운(unknown) 제품. 디자이너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만듦새와 가구의 디자인을 통해 작품의 디자이너를 추정하기도 한다.
사이드보드, 다이닝 테이블. 모두 작자를 알 수 없는 언노운(unknown) 제품. 디자이너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만듦새와 가구의 디자인을 통해 작품의 디자이너를 추정하기도 한다.
1990년대 일본에서 분 빈티지 가구 열풍은 2000년대 초 한국을 휩쓸고 있고 최근 이를 향유하는 연령대가 많이 낮아졌다. 국내에서 예전에는 전문 컬렉터나 일부 자산가들 사이에서 구입이 이뤄졌다면 요즘에는 젊은 층에서도 빈티지 가구에 대한 문의와 구입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미권에서는 빈티지 가구를 투자로 접근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빈티지는 만들 수가 없고 계속 공급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 희소성이 점차 높아져가는 것. 실제로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은 세계 경매 시장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빈티지 디자인 가구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옥션이 먼저 나섰는데 2010년 첫 경매에서 조지 나카시마의 코노이드 테이블 세트가 1억4500만 원에 낙찰됐다. 두 번째 경매에서는 장 푸르베와 샬롯 페리앙이 합작한 책장 <도서관>이 1억 원에 낙찰돼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도서관>의 현재 가치는 4억 원 정도라고 하니 8년 사이 4배나 가치가 뛴 셈이다.

최근에는 2018년 12월 6일 진행한 ‘제150회 미술품 경매’에서 장 프루베의 세미 메탈 체어(Semi-Metal Chair, 모델 No.305, pair)와 장 프루베, 쥘 르루의 암체어(Armchair, pair) 작품을 출품, 각각 4000만 원과 185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지희 서울옥션블루 본부장은 “최근 1920~1960년대 무렵의 디자인 의자에 대한 컬렉터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디자인 가구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시간이 경과할수록 희소성 때문에 가치가 올라가는 특성이 있는 것은 물론 디자이너 개인의 철학과 함께 시대별 소재와 형태 등 유행하는 디자인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높아 소장 가치 역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수돌 컬렉트 대표는 “빈티지 가구는 걸어두고 감상만 하는 예술작품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며 “빈티지 가구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늘다 보니 최근에는 중국의 부호들도 빈티지 가구 컬렉팅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가구업계에서도 빈티지 가구가 곧 씨가 마를 것이다”고 내다봤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