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이 없어진 중년을 위한 변명
[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전문가·보건학 박사·유튜브 ‘배정원TV’]나이가 들면 성욕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물론 성욕을 관장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중년에게 성욕 변화는 마음의 적신호다.

“정말 진지한 물음인데요. 제가 이제는 예쁘고 매력 있는 여성을 봐도 전혀 마음이 설레거나, 성욕이 생기질 않아요. 언젠가부터 그런 욕구가 전혀 없어졌더라고요. 이것이 자연스러운가요? 아니면 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요?”

얼마 전 중년의 남녀가 모인 모임에서 받은 질문이다. 질문을 한 사람은 50대 중반을 넘기는 남자였는데, 자신의 이러한 변화가 노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병적인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은 ‘남자도 나이가 들면서 성욕이 일어나는 기준이 바뀌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즉, ‘나이가 젊을 때는 여성의 매력 있고 예쁜 외모에 쉽게 자극받지만, 나이가 들어 가며 외모보다는 말이 통하는 상대에게 훨씬 마음이 동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남자들이 젊었을 때는 ‘예쁜 아가씨가 있는’ 술집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면 ‘말이 통하고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중년의 마담이 있는’ 술집을 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성욕을 관장하는 것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부터 남자의 뇌는 테스토스테론의 강력한 지배를 받게 된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자로 하여금 성욕을 느끼게 하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하게 하고, 경쟁하게 하고, 성취하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물론 여자도 테스토스테론이 성욕을 일으킨다. 남자에 비해서는 아주 소량일지라도 여자에게도 테스토스테론은 성욕을 일어나게 하는 중요한 호르몬이다.

그런데 청춘일 때 남자의 뇌를 흠뻑 적시던 테스토스테론은 서른이 되면서부터 1년에 1~3%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남자가 50대가 되면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새로운 일을 자주 하고, 운동을 하고, 섹스를 자주 하는 사람은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의 저하는 노화와 관련이 깊다.
성욕이 없어진 중년을 위한 변명

◆성욕은 뇌에서 생긴다

테스토스테론이 3.5 이하로 떨어지면 호르몬 보충요법을 권하기도 한다. 호르몬 보충요법은 3개월에 한 번씩 주사를 맞거나, 호르몬 크림을 바르는 등의 방법이 있고 효과도 좋지만, 전립샘암의 발병과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을 주저한다. 하지만 50대가 되면 당연히 전립샘 검사를 정기적으로 해야 하니 그렇게 자주 확인을 한다면 호르몬 보충요법을 꺼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호르몬 보충요법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분의 말씀에 의하면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남자의 냄새가 돌아온다며, 훨씬 생기가 넘치고 성욕도 생긴다고 한다. 섹스가 사랑의 표현이고, 쾌락을 목표로도 하며 친밀감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남자에게는 무엇보다 섹스가 자신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장 내일부터 섹스를 다시는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사람이 많을 거라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 섹스를 불러 오는 것이 테스토스테론이기에 호르몬 수치가 떨어져 있어서 성욕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면 당연히 호르몬 보충요법을 권한다.

그런데 성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호르몬과 성기의 기능만이 아니라 섹스에 실제 가장 깊이 관여하는 곳은 다름 아닌 ‘뇌’다. 멋진 사람을 보고 자극을 받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성욕이 생기고 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뇌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말초적인 자극은 신경의 가장 말단에서 시작하지만 그 신호를 받고 몸과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뇌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뇌는 호르몬 같은 신체적 정보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 상대와의 관계의 정보도 읽어 행동에 반영한다.

그래서 성욕을 일으키는 데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도 중요하지만, 상대와의 관계에서 내가 얻을 심리적인 보상에 대한 기대도 한몫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회적인 상대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계일 때 더욱 그렇다. 성욕이 안 생기고 섹스를 안 하게 된다. 부부생활에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남자도 여자도 50대를 기점으로 갱년기와 폐경기를 겪게 된다. 남자 역시 여자처럼 갱년기가 되면 가슴이 불안하게 뛰기도 하고, 식은땀이 나며,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성욕이 없어지고, 어떤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 증세들이 나타난다. 또 사회적으로도 은퇴와 새로운 일을 찾는 인생 후반전의 불안한 시기다.

그래서 앞에서 한 질문에도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즉,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호감을 느끼는 계속적인 관계가 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동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또 성욕이 안 생기는 다른 이유는 스트레스가 많은 생활 탓이다. 매일 밤늦게 퇴근해 집에 오면 피곤에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이 너무 많거나, 잦은 술자리, 다른 걱정거리가 많아도 섹스를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섹스를 안 하면 점점 테스토스테론은 줄어든다.

50대의 결혼한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성욕이 안 생기는 일은 불륜 같은 골치 아픈 관계가 생길 염려가 없으니 좋은 일인지 모르지만, 아내와도 성욕이 안 생겨 남매 같은 관계로 지낸다면 이는 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어떤 일도 섹스만큼 상대에게 집중을 요하지 않는다.

등산, 테니스, 낚시 같은 취미생활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섹스를 할 때 우리는 상대 말고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 상대만을 생각하고 집중한다. 그래서 섹스만큼 파트너와의 강한 결속감, 친밀감을 키우는 데 효과적인 행위가 없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전문가·보건학 박사·유튜브 ‘배정원TV’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2호(2019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