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 경쟁 심리, 제대로 이해하기

Enjoy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몇 번쯤은 경쟁심을 느끼게 하는 비슷한 또래의 대상을 경험하게 된다. 경쟁심의 정체는 무엇이고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두 자녀 이상을 키워본 부모들은 경쟁심이라는 것이 매우 어렸을 때 시작되는 것임을 자녀들 간의 경쟁을 보면서 느꼈을 것이다. 형제간 경쟁(sibling rivalry)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 40대 직장인이고 집에는 아내와 여덟 살, 여섯 살 두 아이가 있습니다. 큰아이는 딸이고 작은아이는 아들인데, 이 두 녀석이 어찌나 싸우는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답니다. 하루는 아이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동화책을 사주었는데 책을 두고 서로 자기 거라며 싸우는 겁니다. 너무 싸우는 통에 집이 시끄러워지자, 욱하고 화가 치밀어 책을 북북 찢어 버렸답니다. 큰애는 울면서 책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 있고 작은아이는 풀이 죽어서 한쪽에 앉아 우네요. 화 안 내고 아이들을 잘 돌보고 싶은데 쉽지가 않습니다. 형제간 이렇게 싸우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싸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사례처럼 너무 싸우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 상담은 매우 흔하다. 부모를 괴롭히는 자녀들의 형제간 경쟁은 언제 시작될까. 아이들을 관찰한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막 걷기 시작하는 한 살부터라고 하니 배워서 학습에 의해 경쟁이 시작된다고만은 보기 어렵다. 경쟁과 질투는 유전자로 갖고 태어난 본능이라 여겨진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이제 막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한 아이가 ‘부모가 내 아우에게만 잘 해주고 있지 않나’, ‘부모가 내 형에게만 잘 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와 내 형제를 부모가 차별해서 돌보고 있지는 않나를 평가하는 예민한 질투 시스템이 이미 한 살이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제간 경쟁 심리는 왜 생기는 것일까. 경쟁은 생존을 위해 남을 이기려는 것이다. 생존은 모든 생물체의 가장 기본이 되는 본능이다. 그래서 동물들에게서도 형제간 경쟁 심리는 잘 관찰된다. 자기 생존에 가장 중요한 존재인 부모를 형제와 공유하게 되는 것에서 불안감이 생기고 그 불안이 경쟁 심리와 형제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서로 사랑해서 스스로 선택한 짝과 가정을 이룬 것이지만 형제는 다르다. 자신이 선택한 상대방이 아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도 성격이 완전 반대여서 부딪힐 수도 있고 자신은 형이랑 살고 싶은데 누나여서 싫을 수도 있고 거꾸로 누나를 원하는데 형이라서 싫을 수도 있다. 가족 내 경쟁자인 형제끼리 서로에 대한 취향마저 안 맞으면 형제간 전투는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 내 위치에 따른 스트레스도 형제간 경쟁 심리에 영향을 준다. 형은 동생에 대한 책임감이 부담이 돼 힘들 수 있고 동생은 앞서 나가는 형을 따라잡는 게 스트레스가 된다. 쫓고 쫓기며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양’보다 ‘맞춤형’ 공평전략


형제간 경쟁 심리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부모들 모두가 자녀들을 편애하지 말고 공평하게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기는 매우 어렵다. 부모도 자기 자녀 중 더 끌리는 자녀가 있기 때문이다. 자녀로 남자 형제를 둔 아버지는 고2 형보다 일곱 살인 늦둥이가 너무 예쁘다. 하는 행동이 어렸을 때 자기 분신 같다. 타고난 취향이 비슷하니 같이 놀 때도 만족감이 더 크다. 형은 나이 어린 동생과 놀 때 드러나는 아빠의 행복한 얼굴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아빠가 너희 둘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양적인 공평전략(fair strategy)보단 질을 중심으로 하는 맞춤형 공평전략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아이 3명이 있는데 그중 안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막내였지만 형제간 경쟁이 신경 쓰여 모두를 안아주는 것이 양적인 공평전략이다. 포옹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행동으로 나오는 반응이어야 하는데 규칙처럼 모두에게 적용하다 보면 가족 내에서 포옹의 정서적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거기에 비해 맞춤형 공평전략은 자녀들의 나이, 성별, 그리고 취향에 맞게 놀아주고 반응해주는 것이다. 양적 공평이 아닌 질적 공평전략을 쓰는 것이다. 자녀 입장에서 나만을 위한 서비스가 부모로부터 제공되기에 자신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어린 동생에게 부모의 정성과 시간이 더 투자될 수밖에 없다. 그것에 섭섭한 큰아이는 부모에게 짜증도 내고 동생과 싸울 수도 있고 어린 아이처럼 퇴행현상을 보일 수도 있다. 이 행동에 ‘형인데 이해해야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형이라고 해봐야 역시 어린 아이일 뿐이다. 아이가 감당하지도 못할 역할을 주고 이해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큰아이에게 둘째만큼 시간을 충분히 줄 수는 없더라도 동생이 잠든 사이 큰아이랑만 할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해 함께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부모가 ‘동생과는 하지 않는 너랑만 하는 놀이가 있다’는 메시지를 형에게 주는 것이 형제간 경쟁 심리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부모 사랑을 되찾기 위해 동생 나이처럼 행동하는 퇴행현상도 막을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