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송필
부유 2, 브론즈, 400×30×110cm(좌대 포함), 2019년
부유 2, 브론즈, 400×30×110cm(좌대 포함), 2019년
[한경 머니 기고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삶의 무게.’ 송필 작가가 작품에 담아내는 주제다. 자신의 몸보다 몇 십 배는 더 큰 덩어리를 묵묵히 짊어진 모습은 매일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운명을 은유한 것이다.



가슴이 먹먹하다. 어느새 두 어깨가 뻐근하다. 금방이라도 지쳐 내려앉을 것 같은 답답함과 그래도 버텨내겠다며 어금니를 악문 다짐이 동시에 떠오른다.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 송필 작가의 조각을 보며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이 노랫말이 자꾸 읊조려진다. 눈을 질끈 감아봐도 정말 웃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과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전쟁 같은 삶의 연속이다.

송 작가는 ‘삶의 무게’를 작품에 담아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메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몸체보다 몇 배에서 몇 십 배는 더 크고 무거운 덩어리를 묵묵히 짊어진 모습은 볼수록 찡하다. 마치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그리 바삐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마주한 느낌이다. 그동안 송 작가의 작품엔 사막에서 인간 대신 짐을 지는 낙타가 자주 등장해 왔다. 그것도 커다란 돌덩어리를 지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여기에 9층 석탑의 무게를 지탱한 달팽이의 모습도 있다. 당연히 그 낙타나 달팽이는 인간의 숙명이나 운명을 은유한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모든 작품의 형식과 재료가 다르지만 결국은 ‘삶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를 포함해 주변 모든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조각이라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입니다. 돌이란 소재로 삶의 무게, 처연한 아름다움 등 삶의 솔직한 모습에 닿아 있는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삶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은 작품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작품으로 거짓이 아닌 진정한 위안과 공감을 주는 작가로 기억되길 늘 갈망합니다.”

그의 작품은 작가 자신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하고 힘겨웠던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더욱 애잔하다. 형편상 뒤늦게 미술을 시작한 그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신문 배달을 해 가며 미술학원에 다녔다. 대학 입학 후엔 <태극기를 휘날리며>, <아카시아> 등 여러 영화의 세트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대학원까지 마쳤다. 흔히 ‘아프니깐 청춘’이라 했던가, 그의 청춘은 늘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 즈음 구상조각대전 공모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좋은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조각가 송필’은 주어진 자신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는 ‘생활력 강한 삶의 표본’이다. 개인의 삶에 대한 고민을 넘어 동시대적 감성을 작품에 녹여내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7년 전후의 일명 ‘찌그러진 빌딩’ 시리즈가 그 예다. 고층빌딩을 종이처럼 구겨진 모습으로 표현한 이 작품들은 ‘자본주의에 물든 현대사회’를 비판한 것이다. 중국의 레지던시 초청 기간의 4년 동안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성향으로 급변하는 베이징 현대사회의 이면을 상징화한 것이기도 하다.
brilliant light, FRP에 흑연, 가변 크기, 2007년
brilliant light, FRP에 흑연, 가변 크기, 2007년
억겁의 시간들을 채집하다 2009년 한국에 돌아온 이후엔 사회현실을 ‘삶의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란 모티브로 해석하며, ‘돌의 무게’ 시리즈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엄청난 무게의 돌 혹은 바위를 짊어진 주인공들(낙타, 사슴, 물소, 달팽이 등)은 예외 없이 나약함을 상징하는 초식동물들이다. 그럼에도 어마 무시한 무게를 감당한 모습은 그 자체로 순수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최근에는 짊어진 소재가 돌덩어리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해졌다. 옷가지나 신발, 시계, 서랍장 등 일상의 다양한 소재로 확장된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여러 소재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을 전하듯, 낱개가 아닌 수백 개를 쌓아올리니 ‘욕망의 바벨탑’이 따로 없다. 이 작품들을 통해 삶의 무게에 대한 색깔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삶의 무게와 남들을 짓밟고라도 올라서려 자초한 끝없는 욕망의 무게는 닮은 듯 다르다. 송 작가는 이처럼 숙명적인 삶의 무게와 자초한 욕망의 무게를 조우시켜 현대인의 삶을 정확하게 꿰뚫어냈다. 은유적인 듯 직접적인 조형 어법이 구사된 작품들은 보는 이에게 잠시 멈춰 뒤돌아보게 하는 자성의 힘을 지녔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낙타(혹은 동물들)의 등에 돌 대신 나뭇가지도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돌과 나뭇가지는 송 작가가 직접 냇가나 야산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업실은 천혜의 장소에 위치해 있다. 고향인 전북 진안과 비슷한 풍경에 매료돼 2003년부터 지금의 남양주시 지둔리에 자리를 잡았다. 2006년부터 4년간의 중국 레지던시 기간을 제외하곤 줄곧 이곳에서 작업 중이다. 낮지만 제법 기세가 등등한 암벽 절벽을 배경 삼은 작업실 주변엔 세월의 흔적이 배인 고목이나 돌과 작은 바위 등이 풍부하다.
마르지 않는 샘, 브론즈에 옷가지 & 에폭시, 2017년
마르지 않는 샘, 브론즈에 옷가지 & 에폭시, 2017년
마치 억겁의 시간이 스민 그들을 직접 채집해 작품으로 삼아서인지 더욱 실재적인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최근 선보이기 시작한 ‘고사목에 핀 매화(梅花)’ 시리즈는 더욱 뭉클한 감흥을 선사한다. 박제돼 벽에 걸린 사슴의 뿔을 고목가지처럼 연출하고 그 위에 매화 꽃망울을 달았는가 하면, 염소나 물소 뿔에도 매화를 피워냈다. 그뿐 아니라 고목분(枯木盆) 자체를 동물의 몸통으로 삼아 그 위의 고사된 나뭇가지에도 동선(銅線)으로 세밀 용접한 매화꽃을 매달아 놓았다. 고된 한겨울을 간신히 견디고 새봄의 전령사로 나선 매화의 자태에 더없이 설레듯, 송 작가의 메마른 가지에 핀 매화도 충분히 그에 못지않다.

연배가 좀 있던 어느 여배우가 설치된 작품을 보고 “사는 것의 무게감이 느껴진다”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직접 포스팅해줬던 에피소드가 늘 가슴에 남는다고 한다. 실제로 그 여배우 역시 만만치 않은 삶의 고단한 질곡을 지나온지라 공감의 깊이가 더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 작가의 조각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되찾게 하는 흡입력을 지닌 듯하다. 아마도 인체나 동물 형상을 살점이 붙은 가죽으로 표현했던 작업 초기(2002~2006년)에 이미 시작됐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구겨진 종이 모티브의 빌딩 시리즈로 표현한 작업 2기(2007~2011년),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돌을 짊어진 동물 형상’을 중심으로 한 실크로드 시리즈, 2014년 이후 진행되는 ‘고사목에 핀 매화’ 위주의 유토피아(혹은 실낙원) 시리즈 등등. 줄곧 삶에 대한 통찰력을 잃지 않고 있는 집중력이 대단하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의 생각들이 자잘한 퍼즐처럼 흩어지고 모이길 반복한다. 긴 인생의 여정은 고된 역경과 순간의 낭만이 수없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 누구도 인생의 행로를 속단할 수는 없다. 차라리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삶의 무게를 자양분 삼아 의지의 근력과 근육을 기르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다. 송 작가는 그러한 삶의 자세에 주목해 온 것이다. 나뭇가지를 결합해 다소 낭만적인 느낌을 강조한 최근의 작업도 그 연장선이다. 낙타의 등에서 자라난 그 나뭇가지는 생명력에 대한 염원을 품고 있다. 결국 그의 조각은 삶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며, 생명의 순환을 일깨우는 일상의 화두다.



송 작가 조각의 가격은 크기보다 재료나 난이도에 따라 달라진다. 브론즈로 대형 작품은 5000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하지만, 대개 자연석이 합쳐진 소품의 경우 300만~500만 원 선이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은유로 녹이다
아티스트 송필은…

1970년생. 작가는 전북 진안이 고향이며, 경희대에서 조각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그동안 한국의 영은미술관·아트센터 쿠·갤러리세줄, 중국의 상상미술관(송좡)·제로필드갤러리(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5여 회의 개인전과 100여 회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했다. 또한 학부와 대학원 시절 구상조각대전에서 특선 수상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2015년 구본주예술상을 수상하면서 구상조각계의 대표주자로 위치를 굳혔다. 이후 장흥조각스튜디오 입주작가(2014~2015년), 영은미술관 창작 스튜디오 레지던시(2019~2020년) 등 여러 기관의 지속적인 후원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골프존 조이마루(한국), 서울 북부지검(한국), 경기도미술관(한국), 서울시립미술관(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한국), 폴리옥션(중국 베이징), 마네 뮤지엄(중국 베이징), 상하이 젠다이 모마 뮤지엄(중국 상하이), 왕화상미술관(중국 베이징) 등 많은 곳에 소장돼 있다.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팀장, 월간 아트프라이스 편집이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및 정부미술은행 작품가격 평가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계간조각 편집장, 2019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 2019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