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년’이 갖는 의미는 40~50대의 생애주기 그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허리 역할을 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낀 세대’이자 인생 후반부의 초입이라는 인식 탓에 극심한 혼란을 겪는 시기이기도 하다.
“행복 변곡점은 40대 초입…자존감 영향”
지난 5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소득 3만 달러 대한민국 평가와 과제’라는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우리 국민의 객관적인 삶의 질은 개선 추세에 있지만, 주관적인 삶의 질 만족도는 여전히 낮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실제 우리나라의 객관적 생활 여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22위였지만, 주관적 삶의 질은 38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수치화한 삶의 만족도 역시 우리나라는 5.8점으로 대표적인 웰빙 국가로 꼽히는 핀란드(7.8점)와 큰 격차를 보였다. 이에 대해 알리스테르 맥그레거 영국 셰필드대 교수는 “한 사회의 성공을 단순히 경제적 성과로만 측정해서는 안 된다”며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성원의 삶의 질 개선이다”라고 강조했다.

뚜렷한 세대 간 행복지수
사실 이번 콘퍼런스 외에도 객관적 경제지표와 삶의 만족도의 미스매칭 현상은 국내외 다른 조사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부의 집중화에 따른 양극화 문제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포용 성장’이 정책적 화두로 등장한 지는 이미 오래다.

여기에 최근에는 전통적 일자리를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인구 고령화에 따른 정년 연장 등의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외 관련 조사에서 유독 2030세대의 삶의 질 만족도가 낮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그렇다고 이전 세대의 삶의 만족도가 월등히 높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특히 4050세대인 지금의 중년층은 전통과 현재의 가치관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 ‘낀 세대’다. 또 직장생활 초반부에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강요받았으면서도, 동시에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중시하는 2030세대의 상사로서 소위 ‘꼰대’ 취급을 받기 일쑤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 같은 내·외부 갈등에 기인한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중년들의 일탈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실제 일본 사회에서는 버블경제 붕괴 직후 1990년대 취업 빙하기를 겪었던 중년들이 자신감을 잃고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다는 조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중년들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세대라는 점에서 일본의 사례와 많이 닮아 있다.

이 같은 ‘중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달리 4050세대가 행복감이 반등하는 변곡점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카카오의 같이가치 팀과 공동으로 2017년 9월부터 1년 6개월간 150만 명(누적 30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안녕지수(행복지수)’를 테스트한 결과에서다.

안녕지수는 유엔 등에서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의 경우 1000여 명 안팎에 불과한 표본조사와 함께 실시간으로 개인의 행복감을 측정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됐다.

해당 프로젝트를 이끈 최인철 교수는 “안녕지수는 주가지수처럼 실시간으로 그 정보를 확보할 수 있고 우리에게 중요한 국가적 사건이나 날씨와 같은 외적 변수들에 의해 어떻게 변하는지도 민감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지역별, 연령별, 성별, 요일별, 시간대별 안녕의 차이도 확인할 수 있어 우리 사회의 특징과 변동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중년에 반등하는 삶 만족도
행복연구센터 측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 전체의 평균 안녕지수는 5.18점(10점 만점)으로, 같은 해 유엔의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발표된 대한민국 삶의 만족도(5.87)와 거의 일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성별 안녕지수의 경우 남성(5.55점)이 여성(5.22점)보다 소폭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별로는 20대(5.06점)가 가장 낮았고 60대(6.03점)가 가장 높았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40대 이후 안녕지수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유(U) 자형 패턴을 보인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중년이 접어드는 시점인 40대부터 신체 기능 저하에 따른 무기력감과 가정과 직장에서의 위계 갈등으로 우울감을 심하게 느낀다는 통념과는 사뭇 차이를 보이는 결과다.
“행복 변곡점은 40대 초입…자존감 영향”
연구소 측은 “안녕지수의 하위 요인들을 살펴보면 지루함, 우울함, 불안함은 20대가 가장 많이 경험했고 스트레스는 30대가 가장 많았다”며 “40대 역시 짜증 등의 경험이 많았지만 60대로 갈수록 모든 부정적 심리를 낮은 수준으로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별 안녕지수의 경우 남녀 모두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시기, 즉 행복 변곡점은 중년층의 초입인 40대였다. 여성의 경우 남성(40대)보다 빠른 30대에 바닥을 찍고 반등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이런 결과가 진정한 의미의 연령 효과인지, 아니면 40~60대 응답자들의 세대적 특징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면서도 “행복의 남녀 차이 측면에서 40대가 중요한 균형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들 세대 응답자들이 겪은 시대적 상황들이 남녀의 행복 차이를 줄여준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에서는 정말로 나이가 들수록 남녀의 행복 차이가 줄어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정교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삶의 만족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서점가에도 중년층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힐링 도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작가 정여울은 자신의 저서 <마흔에 관하여>에서 “(나는) 40대인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20대나 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항상 사랑에 굶주렸고 타인의 관심에 일희일비했고, ‘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이 지나쳐 스스로를 학대했다”며 “젊음이란 그런 것이다. 마흔은 내가 처음으로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나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 “중년은 결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비로소 나 혼자만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기, 지혜와 용기를 굳이 저 멀리 타인의 참고문헌에서 꺼내오지 않고 나 자신에게서 바로 참고할 수 있는 시기, 그리하여 내 안에 깃든 밝음과 향기만으로도 능히 내 세상을 지탱할 수 있는 뱃심이 두둑해지는 시기, 그것이 바로 찬란한 마흔의 시간이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