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가격, 마호가니 나무에 아크릴 채색, 가변 설치, 2019년
꿈의 가격, 마호가니 나무에 아크릴 채색, 가변 설치, 2019년
LIFE •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김성복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은행이 열렸다. 그냥 돈을 저축하는 은행이 아니다. 우리의 꿈이 저장된 특별한 ‘도깨비뱅크(Dokkaebi Bank)’다. 이 은행에서 발행하는 화폐 단위는 ‘무한대(∞)’다. 각자 원하는 금액을 적어 넣는 백지수표나 마찬가지다. 참으로 진기한 은행에서 발행된 특별한 화폐, 내 맘대로 원 없이 쓸 수 있는 돈벼락을 내려준 이는 조각가 김성복이다.

세종대왕, 신사임당, 부처, 예수, 수녀, 로보트 태권브이, 아이언맨, 남북 정상, 위안부 소녀상, 히로시마 원폭 장면, 6·25전쟁 피난민, 스승인 원로조각가 전뢰진, 어머니 등 돈다발에는 존경받는 위인부터 역사적인 사건과 소소한 개인적 일상까지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꿈꿀 수 있는 욕망은 무한합니다. 꿈이란 자기 만족도의 바탕 위에 그려집니다. 따라서 개인의 만족도는 서로 다르고, 꿈의 크기와 모습 역시 제각각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모든 욕망이 현실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꿈과 사회적 성공을 결부시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개 ‘꿈을 실현하다’는 말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다’라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우리가 궁극적인 성공의 목적에 돈이라는 수단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그 연장선입니다.”

김성복 작가는 얼마 전에 가진 개인전에서 이 ‘돈다발’ 시리즈 108개를 전시장 반자에 낚싯줄로 매달아서 마치 하늘에서 돈벼락이 쏟아지는 형국을 연출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짐작이 되겠지만, 108개는 인생사의 온갖 시름과 고난의 ‘백팔번뇌(百八煩惱)’를 대변한다. 그 불안함과 갈급함을 본인 심성과 감성의 맞춤형 돈벼락으로 위로해주겠다는 김 작가의 위트가 돋보인다. 또한 도깨비 방망이를 변용한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숟가락이나 스님들의 발우(鉢盂)를 연상시키는 대형 볼(bowl) 작품들이 함께 등장해 작품의 해석을 좀 더 유연하게 도와준다.

“자본주의 사회에 ‘열심히 해봤자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는 패배 의식은 청춘들의 꿈과 희망적인 도전을 무너뜨리며, 열등감과 좌절감을 낳습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노력, 쉼 없이 발전을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청춘들은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만든 것이 <도깨비뱅크의 돈다발>입니다. 하늘에 돈다발이 가득한 것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잠시나마 돈벼락을 맞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도깨비뱅크가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계이지만, 잠시나마 지친 이들이 전래동화 속에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의 주인공이 돼보길 기대해봅니다.”
다시 태어나다, 마호가니 나무에 아크릴 채색, 15×11×5cm, 2019년
다시 태어나다, 마호가니 나무에 아크릴 채색, 15×11×5cm, 2019년
김 작가의 최근 신작 ‘도깨비뱅크’ 시리즈가 정감이 넘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많은 돈다발 작품들이 모두 순수한 수작업으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가로 18cm, 세로 8cm, 두께 5cm의 마호가니(mahogany) 나무를 깎고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남부와 인도 서부, 브라질, 중남미 등이 산지인 마호가니 나무는 아름다운 물결 모양의 나뭇결이 매력이다. 이 나무를 끌로 깎아 돈다발 형태로 만든 후, 오랜 시간 사포질로 연마 작업을 한 이후에 하나하나 세밀하게 형상들을 그려 넣은 것이다. 어떤 것은 오랜 세월을 이겨낸 어르신의 부적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것은 미래를 한창 꿈꿀 한 어린이가 좋아했던 히어로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꿈의 돈다발에는 다양한 내용과 주제가 담겼다.

김 작가가 꿈이라든지, 도깨비 방망이 등의 소재를 작품에 등장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초창기부터 조각가 김성복은 ‘한국인의 강인한 의지와 꿈’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왔다. 그가 표상으로 내세운 인물상은 마치 현대판 ‘사천왕(四天王)’ 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김 작가의 대표작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는 세계의 중심이라 여겨졌던 수미산 중턱을 지키고 선 사왕천의 위용을 닮았으며, 그 의연한 자태는 보고만 있어도 참으로 든든하다. 이어서 호랑이 형상을 민화 속의 친근함으로 해석한 ‘신화(神話)’ 시리즈, 도깨비 방망이로 꿈과 희망을 강렬한 인상으로 엮어낸 <금 나와라 뚝딱> 작품들 역시 김성복이 일상에 지친 현대인을 어떻게 위로해주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준 사례들이다.

그동안 김 작가의 작품들이 보여준 여러 특성 중 ‘전통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빼놓을 수 없다. 돌이나 금속, 종교 혹은 민속 등 재료와 소재에 상관없이 모든 작품들엔 ‘재미’라는 요소가 중심 역할을 한다. 다소 진중할 수 있는 무거운 주제도 그의 손을 거치면 쉽고 간결함으로 부담감을 덜어준다. 그렇다고 주제의 깊이가 낮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긴 감흥의 여운으로 주제를 곱씹어보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구상조각을 추구하지만, 관상용 작품에만 머무르지 않는 점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늘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가 고스란히 그의 작품 속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는 누구나 꿈과 욕망을 지니고 살아간다.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등을 맞대고 있다. 꿈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담보해주는 ‘순수한 열정의 염원’이라면, 욕망은 지금 당장에 획득하고 싶은 ‘이기적 집착’일 수도 있다. 그 꿈이 현실과 가까워지려면 욕망이란 원동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 돈(화폐)은 아주 긴요한 연료가 돼준다. 그렇다고 장작으로 찰진 밥을 곧바로 맞바꿀 수 없듯 그 돈으로 꿈을 살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조각가 김성복이 최근에 선보인 <도깨비뱅크―돈벼락> 작품은 더욱 큰 위안을 준다. 나이가 많건 적건, 꿈이 메마르지 않도록 감성적으로 촉촉하게 지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덕분에 더없이 소중한 꿈의 무게를 지켜낼 수 있다.
신화, 화강석, 50×19×58cm, 2009년
신화, 화강석, 50×19×58cm, 2009년
월트 디즈니의 “꿈을 추구할 용기만 있다면 우리들의 모든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말처럼 꿈을 갖는 용기가 중요하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라고 했다. 멀게 생각할 이유도 없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오늘의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여유야말로 ‘꿈을 가진 자’의 특권이다. 김 작가는 작품 <꿈의 가격>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건네고 있다. “당신의 ‘꿈의 가격’은 얼마인가요?”, 그리고 “당신의 꿈은 안녕한가요?”. 꿈은 뜬구름이 아니라 지금 손안에 든 작은 돌멩이다. 어쩌면 당신은 이미 꿈의 열차에 올라섰는지도 모른다. 티켓은 김성복의 도깨비뱅크에서 발행한 돈다발 한 묶음, 가격은 100만 원이다.

아티스트 김성복은…

1964년생. 1990년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조소 전공으로 1993년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그동안 ‘2019 꿈의 가격전’(올미아트스페이스 기획초대전)을 비롯해 개인전 15회, 부스 개인전 15회, 단체전 400여 회 등을 가진 바 있다. 작품은 주로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신화’,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방망이’ 등의 다양한 시리즈를 선보였다. 주요 기획전으로는 돼지꿈전(핑크갤러리, 서울), 현대조각의 구상과 추상 사이(청작화랑, 서울), 2018 The BLUE:청람전(성북구립미술관, 서울), 세종대왕과 음악 황종(대통령기념관, 세종시), 경기아카이브_지금(경기도미술관, 경기), 전뢰진-조각일로·사제동행 구순기념 특별 기획초대전(선갤러리, 서울), 원 인스퍼레이션(구하우스미술관, 한국문화원, 시로타갤러리, 도쿄 일본), 욕망의 귀환 3인전(중랑구청 중랑아트센터, 서울), 제64회 경기도체육대회 개최기념 자연愛-休(양평군립미술관, 양평) 등이 있다. 현재는 성신여대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며 활동 중이다.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팀장, 월간 아트프라이스 편집이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및 정부미술은행 작품가격 평가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대 겸임교수, 계간조각 편집장, 2019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 2019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