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18세기 유럽 상류층의 그림에는 차를 마시는 장면이 많이 그려져 있다. 유럽 문화사 곳곳에 밴 차의 향기를 좇아서.

유럽 귀족 키워드 ‘차와 도자기’

(사진_왼쪽부터 시계 방향) 스털링 티 캐디(빅토리안), 화기로 쓴 저그(아르누보), 2단 트레이(빅토리안), 흑단 손잡이의 스털링 티포트(아르데코), 손잡이의 곡선이 우려한 티 잔(아르누보). 무늬가 핸드 페인팅 된 물잔(아르누보).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커피이지만,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픈 오후에는 고운 빛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홍차가 제격이다. 처음에 홍차는 우리가 알고 있는 녹차의 형태로 유럽에 전해졌다. 홍차의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고 현재까지 가장 많은 홍차를 소비하고 있는 영국의 귀족 사회에 처음 차를 전파시킨 사람은 1662년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의 공주 캐서린 브라간자였다. 그 후 오랫동안 차는 비싼 몸값의 찻잎과 다기구로 인해 상위 1%만이 누리는 귀족들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가장 품위 있는 티 테이블의 구성은 스털링으로 만들어진 티포트 세트와 티 캐디, 그리고 티 스트레이너와 티 캐디 스푼이었다. 여기에 도자기로 된 찻잔과 접시가 보태어져 가장 고급스러운 티 테이블을 연출했다. 이러한 고급스러운 차 문화는 바람기 많았던 찰스 2세 때문에 쓸쓸한 결혼생활을 했던 왕비 캐서린에 의해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지금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런던 근교의 햄하우스 저택의 클로젯 룸에는 캐서린 왕비의 티룸이 아름답게 보존돼 있다.

유럽 귀족 키워드 ‘차와 도자기’
유럽 귀족 키워드 ‘차와 도자기’

차와 도자기, 상류층의 최고의 사치

최고의 사치로 상류층만 누리던 차와 도자기는 오랫동안 유럽 귀족 문화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요즈음 우리들이 좋은 날이나 좋은 곳에 갔을 때 기념으로 사진을 찍듯이, 18세기 유럽의 상류층들은 너도나도 차를 마시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거실에 걸어 두었다.

로코코 시대로 불리는 유럽의 18세기는 극동에서 들여온 차를 값비싼 도자기에 따라 마시며 아름다운 정원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으로 대변된 시대다.

여기에 덧붙여 남미의 식민지로부터 들여온 엄청난 양의 은이 유럽에 풀렸으니, 상업과 무역은 융성해지고 그것을 통해 부를 축척한 중상공인들은 과학, 문화, 정치를 후원하게 된다. 18세기에는 왕족과 귀족을 넘어 중상공인들이 여러 가지 과학 문명과 함께 동양의 새로운 문물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화려한 파티로 시간을 보내는 귀족층과는 달리 이국적 문화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며 19세기에 등장하는 자포니즘과 인상파 유행의 오리진이 됐다.

유럽 귀족 키워드 ‘차와 도자기’
17세기 유럽인들에게 가장 큰 이슈가 됐던 것은 동양의 자기였다. 진흙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백색자기로 변신하는 놀라운 과정은 그들에게 신비롭기도 했지만 너무나 강력한 문화 충격이었다. 이러한 고급 문명의 산물인 자기와 함께 유럽인들을 매혹시킨 것은 3가지 이국적인 음료였는데 바로 차, 커피, 초콜릿이었다. 영국의 음습한 기후는 값비싼 도자기에 찻잎을 따뜻하게 우려서 마시는 관습을 왕족과 귀족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게 했다.

다른 어떤 음료보다 차가 유행했던 영국과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커피와 초콜릿이 유행했다.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고 우유를 탄 카페오레는 18세기를 상징하는 가장 큰 발명품 중 하나였다. 18세기 파리 거리에는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풍경이 그렇듯 거리마다 카페가 즐비했다. 공원 주변에는 밖에 의자를 내놓고 커피를 파는 노천카페들이 즐비했고 사람들은 따뜻하고도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했다.
유럽 귀족 키워드 ‘차와 도자기’
커피는 18세기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이었다. 잠 못 들거나 소화가 안 될 때, 피로감이 몰려올 때에도 커피는 보약처럼 즐겼던 든든한 음료였다. 이러한 고급 음료들은 따뜻한 상태로 서빙이 됐기에 쉽게 식지 않는 스털링 주전자가 부자들의 티 파티에서 빠지지 않는 물건으로 등극했다.
유럽 귀족 키워드 ‘차와 도자기’
유럽 귀족 키워드 ‘차와 도자기’

고온의 외래 음료와 도자 산업

그런데 17세기 후반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에 들어온 외래 음료였던 초콜릿, 커피, 차는 공교롭게도 모두 뜨겁게 마셔야 했던 음료였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고온에 견딜 수 있는 견고한 도자기 잔을 열망했다. 당시 유럽에서 만들어지던 도자기는 저온에서 만들어져 강도가 약하고, 유약도 뜨거운 물에 안전하지 못해 완성도가 떨어졌다. 따라서 유럽 상류층들에게 안전한 도자기 잔은 외래에서 들여온 뜨거운 음료를 마시기 위해 꼭 필요한 사치품이자 필수품이었다.

1710년 독일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의 경성자기가 만들어진 이래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앞 다투어 완성도 높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차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큰 환영을 받으며 ‘국민 음료’로 자리를 잡아 가던 영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도자기 산업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늦게 시작했지만 자기에 대한 관심은 높아만 갔다. 마침내 영국은 1748년 소의 뼈를 넣어 만든 가볍고 단단한 본차이나를 개발하게 된다. 이후 영국은 유럽의 도자 산업을 이끌며 도자기 강국으로 등극한다.

1840년대 중국을 벗어나 인도 등의 식민지에서 차 재배가 성공하면서 차의 대중화가 실현된다. 이때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국의 ‘애프터눈 티’ 문화가 생겼다.

애프터눈 티 문화의 발생은 산업혁명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정용 램프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깨어 있고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즉, 점심과 저녁 사이의 간격이 커지면서 사람들이 허기를 느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점심과 저녁 사이에 마시게 된 차가 바로 애프터눈 티의 기원이다. 당시 차는 ‘약’으로 취급됐기에 공복에 마시는 것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애프터눈 티에는 빵과 버터, 설탕과자, 비스킷 등의 티 푸드가 함께 나왔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