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금보성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한글, 캔버스에 유채, 227×181cm, 1997년
한글, 캔버스에 유채, 227×181cm, 1997년
금보성 작가는 ‘한글 전도사’다. 한글을 모티브로 작업한 지도 35년이 됐다. 한글 문자, 한글 인물, 한글 도자기, 한글 부식, 한글 방파제, 한글 윷놀이, 한글 아리랑 등 끊임없이 한글의 조형적 변주에 온 시간을 쏟아 부었다.

금보성 작가에게 한글은 삶 자체이자 신념이다. 최근엔 현대회화로 승화시킨 한글의 매력을 국제무대로까지 크게 확장시켜 선보이고 있다. 머지않아 국제 미술계에서 ‘한글 한류’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올해 상반기에만 독일과 일본에서 개인전을 마쳤고, 하반기엔 8월 15일 미국 뉴욕(케이트오갤러리)를 시작으로 영국과 프랑스, 인도 등의 전시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국내 전시로 인천(잇다스페이스), 여수(여수미술관), 사천(사천미술관), 거제(유경미술관, 해금강테마박물관) 등은 이미 마쳤다. 한 해에 서로 다른 작품으로 국내외 개인전을 10회 이상 치른다는 건 결코 흔치 않다. 크고 작은 작품을 연 평균 1000점 이상 제작한다고 하니, 말 그대로 작업량이 폭발적이다. 그것도 몇 미터가 넘는 대형 평면 회화부터 설치 작품까지 넘나드는 작업 보폭이 놀랍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우리의 전통적 감성을 한글과 접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통 민속놀이인 윷놀이 시리즈와 아리랑 시리즈다. 우리의 놀이 문화엔 특유의 흥과 한이 함축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에너지는 고된 일상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될뿐더러, 삶의 참 의미를 잉태시키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선 수많은 감정과 감성들을 표현해낼 수 있는 한글을 가졌다는 것은 더없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자음과 모음의 유기적인 조화로움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금 작가는 한글이 지닌 심오한 철학적 깊이와 독보적인 경쟁력에 유희적인 미감까지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소리글자인 한글은 눈에 보이지 않은 윷 패와 같다. 개인의 한(恨)을 기억에서 삭제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인 흥(興)을 업데이트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이다. 또한 사람마다 태어난 목적과 사명이 있는데 그것을 아름답게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역(周易)은 개인의 생년월일로 운명을 짊어져야 하지만, 나는 마음속 지정한 글자(사랑, 행복, 성공, 감사, 축복 등)가 떨어진 모양대로 그림으로 옮긴다. 이처럼 한글 윷놀이도 개념을 정리해 현대회화 키워드를 부여했다. 결국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행복이다. 건강하고 신명나게 살아가도록 윷을 던지는 것이 기도다. 그래서 윷놀이의 목적이자 한글 작업의 최종 지향점이자 목적지는 축제다.”

한글을 통한 화음(畵音)의 접목은 매우 절묘하다. 우선 아리랑은 내재된 정서적 한(恨)의 감정을 흥의 감성으로 승화시키는 치유의 노래다. 윷놀이는 신체의 행위를 통해 상호의 유대감을 되살리는 합(合)의 미학을 담은 놀이다. 어쩌면 둘의 만남과 조화로움만큼 한민족의 정서를 잘 대변할 수 있을 수단도 드물 것이다. 금 작가는 바로 이런 결정적인 접점을 찾아 나선 것이다. 초기엔 화면 전체에 모자이크 퍼즐처럼 색면의 교차를 활용해 한글의 시각화를 꾀했다면, 후기엔 점차 화면의 여백과 공간미 활용에 주력한다. 특히 제각각의 색을 지닌 선과 면의 하모니가 연출해낸 리듬감은 백미로 꼽을 만하다. 그 시점에 윷놀이와 아리랑 시리즈가 있다.
한글 윷놀이 6, 캔버스에 유채, 193×130cm, 2018년
한글 윷놀이 6, 캔버스에 유채, 193×130cm, 2018년
반면 한글을 입체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은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글 단어가 지닌 그 자체의 의미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예, 한글의 형상성과 시각적 혹은 조형적으로 닮은 테트라포드(tetrapod) 시리즈로 구분된다. 우선 입체 한글 작품들은 약속, 사랑, 평화, 홍길동 등의 낱말(단어)을 스티로폼으로 만들고 부식 효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전면은 한글로 읽히고, 측면은 글자의 결 따라 늘려서 입체감을 더하는 방식이다. 또한 글자들을 쌓거나 엇갈리게 배치해 조형적 구성미를 연출하기도 한다.

다음의 테트라포드 시리즈는 PVC 재질로 모양을 만든 후 공기를 불어넣어 설치한다. 보통 테트라포드는 방파제 또는 방조제의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다리 4개 달린 콘크리트 덩어리’다. 영어의 ‘tetrapod’ 단어에도 ‘네 발 동물’, 탁자나 의자의 ‘네 다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금 작가는 한글 시리즈에 왜 테트라포드 형상을 차용했을까. 아마도 한글의 우수성을 지키고 보호하고자는 굳은 신념과 의지의 표상은 아닐까. 실제로 주변의 거리나 TV 드라마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글이 자주 발견된다. 분명히 한글은 한글인데,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들이 버젓이 만연한다. 대체할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외국어를 섞어 쓰는 예도 많다.

그의 한글 작품엔 우리 자신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는 ‘우리글의 순수성’을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 형식의 작품들을 혼용해 선보인다. 그것이 평면이나 입체이든 아니면 설치이든 형식은 중요치 않다. 기존의 한글이 지닌 읽고 쓰던 문자적 특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문자’로의 시각적 가치를 확장시키는 데 전력을 다한다. 굵은 획과 거친 질감을 활용한 한글의 다각적인 변신은 많은 감성을 자극하는 데 충분하다. 자음과 모음 모두의 낱자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조형적 디자인의 율동감과 변화를 줘 보는 재미의 전달력을 극대화시킨다.

“한글 작품은 자연과 사람의 이치를 가지고 만든 작업이다. 오행과 음양에 의해 상생의 기운을 회화적 배색으로 조합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게 하고자 하는 생명철학에 개념을 두었다. 한글 창제 원리도 중요하나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키워드가 들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단순한 글자라고 생각했던 한글은 문자의 의미보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재확인과 재발견이다. 한글의 ‘한’은 ‘크다, 우주, 하나’ 등의 의미를 지녔고, ‘글’에는 ‘나눔, 소통, 치유, 상생’ 등의 의미를 가졌다. 결국 한글은 ‘큰 나눔’, ‘큰 소통’, ‘큰 역할’ 등을 뜻한다. 한글은 큰 민족이나 큰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창구이며, 한글 그림은 우리를 문화적 존재로서 일깨워주는 큰 그림이다.”

실제로 한글은 타자를 칠 때 빠르고 정확하게 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쓰고 읽기도 참 쉽다. 누구나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부터 이미 한글의 과학적 혹은 언어학적 우수성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물론 기하학적으로도 매우 보기 좋은 문자다. 최근엔 해외의 패션계에서 한글을 일종에 ‘문자 스타일’로 활용하는 예도 많아졌다. 단순한 그림 같은 모양이 보기 좋으며, 구성이 복잡하지도 않은 탓이기도 하다. 마치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처럼 쉽고 간결해서, 디지털 시대에 잘 어울리는 문자라는 평가도 있다. 어쩌면 금 작가의 말처럼 한글을 통해 우리의 민족적 자존감을 일깨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한글 작품들로 우리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쟁력이 담보될 수 있지 않을까.

금 작가의 작업실 한쪽엔 천개가 넘는 빈 캔버스가 쌓여 있다.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컨테이너로 주문한 것이다. 많게는 월 200점 이상 제작해야 하니 캔버스 수급이 관건이다. 한글의 국제화를 위해선 경계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의 판매 방식이다. 일반 갤러리를 통해 유통되는 것보다, 금 작가의 작품 이미지로 제품을 만들고 싶은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이 작업실을 방문해 구매해 가기 때문이다. 가령 그의 수많은 한글 작품 이미지들로 만들어진 이불이 수십만 개 이상 제작돼 세계 전역에 보급되고 있다. 그렇게 사용된 한글 작품 원작 역시 각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금보성의 한글 회화’ 덕분에 ‘한글 한류’가 이미 시작됐지 않았나 싶다.

한국어나 한글의 매력은 색채 표현이나,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표현하는 형용사나 의성어, 의태어가 많이 발달된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미묘한 상황의 차이를 세밀하면서도 차별적으로 표현할 언어는 한글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금 작가는 이러한 한글의 매력에 시각적 유희를 하나 더 얹었다. 회화적 기능에 부합되는 적절한 색채의 혼용,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적인 실험, 아트 비즈니스와 결합한 한글의 새로운 국제화와 확장성 등이 어우러진 창의적인 접근이다. 한글이 지닌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세계 공통어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한글 회화 작품 10호(53×45.5cm) 크기의 전시 가격은 300만 원 선이다.

아티스트 금보성은…
한글의 조형적 변주, 국제 미술계도 주목
1966년생. 전남 여수가 고향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헤이필드대(Hayfield University)에서 철학을, 서울의 개신대학원대학교에서 신학 등을 전공했다. 그동안 서울, 대전, 여수, 뉴욕, 베를린, 파리 등에서 60여 회의 개인전과 수백 회의 기획단체전을 가졌다. 주로 한글을 모티브로 한 평면 회화 및 입체 설치 작품을 병행하고 있으며, 테트라포드 형상을 활용한 조형물을 아프리카 세네갈의 다카르비엔날레와 국내 여러 곳에서 선보여 주목을 받고 있다. 금보성 작가는 미술계 외에도 10여 권의 시집(詩集)을 발간해 문학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현재는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작가상 선정 대표, 청주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 조직위원, SNS아트페어 위원장, (재)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 여수미술관 부관장, 대한민국미술축전 전시감독, 국회남북미술전 전시감독, 학교법인 선천학원 이사, 금보성아트센터 관장 등 폭넓은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팀장, 월간 아트프라이스 편집이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및 정부미술은행 작품가격 평가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대 겸임교수, 계간조각 편집장, 2019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 2019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