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귀족 위주의 예술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로서의 시작.
중세와 현대 이어준 가교 ‘미술공예운동’
(사진)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의 리더인 윌리엄 모리스의 벽지를 배경으로, (왼쪽부터 시계 방향) 오렌지 톤에 에칭 무늬가 아름다운 와인 잔(아르누보), 2단 티어드 센터피스(빅토리안), 앙피르 시대 티포트(19세기 초), 화병으로 쓰인 오버레이 저그(아르누보), 라인이 아름다운 흑단 손잡이의 스털링 포트(아르누보), 아름다운 곡선의 스털링 티 스트레이너(아트 앤 크래프트), 손잡이의 라인이 아름다운 앙피르 시대의 티 잔.

19세기 유럽은 격동과 변화의 세계였다. 1830년부터 이어진 제2차 산업혁명은 익숙했던 많은 것들에 변화를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숲이 잘려 철길과 주택지로 변했고, 기품 있게 만들어졌던 많은 수공예품들은 감성 없이 만들어지는 값싼 복제품으로 대체됐다.

대량 생산을 위한 분업 체계가 도입됨에 따라 생산의 일부분만 전담하는 사람들에 의해 완제품이 만들어지게 됐다. 완성에 대한 성취감과 인간의 정성은 무시되고 생산 효율성만 강조되면서 장인들은 오히려 기계작업에 종속된 생산 과정의 부품으로 전락했다. 많은 생활용품 생산이 기계화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수공예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장인정신의 명예로운 전통은 점차 사라지게 됐다.

기계에 反하다
종합예술의 등장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 제품에 반대하고 수공예에 의한 아름다움을 창조해 인간 감성을 회복하자는 새로운 예술운동이 나타났다. 이 운동은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재 예술가 윌리엄 모리스에 의해 주도됐으며, ‘미술공예운동(art & craft movement)’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예술의 범주에 공예를 합류시켜 디자인이라는 새 영역을 만들었고, 중세와 현대의 공예사조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모리스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건축가와 공예인들은 그림, 조각, 건축에 치우쳐 있었던 예술 분야에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결합시킨 종합예술을 창조했다.

그동안의 건축이 외향을 만드는 하드웨어에 치중했다면, 모리스의 건축은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 보고 만지는 것에도 세심한 신경을 쏟아 부어 건축을 총체적 예술로 거듭나게 했다. 오늘날 그를 건축의 아버지라 부르며 많은 건축학도들이 런던 교외에 자리한 그의 신혼집 레드하우스를 성지처럼 방문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모리스는 공예가 건축공간에서 장식적 기능을 가지며 예술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까닭에 주택은 그에게 종합예술이었다. 그는 실내장식과 모든 생활용품을 조화된 디자인으로 일치시키려고 노력했고, 동료 예술가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시킨 가구와 더불어 벽장식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요즘 유럽풍 수입벽지라고 불리며 비싼 값에 우리의 집 안을 장식하는 고급스러운 패턴 벽지들은 모리스의 아름다운 텍스타일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많고, 그가 디자인한 벽지는 여전히 고가의 하이엔드 벽지로 사랑받고 있다.

중세 길드조직처럼 동료의식으로 맺어진 장인 공동체를 꿈꾸던 모리스는 1861년 ‘모리스 마샬 포크너’사를 창립한다. 예술이 사회의 취향을 반영한다고 믿었던 그는 대중예술을 생산할 수 있는 사회가 곧 바람직한 사회라고 인식했다. 그는 길드조직을 통해 일반 서민이 공예품 제작에 참여했던 중세시대가 바람직한 사회 체계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회사 설립 취지서에는 ‘주택, 교회, 공공 건축에 사용되는 회화 또는 색채의 조합에 의한 벽면장식’이라고 하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나중에 ‘모리스컴퍼니’라는 단독 회사로 바뀐 그의 회사는 실내장식물, 가구 소품, 벽지, 텍스타일 등을 생산했다. 벽지와 텍스타일은 모리스가 가장 주력한 부분으로 오늘날까지 이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종합예술의 꽃
하이엔드 벽지


인테리어 작업 중에서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이 벽장식이다. 아마도 모리스는 이전의 많은 벽장식이 칙칙한 타피스리(tapisserie)나 비슷비슷한 실크 천으로 장식되는 것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벽장식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회사의 설립 취지에 넣으며 많은 아름다운 벽지를 만들어냈다.

동양의 화조 문화에 심취에 있었던 그는 꽃과 식물, 그리고 새를 모티브로 한 더없이 아름다운 많은 문양을 벽지로 탄생시켜, 19세기의 벽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종합예술에 대한 모리스의 독창적인 사상은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의 미술교육기관 설립에 불을 지피며 오늘날의 창의적인 디자인 교육의 시초가 됐다.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은 유럽과 미국에까지 많은 영향을 주며 새로운 예술창조 양식에 기여했다. 귀족 위주의 예술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로서, 예술가와 대중은 분리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은 여러 장르에 종합예술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됐다.

모리스는 특히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의 식당 디자인을 의뢰받고 당시로서는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대담한 색인 녹색으로 벽을 장식함으로써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지금은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의 녹색식당으로 불리며 카페테리아로 쓰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그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모리스와 관련된 역사를 떠올리며 그의 디자인과 벽지에서 영감을 얻기 바란다. 요즘 너나없이 단색 위주의 모던함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 감각에 인간미 넘치는 따뜻함과 다채로운 감성을 다시 불러일으켜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